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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 살고 있다.

by 앞니맘


나는 불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유치원 교사이자, 재단 합창단의 단원이다.

한 달에 두 번 연습하고, 매월 셋째 주 일요일이면 법당에 모여 찬불가를 부른다. 기도와 노래 사이를 오가는 시간은 내 삶의 숨구멍 같은 순간이다.


이번 달 법회를 앞두고 반주자 선생님이 개인 사정으로 참여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결국 딸에게 반주를 부탁했고, 교회에서 오랫동안 반주를 해오신 딸의 피아노 선생님께
지도 요청을 드리며 악보를 전달했다.

“불교에도 이런 합창곡집이 있는지 몰랐어요.”
선생님의 놀라움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교회 찬송가와 달리, 찬불가는 조용하고 꾸준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올해도 신작 찬불가 발표회가 열렸다. 20년 넘게 이 사업을 이끌어 온 음악공동체 ‘육화림’. 작곡가, 성악가, 지휘자 선생님들은 불교음악의 대중화에 헌신해 온 분들이다. 젊은 음악가였던 그들도, 어느새 나처럼 중년을 지나고 있었다.


나는 올해 처음, 지휘자 선생님 권유로 작사가로 참여했다. 남편을 떠나보낸 뒤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썼던 글,
**〈서로를 위한 기도〉**가 곡이 되었다.
악보를 받아 들었을 때, 서툴고 미완성 같았던 감정들이 음악으로 정리되는 걸 느꼈다.


발표회 당일, 홀을 가득 메운 관객 앞에서 나는 VIP석에 앉았다. 아이들과 함께 가자고 애썼지만 “재미없을 것 같아요”라는 대답에 결국 혼자 왔다.
남편에게 닿는 노래이니 사실 혼자가 편했다.


합창단이 입장하고, 작사가로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한 채 인사만 하고 프로그램만 만지작거렸다. 부끄러웠다.


피아노 전주가 흐르고, 50명의 목소리가 악보 위의 글자들을 하나씩 깨워냈다. 6분이 넘는 긴 곡이 끝날 때쯤, 나는 조용히 손등으로 눈가를 가렸다.


글을 쓰며 위로받았던 마음이 합창단의 숨과 울림을 지나 완전한 치유가 되어 돌아왔다.
정말로 남편이 내게 속삭이는 듯했다.

그리고 다음에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가사를 써 보리라 다짐했다.


오늘은 남편 없이 맞이한 세 번째 결혼기념일이다.

나는 작은 꽃다발과 신작 찬불가 책을 들고 그가 잠든 곳으로 향했다.

“선물이야. 너를 보내고 남겨진 나를 위한 기도의 노래야. 사랑했어.”

그 말을 전하고 책을 그의 곁에 넣었다.

그러자 마음속 어딘가에서 그의 음성이 들렸다.

“언제 이런 걸 다 했어? 여하튼 자기는 대단해.

가사처럼 웃으며 잘 살아야 해.”


미련도 아쉬움도 없이 가을을 지나 겨울을 준비하는 숲길을 걸어 나왔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마음은 고요했다.


나는,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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