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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a Oct 26. 2021

얄밉고도 고마운 도둑놈 부부
원숭이

우리 집 거실에서 만난 원숭이 

우리 가족은 마당이 넓은 개인주택에 살았었다. 우리 집에는 친구가 남인도로 이사를 가면서 반강제로 주고 간 스펜스라는 달마시안 한 마리가 있었다. 성질이 무지 사나운 개라 우리 집 경비 일을 맡겼다. 앞마당에는 조그마한 정원이 있었다. 그 집에 이사를 오자마자 나는 갈등 없이 정원에 심겨 있는 주황색 꽃을 뽑아버리고 상추와 고추 모종을 심었다. 내 몸 안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스스로 증명이라도 하듯이..... 시들시들하던 모종들이 며칠이 지나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내 사랑 덕분인지 모종들은 씩씩하게 잘 자라 주었다. 뒷마당에는 빨래를 널 자리와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놀만한 공간이 있었다. 주방에는 뒷마당으로 바로 통하는 출입문도 물론 있었다. 


 방학을 맞이해서 기숙사 학교에서 공부하던 두 아들이 집에 왔다. 오랜만에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만들었다. 설레는 맘으로 상추 잎을 따기 위해 앞마당에 나갔다.

 

“맙소사! 이게 다 뭐야?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상추와 고추 모종이 뿌리째 뽑혀 내동댕이 쳐져 있었다. 두더지가 다녀간 것처럼 흙이 이리저리 파여 있었다. 찢어진 상추 잎이 이리저리 뒹굴어 다니는 걸 보니 누군가가 뜯어먹어보고 맛이 없어 집어던진 것 같다. 설마 하고 대문 쪽을 보니 살이 포동포동 찐 우리 개 스펜스가 목줄을 한 채 쿨쿨 자고 있었다. 밤새 보초를 서느라 많이 피곤했나 보다. 그렇다면 범인은 뻔하다. 그 녀석들 밖에 없다. 우리 동네 원숭이들은 우리 가족에게 참으로 관심이 많다. 피부색이 달라서 그런지, 처음 들어보는 이상한 언어를 사용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가끔 환기를 시키려고 창문을 열어 놓으면 원숭이들이 담벼락에 앉아서 집안을 빤히 들여다보곤 했다. 어쩌다 원숭이와 눈을 마주치면 나는 기겁을 하고 문을 닫는다. 우리가 모종을 심고 물을 주고 있을 때 가끔 원숭이들이 담벼락에 앉아서 지켜보고 있었던 생각이 갑자기 났다. 


너무 속상했다. 들짐승들의 공격으로 농사를 망친 농부들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되었다. 견원지간이 웬 말이던가! 밤에 담장 안으로 불법 침입한 놈들을 봐준 우리 집 경비견 스펜스에게 배신감마저 들었다. 그날 우리는 상추 대신 양배추 김치와 함께 두루치기를 먹었다.




어느 날, 아이들이 좋아하는 포도를 넉넉히 샀다. 인도 청포도는 길쭉하고 씨앗이 별로 없어 먹기도 좋고 맛있다. 샌드위치를 해 주려고 슬라이스 빵 긴 것도 하나 샀다. 식빵을 주방 식탁에 올려놓고 일단 포도부터 씻었다. 거실에 앉아서 가족이 함께 맛있게 포도를 먹고 있는데 남편이 한국 영화를 한편 보자고 했다. 난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한국 영화를 본다는 자체가 좋아서 얼른 동의를 했다. 제목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스릴 있는 영화였던 것 같다. 한참 영화에 빠져 있는데 8개월 된 딸이 잠에서 깼다. 이유식을 먹이려고 방에서 나왔다. 


 “오 마이 갓!!”

 

식탁 위에는 좀 전에 사 온 식빵이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었다. 그것도 부드러운 속살을 도난당한 채 딱딱한 껍질만 말이다. 순간 도둑이 집안에 들어왔음을 직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짓을 할 녀석은 원숭이 밖에 없다. 너무 얄미웠다. 사람인 나도 식빵 껍질이 아까워서 다 먹는데 원숭이 주제에 식빵 속과 겉을 가려내서 먹다니 기가 막혔다. 먹다 남은 포도를 거실 탁자 위에 둔 생각이 나서 얼른 거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T.V 프로그램에 나올 만한 광경이 내 눈앞에서 펼쳐졌다. 부부처럼 보이는 원숭이 두 마리가 거실에서 포도를 따먹고 있는 게 아닌가! 한 녀석은 아예 탁자 위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한 손으로는 포도를 송이채 들고 한 손으로는 포도를 똑 똑 다 먹고 있었다. 다른 한 녀석은 아예 소파에 편하게 앉아서 여유롭게 포도를 따 먹고 있었다. 나는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야~~ 못 나가! 얼른 나가!” “여보! 원숭이야, 얼른 나와 봐” 

