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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면 May 22. 2024

선생님과 목련

선생님이 소리를 지르는 이유는 단 하나다 

우리가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잘 된 우리란, 잘 버는 직업을 가지게 된 우리를 의미한다

잘 버는 직업을 가진 우리에겐 잘 사는 방법이 자연스레 열리는 법이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소리를 지르다 울기 시작했다

'잘' 버는 직업을 가진 선생님이 우는 이유는 단 하나다

교실 창문 너머로 목련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그 낙화의 무게만큼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학생들이 가여워서이다


'잘' 된 나는 잘 되어가던 학생 시절의 내가 보았던 봄을 잊지 못한다

목련 꽃잎이 문드러질 때 어찌나 흉한 모습으로 썩어가는지를 잊지 못한다

하얗고 두꺼운 꽃잎 끝이 오래된 바나나처럼 시꺼멓게 녹아내리다

마침 그 앞을 지나가던 정년을 앞둔 교장 선생님의 구두 뒤축에 짓눌렸다


뒤틀리고 문드러진 하얀 꽃잎은 일주일도 되지 않아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선생님이 교실 뒤편에 아이들을 벌세우고 소리를 질렀다

우리가 잘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지고 계신데

우리 중 누군가는 자꾸 '잘' 된 우리 안에서 벗어나려고 

테두리 바깥 외롭고 고된 삶 속에 투신하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창문 너머를 보면 이 층 높이짜리 목련 나무가

천 개의 눈동자 없는 눈으로 교실 안을 훔쳐보고 있었다

그중 누군가는 시꺼멓게 썩어가며 뒤축에 짓눌려야 한다고 그것이 자연의 섭리라고

나무는 선생님 등 뒤에서 몰래몰래 속삭였다 두려워 잊히지 않는 음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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