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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Apr 07. 2024

운수 좋은 날


'봄만 와봐라 가만두지 않겠다.' 마당 정리를 위해서 으로 나갈  시했다.

"어디에 뒀더라. 여기에 둔 거 같은데..."

옷장 서랍을 뒤다. 평소에 버리기는 아깝고 일상복으로  입기에는 지겹거나 낡은 옷을 모아두었다가 텃밭에서 일을 할 때 입는다.

"무슨 옷을 찾는데?"

옷장옆으로 다가오면서 딸이 물었다.

"일할 때 입으려고 모아 놓은... 찾았다."

숨겨놨던 비상금이라도 찾은 것 같았다.

"엄마, 이제 힘든 일 안 한다면서 또 하려고?"


장갑과 모자, 라디오까지  챙서 밖으로 나왔다. 바람에 흩어진 스티로폼 박스를 주워 모으고 여기저기  수북하게 쌓인 낙엽을 긁어모았다. 엽을 모으다가 지루하면 양파밭에 풀을 뽑고 다시 낙엽을 긁어모았다. 잠시 쉬면서 친구와 통화를 화분에 물주고... 산만하기 짝이 없다. 몸도 마음산만함? 전환이 필요하다. 힘들고 지치기 전에 나를 알아채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를 챙기는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지 못하고 반복되는 몸짓과 생각으로   채워지는  지치고 병 것을 알고 있다.


낙엽과 잔디 속에 숨어 있다가 봄비를 맞고 따한 바람을 쐬기 위해 불쑥 얼굴을 내 잡초들과 마주했다.

'긴 싸움 되겠구나. 이번에는 포기하지 않고 를 괴롭혀 보겠다.'

 나와 제일 친한 호미를 창고에서 들고  왔다.

청소기가 청소를 시작하기 전 청소구역을 스캔하듯이 창고 앞에서  작업구역을 설정했다.


마당 가득 냉이 꽃이 폈다. 먹을까 말까를 고민하던 사이에 3월이 지나간 것이다.  수북하게 쌓인 낙엽을 치우다 보니  낙엽 밑에 숨어 있는  냉이와 민들레, 씀바귀 보였다. 크기는 크고 입사귀는 연초록으로 나물 해서 먹기 딱 좋다. 그런데 냉큼 손이 안 다. 애들은 좋아하지 않고 나만 먹자고 하는 음식에 대한 욕구가  덜 하다.  이럴 때  남편의 빈자리를 확인한다. 결국 나는 잡초로 구분하고 뽑아서 한쪽에 모아 놓았다.


 민들레 꽃도 이기는  마찬가지인데  굳이 자기들을 뽑고  다른 꽃을 심는 사람들심리가 냉이나 민들레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같다. 지만 나는 집 전체를 냉이와 민들레에게 내줄 수가 없었다.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고 허리를 구부려땅을 향했다가  뒤로 젖혀서 하늘을 보는 몸짓 하면서 마당에 잡초를 찾아다녔다.

앞으로 10월까지 계속되는 모습이 될 것이다.

"와! 깨끗하다."


마당의 여기저기를 뒤고 다니다가 창고 앞에  앉아서 피자 한 조각새참으로 먹었다. 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잠깐 라디오에 사연 문자도 보다. 어제까지는 안 보이던 사과나무에 잎사귀가 보인다. '반가워라.'


나는 이 작업을 놀이로 생각할 계획이다. 잡초를 뽑으면서  스트레스를 쌓기보다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어가는 나만의 놀이로 만들 것이다.  잡초제거를 일로 받아들이는 순간 앞으로 몇 달이 스트레스로 가득하게 된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생계와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농부가 아닌 나에게  마당의 잡초를 뽑는 일 정도는 조금 게으름을 피우면서 하겠다는 내 삶의 변화를 위한 다짐이기도 하다.


계획한 구역에 풀을 뽑고 다음 계획으로 넘어갔다. 풀이 가장 좋아하는 수돗가와 창고 사이 꽃잔디를 심었다. 핑크와 하얀색으로 사이좋게 심었다. 풀이 이길지, 꽃이 이길지는 모르지만 관없다. 꽃이 풀틈에서 이겨 내지 못하면 내년 봄에 다시 심으면 된다.


친정 엄마가 챙겨준 땅콩씨앗도 찾아서 밭에 꾹꾹 눌러 심었다. 울타리 근처에 완두콩도 몇 개 심었다. 내가 먹을 거니까  좀 늦어도 괜찮다.


나무시장에 들렀다가 딸기모종을  왔다. 작년가을에 심은 양파가 월동을 못하고 얼어 죽은 구덩이에 딸기모종을 심었다. 딸기를 심으면서 '와!  대박, 진짜 맛있어.' 감탄을 하면서 딸기를 따 먹을 우리 딸의 표정이 떠오른다.


씨앗을 뿌리고 꽃을 심는다는 것은 희망을 심 내일을 기다린다는 의미다. 내가 오늘 그랬다.


저녁을 먹고 소파에서 쉬 있는데 온몸이 쑤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발가락들이 서로 이기 시작했다. 종아리  근육까지 단단해진다. '! 오늘 일을 너무 많이 했구나.' 운동을 건너뛰고 노동으로 넘어간 것이 문제다. 제는 웅크렸던 몸을 세우고 걸어야겠다.


'토독토독토독'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꽃을 심고 딸기를 심은 날  비가 내다.


운수 좋은 날이다.


이 정도의 운수 좋은 날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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