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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a Oct 26. 2021

우리 동네 원숭이들을 무단 주거침입죄로 고발합니다

원숭이 떼와의 전쟁

인도는 원숭이의 나라다.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길에서 구걸하고 있는 원숭이 가족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아니, 도심에서도 몰래 아파트 화장실 창문 고리를 붙잡고 집 안으로 침입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도둑 원숭이들을 가끔 볼 수 있다.


 우리 가족은 원숭이들이 모여 사는 동네 한가운데에 살았던 적이 있다. 아이들의 등하굣길에 원숭이들이 호위병이라도 되는 듯 쫘~악 깔려 있다. 아침에 출근하려고 나가면 대문 앞에 원숭이 가족이 앉아 평화롭게 서로 이를 잡아주고 있다. 나는 사실 그들이 많이 무서웠지만 버스 정류장까지 애써 태연한 척 천천히 걸어가곤 했다. 그들에게 물리면 치명적인 병에 걸리거나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도에는 원숭이의 공격으로 생명을 잃은 끔찍한 사건들을 뉴스를 통해 종종 접한다. 

암튼 우리 동네 원숭이들은 우리 가족의 얼굴을 다 알고 있는데 여자와 아이를 우습게 안다. 그래서 원숭이에게 당하는 사람들은 거의 여자와 아이들이다. 나는 매일 우리 아이들에게 등하굣길에 원숭이와 절대 아는 척하지 말고, 눈 마주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곤 한다. 당시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교 1, 2학년으로 어디로 튈지 몰라 매일 마음 졸이는 나이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학원에서 힌디어 수업을 하고 있는데 우리 아이들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큰일 났어요. 집에 도둑이 들어왔어요. 얼른 오세요. 무서워요. 이층에서 쿵쿵 거리는 소리가 나요. 도둑이 집안에 있어요.” 


큰 딸 루시의 목소리가 떨렸다. 전화선을 통해 어린아이들이 ‘엄마 무서워요’ 하면서 울먹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가슴으로 아이들을 진정시킨 후 남편과 함께 집으로 날아갔다. 5분밖에 걸리지 않은 거리가 너무나도 멀게 느껴졌다. 그때 우리는 부모가 없는 인도 아이들 11명의 엄마 아빠가 되어 한집에서 시끌벅적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식구가 많아 복층으로 된 큰 주택에 살고 있었는데 아이들 방은 아래층이고 이층에는 우리 부부의 방과 게스트 룸이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은 몽둥이를 들고 이층으로 조심스레 올라갔고 나는 일단 두려움에 떨고 있는 어린아이들을 안아주면서 진정시켰다. 혹시 남편이 도둑에게 봉변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너무 무서워서 맘속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렸다. 이층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온통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남편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오 마이 갓!!” 

 “여보! 괜찮아?”

 “아빠 무슨 일이에요?".

 “응, 괜찮아, 도둑놈 잡았어. 얼른 올라와 봐”

 “엥??” 


아이들과 함께 살금살금 이층을 올라갔다. 그리곤 나 역시 '오 마이 갓' 하고 소리치고 말았다. 이층 전체가 완전 초토화가 되어있었다.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남편이 말했다. 


“와~~ 이 떼강도들, 집에 아무도 없는 시간을 택해서 들어오셨구먼, 계획적으로” 

“아빠, 강도가 누구예요?” 

“누군 누구야, 숭이들이지. 원숭이들, 이놈들이 한 짓 좀 봐. 기가 막히네”


 나는 모두가 안전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집안 구석구석을 살필 수 있었다. 안방  방바닥 여기저기에 찍~찍 싸 놓은 배설물이 젤 먼저 눈에 띄었다. 남편이 그것이 무엇인가 확인하려 한다. 손에 찍어서 코에 갖다 댄다. 우웩! 그날 원숭이 똥 냄새가 그렇게 지독한지 처음 알았다. 원숭이는 손을 사용한다. 그날 동네 원숭이들이 우리 안방을 점령했다. 서랍장에 있는 속옷과 양말을 다 끄집어내 놓았다. 방바닥에 가득이다. 침대 위에도 가득이다. 화장대는 또 어떤가?  모든 화장품이 방바닥에 내동댕이 쳐져 뒹굴어 다닌다.  화장실 문 앞에는 이빨로 잘근잘근 깨물린 팬슬이 뒹굴고 있다. 립스틱 세 개 모두 완전 뭉개진 채로 화장대 위에 던져져 있다. 화장대 거울은 과간이다. 피카소가 다녀갔는지 추상화가 요란하게 그려져 있다. 아마 원숭이 방언으로 ‘약 오르지 메롱!’ 이렇게 낙서를 해 놓은 게 아닐까 싶다. 손님방은 더더욱 가관이었다. 당시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한국 선생님이 게스트 룸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 방에 있는 작은 서랍장들을 모두 빼내서 뒤집어 놓았다. 그 안에 있는 액세서리들은 입으로 물어뜯어서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침대 위에는 원숭이들이 점핑 놀이를 한 발자국들이 선명히 남아있었다. 다행히 돈을 모르는 원숭이라 지갑은 훔쳐 가지 않았다. 원숭이는 에이즈 균을 가지고 있고 치명적인 원숭이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다. 우리는  몇 날 며칠 무단 주거 침입한 원숭이들의 난동 흔적을 지우느라 한마디로 개고생을 했다. 물도 잘 나오지 않는데.....

