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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면 May 23. 2024

의식용 가면

다음 시간에 계속합시다

오늘은 이만 말을 줄이고

잊히던 것들을 되새겨 봅시다


일기장을 펼쳤습니다

잊히던 것을 부활시키기 위해 원을 그리고 

영혼을 접착시키기 위해 피를 방울 떨어뜨립니다


나는 내세울 것이 별로 없어서요

제식을 위해선 가면을 써야 했습니다

가면을 쓰고 나면 말이 술술 나와요

한 편 거짓을 써내고 나면 어찌나 내가 미워지던지


가면을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잔뜩 뿔이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한 편 축사 위에 또 다른 한 편을 덧씌우려 했지요

그것이 내가 되리란 미신을 믿었거든요


영의 힘을 빌려 써내려 간 문장 뭉치 끝에

온점이 하나 찍혀 있었습니다

그 광택 나는 시꺼먼 표면을 응시하면

작디작은 거울상이 비쳐 보이는데


가면을 쓴 채

축복한다는 거짓을

아무렇지 않게 지껄이는 누군가가 비치는데...


그래요 오늘은 이만 말을 줄입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하기로 합시다


그 말은 곧

다음에도 당신만은 만나고 싶다는 말.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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