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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잘안 May 11. 2022

평생 지켜온 '거리두기'를 해제합니다.

가정지원센터 무료상담

아이들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한다.

그들을 바라볼때면, 행복하면서도 아플 때가 많다.

내가 아픈건지, 아이들이 아픈건지...

주기적으로 몰려오는 양육에 대한 불안감때문에, 가정지원센터의 무료상담을 신청했다.


젊고 앳된 상담사를 마주하던 첫 날.

'어리신 분이 어찌 내 삶을 이해나 할 수 있을까?'

적당히 둘러대고, 심리테스트나 받고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첫 날의 상담은 50분간 둘째 아들에 대한 내 불안감만 쏟아냈다.

이해하기 어렵다.

대하기 어렵다.

받아주는데 지쳤다.

등등등...


기질적으로 까다로운 둘째를 대하는게 너무 힘들다는 도돌이표같은 얘기로 50분을 채웠다.

상담실을 나서는데, 허무했다.

들었으면 뭔가 대안을 제시해주어야지, 역시 오은영 박사님같은 상담사는 아무데나 있는게 아니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별 기대도 없이, 두번째 상담시간이 다가왔다.

"어머니, 오늘은 어머니 이야기를 좀 듣고 싶네요~"

"제 이야기요? 하...글쎄요...뭐 제가 제 이야기를 하는게 객관적일까요? 제 생각이 다 옳다 하겠죠.."


내 성격을 내가 뭐라고 말할 것이며, 내 살아온 과거를 얘기한들 모두가 주관적 입장일 뿐이니, 객관적 상황 전달이 어려울 것 같았다.

상담사에 대한 불신때문에 더 냉소적이었을 수도 있다.


지그시 바라보는 선한 눈빛에 못이겨, 낯선 사람에게 말하고 싶지 않던 '나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40분가량 이런 저런 대화를 주고받던 상담사는 마무리를 하려는 듯 자세를 바로 잡았다.


"어머니 이야기를 듣고보니, 어린 시절 가족간의 감정적 불화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도 깊은 관계를 원하지 않으시는 듯 해요...이런 모습이, 양육 태도에서도 반영될 수 있답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런 것들에 대해 더 얘기해볼까요?"

"......네?.......아이들에게 무관심했다고 생각한 적 없는데.....일단, 알겠습니다....."






상담실을 나와 운전을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감정 소통이 어려웠던 가정 환경에서 자란 나는, 삼대가 모여살며 겪었던 따뜻함보다 불편함을 더 진하게 품고 있었다.

엄마의 눈물.

아빠의 무관심.

할머니의 차가움.

나는 저런 사람들과 깊게 엮이고 싶지 않다는 다짐을 수 없이 했던 것 같다.


그들 사이에서도 누구의 편도 되지 않고, 나를 지켜야 숨을 쉴 수 있었다.

아무도 내 편이 되어주길 바라지도 않았다.

내 눈엔 모두가 문제덩어리였다.


학창시절에도 친구는 그다지 필요치 않았다.

말이 통하는 한 두명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사회생활에서도 동료는 없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경쟁자였고, 살아남아 함께 있는 자들이 동료일 뿐이라고 여겼다.


뒤돌아보니......

나는 평생을 사람 관계 속에서 '거리두기' 하며 살아왔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 없었고, 그저 내 성격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을 대할 때, 엄마인 나는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의 감정과도 엮어야 한다.

좋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아픔을 나누어야 할 때, 그 감정이 내게 전이되는 걸 견디기가 힘들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배운데로 공감을 해준다고 하면서도, 내 영혼은 폭탄을 맞은 것처럼 찢어졌다.


본능적으로 '거리두기'를 원했지만, 아이들에겐 그럴 수 없었다.

양육의 과정이 순탄했을 리 없다.

감정 변화가 심한 나때문에, 불안해했을 아이들이 느껴졌다.




'과거가 현재를 만든다'는 명제를 싫어했다.

지나치게 운명론적인 느낌이었다.


이제야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조금씩 이해하는 중이다.

과거가 '현재의 전부'일 수는 없지만, '현재의 일부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거리두기'가 좋다.

하지만, 도망친다고 외면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아픔을 바라볼 때 혼자서 문을 닫고 견뎌낼 것이 아니라, 함께 소통하며 위로하는 삶이 더 가벼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제 '내 인생의 거리두기'도 해제시켜야할 때가 온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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