 

저녁에 남편이 나에게 고백했다. 


“여보! 오늘 우리 집 습격한 원숭이들 말이야, 사실은 나 때문인 거 같아.”

"‘엥?? 그건 또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 

”사실은 며칠 전에 내가 비비탄으로 두목 원숭이를 한방 쐈거든. 덩치 좋은 그놈 있잖아. 우리 집 근처에 다시는 얼씬 거리지 말라고. 그놈이 아파서 풀쩍 뛰더니 이빨을 드러내 보이고 사라졌거든."

 

원숭이들은 집단생활을 하기 때문에 온 집안 식구들이 몰려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그 집단에는 반드시 두목이 있다. 두목이 높은 나무나 지붕 위에 올라가 이상한 소리로 신호를 보내면 그의 졸개들이 어디에선가 순식간에 다 모인다. 대장 원숭이가 회의를 주재하고 다른 원숭이들이 그의 지시를 따른다. 매일매일 원숭이들을 만나다 보니 그들의 삶과 심리를 저절로 알게 되었다. 

 

원숭이들이 우리 집 뒷마당까지 침입하여 과일과 야채들을 훔쳐 가고 널어놓은 빨래를 훔쳐 가는 일이 무척 잦아졌다. ‘견원지간’이라는 말이 생각나서 원숭이를 쫓아내라고 아주 사나운 강아지를 한 마리 키워보았는데 아무 소용이 없었다. 늘 가까이에서 얼굴을 보니 정이 들었는지 동네 원숭이들이 우리 개와 친구가 되어 매일 우리 집에 놀러 왔다. 그때부터 ‘견원지간’이라는 말을 나는 믿지 않게 되었다. 암튼 우리 부부는 동네 원숭이들과 매일 고도의 신경전을 벌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어느 날, 남편이 원숭이 두목에게 비비탄을 한방 쏘면서 선전포고를 하게 된 것이다. 비비탄을 맞은 원숭이 두목은 자존심도 상하고 열도 받아 그날 바로 전쟁을 위한 전략회의를 소집한 것 같다. 한국에서 온 Mr. Lee 집안에 내가 당한 수모를 반드시 갚아 주리라고 이를 갈면서 말이다. 


'중국인들처럼 인해전술을 사용하는 거야. 일단 떼를 지어서, 집안에 아무도 없는 시간에, 안방 베란다 쪽 문고리를 걸어 놓지 않는 날, 순식간에 안방을 습격한다. 그리고 냄새에 민감한 Mr. Lee에게 향기로운 우리의 배설물을 선물함과 동시에 온 힘을 다해 집안을 초토화시키자, 우리에게는 날렵한 손이 있고 강력한 이빨이 있다. Mr. Lee 집으로 돌격!!! '

 

그날 이후로 원숭이들은 무단 주거침입을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더 과감하게 남편만을 타깃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베란다에 널어놓은 빨래 중 남편 속옷만 골라서 훔쳐 가고 남편 슬리퍼만 가져갔다. 남편이 베란다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둔 물감을 원숭이가 이빨로 잘근잘근 씹어 놓았다. 원숭이에게도 무단 주거침입죄를 적용해서 감옥 대신 우리 안에 당분간 가두어 놓는 법을 만들고 싶었다. 




인도는 원숭이를 신으로 섬기는 나라다. 그래서 힌두교도들은 길거리에 앉아 있는 원숭이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바나나를 던져 준다. 그래서인지 인도 원숭이들은 사람 위에 군림하는 거만하고 영악한 동물이다. 최근에 인도 타밀나두 주에서 여러 마리의 원숭이가 집안에 들어와 잠자고 있는 8개월 된 쌍둥이 여아를 납치한 사건이 있었다. 사람들이 아기를 구하려고 쫓아오자 원숭이가 결국 아기를 지붕에서 던져서 죽게 만들었다. 인도에서 늦둥이를 갓난아기 때부터 키워온 나로서는 참으로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인도에서는 자나 깨나 불조심이 아니라 자나 깨나 원숭이 조심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을 통해 우리 동네 원숭이들을 무단 주거침입죄로 고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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