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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선생 Mar 19. 2024

내일은 혼자 1시간만 걸어볼게요.

[내일은 운동해야지 3화]

혼자 걸으러 나오니 어색해요. 산책을 나올때면 늘 반려견 여름이와 함께였던 적이 대부분이라 혼자 걷기 위해 나온 건 오랜만이거든요. 내가 옴짝달싹하기 싫을때 조차 여름이 산책은 꼭 해야하는 거였어요. 우리 가족은 여름이 산책을 하루 3번 시키는데, 아침에는 남편이 시키고, 낮이나 오후에는 내가 하고, 밤에는 중딩 아들이 담당합니다. 개에게 산책은 사람에게 화장실 가는 것과 같아요. 실제로 배변을 밖에서만 하는 개들도 있구요. 자기 구역 인증도 하고 다양한 냄새를 맡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시간이라고 해요.

 

개들은 보호자가 산책시켜주길 늘 기다려요. 그래서 반려견과 사는 사람들은 '산책'이란 말을 조심스럽게 합니다. 안그러면 여지없이 끌려나가야 하거든요. 개통령 강형욱 훈련사는 개에게 밥주는 사람은 집사고, 산책시켜주는 사람은 보호자라고 말했으니까요. 그만큼 개들에게 산책은 정말 정말 중요한 필수적인 활동입니다.


그런데 이게 개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였더라구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역시 산책입니다. 주로 앉아서 일을 하고 이동할때도 차를 타는 생활이니, 햇빛 볼 일도 적고 걸을 일도 없어지는 게 일반적인 생활패턴이잖아요. 그게 우리의 건강을 서서히 무너뜨리고 있다는 걸 모르다가 정말 건강의 위기를 겪고 나서야 그 생활습관들이 문제라는 걸 알게 되는 거니까요. 저처럼요.


스탠포드 대학의 뇌과학자 앤드류 후버만 교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반드시 해야하는 일을 법으로 정한다면 무엇을 하라고 하겠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어요.


 매일 아침 햇빛을 쐬세요.
맑은 날은 5분간 강력한 빛을,
구름이 해를 가린 흐린 날은 20-30분간
빛을 쐬야 합니다.

이것은 하루 종일 에너지를 넘치게 하고, 밤에 잠을 잘 자도록 유도한다고 해요. 여러 신체기능이 좋아지죠. 그래서 전 주로 반려견과 함께 밖에 나가 산책이란 걸 합니다. 산책은 느긋하게 걸으니 숨도 차지 않아 딱히 유산소 운동도 되지 않습니다. 땅을 팍팍 디디며 힘주어 걷는 게 아니니 다리와 엉덩이 근육 단련에 크게 도움이 되지도 않아요. 더구나 저처럼 반려견과 함께 하는 산책은 중간중간 냄새 맡으려는 개의 걸음에 맞추다보니 자주 멈추면 하나마나한 움직임이 아닐까 의심스럽기도 하죠.


맞아요. 산책은 운동이라고 하기에는 힘이 하나도 들지 않아요. 그래서 시작하기 쉽고 할만해요. 하지만 생각보다는 꽤 운동이 되어 건강에 무척 좋습니다. 그러니 나같이 운동 싫은 사람도 할 수 있고, 산책 후에는 달라진 기분을 바로 느끼죠. 실제로 저는 걷기 1년6개월을 하고서 우울증 약을 끊은 경험도 있어요. 꼭 숨차게 걷지 않고 느긋하게 걸어도 괜찮아요. 그러다 좀 힘이 생기면 더 많이 걸어보고 빨리 걸어보면 됩니다. 한번에 변하는 인생은 없어요. 그저 걸으며 내가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껴요. 고민하던 것들이 흐려지고 잠시 잠깐 골몰하던 일들을 손에 넣고 휴식할 수 있어요.


어느 날 반려견 산책 중에 배변 봉투를 들고 걸었더니 공원 청소하시던 관리자분께서 절 부르네요.


"그거 이리 가져와유"

"네? 아~"

"그것도 들고 다니면 팔 아파유"

" 하하하! "

" 다음에 또 나 보믄 여기다 넣어유"

" 감사합니다~"


순간 바깥기온이 5도는 더 높아진 기분이예요. 공원 관리인 아저씨의 따뜻한 마음씨가 꽃들을 서둘러 피울것만 같네요. 그냥 느긋하게 걸으며 계절을 변화를 관찰하고 우연히 지나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지어보는 거죠 뭐. 모르는 사람과 나누는 미소와 짧은 인사로도 가끔은 우리의 피로와 외로움이 그 순간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는 경험을 해보면 좋겠어요.


자~오늘은 반려견과의 산책은 미리 해두고 정말 제대로 걸어보려고 나왔죠. 걷다가 마음이 움직이면 뛰어도 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1시간 이상 혼자 걷는 것도 오랜만이라 무리하지는 말아야죠. 춘분이 다가오니 사람들 옷차림보다 자연이 먼저 봄옷으로 갈아입은 듯 하네요. 매화도 피고, 산수유 꽃도 피고, 싸리꽃나무의 초록 잎들이 앙증맞고 귀여워요. 촉촉한 땅에는 이름 모를 어린 새싹들이 고개를 삐죽 내밀고 있어요.


모처럼 혼자 걸으려니 어색하기도하고 심심하기도 하지만 전 음악은 일부러 듣지 않아요. 세상의 소리와 냄새에 집중하고 싶거든요. 오히려 강한 자극을 줄이고 지나는 사람들 대화 소리, 까마귀와 까치 소리, 왁자지껄 떠들며 지나가는 중고딩 아이들의 생기 넘치는 소리, 팔짱끼고 걷는 연인들의 다정한 말소리 그렇게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더 작은 소리들도 들을 수 있죠. 졸졸졸 개울물 소리와 오리가 자맥질하는 소리뿐 아니라 일찍 핀 민들레 수다소리도 들립니다.


난 생각이 많다보니 그 생각들에 파묻혀 움직이지 못하고  주변이 보이지 않을때, 그 생각들을 떨쳐내고 밖에 나가 의도적으로 세상을 구경하고 세상의 소리들을 듣습니다. 그러면 세상은 불필요한 내 생각과 근심과 무관하게 잘 흘러간다는걸 알게 해줘요. 내친김에 내 생각과 걱정들도 밖에 덜어놓고 들어옵니다. 그럼 머리속이 좀 고요해지죠.


걷다보니 겉옷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고 등에 땀이 베어나네요. 내 옆으로 달리는 사람들의 땀냄새에 흘깃 앞을 보니 그들의 건강한 허벅지와 종아리가 보이네요. 나도 건강한 다리를 갖고 싶어져요. 따라서 한번 달려볼까요? 아니요. 아직이요. 달리려면 마음의 준비도 필요하고 지금 이 낡은 운동화로는 안될 것 같아서요.


우선 내일은 운동화부터 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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