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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용 가면

by 라면

다음 시간에 계속합시다

오늘은 이만 말을 줄이고

잊히던 것들을 되새겨 봅시다


일기장을 펼쳤습니다

잊히던 것을 부활시키기 위해 원을 그리고

영혼을 접착시키기 위해 피를 몇 방울 떨어뜨립니다


나는 내세울 것이 별로 없어서요

제식을 위해선 가면을 써야 했습니다

가면을 쓰고 나면 말이 술술 나와요

한 편 거짓을 써내고 나면 어찌나 내가 미워지던지


가면을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잔뜩 뿔이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한 편 축사 위에 또 다른 한 편을 덧씌우려 했지요

그것이 내가 되리란 미신을 믿었거든요


영의 힘을 빌려 써내려 간 문장 뭉치 끝에

온점이 하나 찍혀 있었습니다

그 광택 나는 시꺼먼 표면을 응시하면

작디작은 거울상이 비쳐 보이는데


가면을 쓴 채

축복한다는 거짓을

아무렇지 않게 지껄이는 누군가가 비치는데...


그래요 오늘은 이만 말을 줄입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하기로 합시다


그 말은 곧

다음에도 당신만은 만나고 싶다는 말.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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