 

원숭이들이 내 목소리를 듣고 힐끗 한번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포도를 먹기 시작했다. 원숭이는 여자와 아이를 무시한다. 동물인 원숭이에게 인간인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당한 것이 너무나도 약이 올랐다. 그래서 다시 원숭이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얼른 꺼져! 이 도둑놈 숭이들아!!”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둘째 아들이 엄마의 비명소리를 듣고 방에서 튀어나왔다. 둘째도 원숭이를 보자 무서워서 멀찍이 서서 나가라고 소리만 질러댔다. 원숭이들은 초등학생인 아들을 한번 쳐다보더니 ‘넌 또 뭐야? 쬐끄만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다시 소파에 앉아 포도를 먹기 시작했다. 원숭이들이 포도를 그렇게도 좋아하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남편과 큰 아들은 영화에 빠져서 밖에 나와 보지도 않았다. 둘째가 호들갑을 떨자 그제야 밖으로 나왔다. 남편은 거실 구석에 세워 놓은 긴 막대기부터 들었다. 우리 집에는 수시로 출몰하는 원숭이를 쫓아내기 위한 튼튼한 막대기가 늘 준비되어 있었다. 남편이 막대기를 들고 나타나자 원숭이 부부는 비로소 어설렁 어설렁 뒷문 쪽으로 걸어갔다. 잽싸게 도망을 가도 시원찮은데 여유 있게 집안을 빠져나가는 그 모습이 진짜 얄미웠다. 한 대 때려주고 싶었지만 공격당할까 봐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빨간 원숭이 엉덩이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원숭이가 생후 8개월 된 여아를 훔쳐 가서 우물에 빠뜨려 죽였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유모차에 누워서 새근새근 잠자고 있는 8개월 된 우리 딸에게 눈길이 갔다. 아기를 업고 안고 유모차에 태우고 겁 없이 마당을 거닐었던 날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아기를 보행기에 태워서 거실에 혼자 두고 주방에서 일을 할 때도 있었다. 원숭이가 손을 사용한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두어야만 하는데, 원숭이가 집안에 못 들어오도록 모든 창문과 출입문을 안에서 고리를 걸어서 잠가야만 하는데, 엄마인 내가 문고리를 걸어 잠그는 일을 종종 잊어버리다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기를 훔쳐 가서 사망에 이르게 한 악랄한 원숭이 소식을 듣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아기의 부모 마음이 내게 전달되어 울컥 눈물이 났다. 내 곁에 우리 딸이 평온하게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리고 우리 동네 원숭이들에게도 감사했다. 그동안 울 딸에게 해코지하지 않고 딸을 훔쳐 가지 않은 원숭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집에 쳐들어 온 원숭이들이 너무 얄미웠었는데..... 원숭이에게 도둑맞은 식빵과 포도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 무시당한 것도 억울하지 않았다. 거실 탁자 위에 남아있는 앙상한 포도 줄기를 보면서 원숭이들에 대한 얄미움이 고마움으로 바뀌었다. 

 

저녁에 바라나시에 살고 있는 친구랑 통화를 했다. 며칠 전 우리 집에 원숭이가 쳐들어 온 사건을 얘기해 주었다. 친구가 말했다. 

 

“우리 동네 원숭이는 아예 우리 집 냉장고를 다 털어갔어. 완두 콩이며 과일이며 야채며 닥치는 대로 다~. 정말 기가 막혀. 이제는 냉장고까지 접수했어 이 영악한 놈들이”

 

그때 알게 되었다. 인도 냉장고 문에는 왜 열쇠 구멍이 있는지..... 왜 사람들이 냉장고 문을 잠그는지.....


그날 나는 우리 딸에게 아무런 해를 가하지 않은 원숭이들을 위해 냉장고 문을 열어놓고 싶었다. 숭이들아~ 고마워, 우리 아가에게 아무런 해코지를 하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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