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백수가 되었다. 내가 책임지고 있었던 사업이 종료되면서 나의 계약도 자연스럽게 종료되었다. 워킹맘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한동안 행복한 생활을 즐겼었는데, 갑작스럽게 백수가 된것도 아니고 사전에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백수가 된다는것은 나에게 우울함을 주었다.
백수가 된 나에게 두가지 선택지가 주어졌다. 또 다시 워킹맘이 되기 위한 취업준비를 할것인지, 아니면 전업 주부로 돌아갈 것인지, 선택해야했다. 사실 이문제는 선택하기 전부터 결론이 내려져 있었다. 나는 다시 워킹맘이 되고 싶었다.
다만 시기가 걸렸다. 아이의 첫 방학을 앞두고 있는 이 시기에 재취업을 하게된다면 아이의 방학생활이 걱정이었다. 어린이집 다닐때처럼 방학이 짧은것도 아니고 한달 가까이 되는 방학 기간 동안 부모의 부재는 큰 문제라고 생각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에게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끼니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것이었다. 아침밥은 방학이라 늦게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일찍 출근하는 엄마가 차려놓은 밥을 스스로 먹으면 된다고 하지만, 점심밥은 매일 배달음식으로 대신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더워지는 날씨에 차려놓고 나올수는 더더욱 없는 일이었다. 설사 끼니를 어찌 어찌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매일 혼자 집에 남겨지는 아이가 걱정이었다. 첫 방학인데 그래도 의미있게 보낼 수 있도록 해주고 싶은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어찌 어찌 운이 좋아 아이의 방학전에 취업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집 근처 어디에서 괜찮은 알바를 시작하였다고 하더라도 아이의 방학까지 두달 정도 일하다 아이의 방학을 이유로 그만두기엔 내가 취업한곳이 어디든 그 취업한곳에 못할일이라는것을 나 또한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신랑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신랑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을 하였다. 취업을 꼭 하라는것은 아니지만, 만약 취업을 해야겠다면 방학이 지나고 천천히 알아보며 마음에 드는곳에 취업하기를 추천하였다.
하지만 천천히라고하는건 젊을때나 가능한 단어가 아닐까 생각했다. 내일모레면 마흔을 앞두고 있는 나의 나이는 천천히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엔 애매한 나이였다. 내가 애매하지 않다고 내 나이가 어때서라고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인사담당자에게 나의 나이는 나의 경력은 애매하게 작용될것이라는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내가 인사담당자라고 하더라도 내 나이를 생각한다면, 인사담당자보다 나이가 많을 수 있는 나를 뽑는것을 어려워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마음이 더욱 급해지는 요즘, 신랑은 출근하고 아이는 등교하고 난 후 적막감이 흐르는 집에서 우울감을 느끼게 된다.
평생 놀고 먹는 팔자, 일하는 팔자가 있다면 나는 일해야 살 수 있는 팔자인가보다. 이대로 나만 혼자 집에 머무르게 될까봐도 두려운 나와, 그렇다고 아이의 방학을 그냥 지나칠수도 없는 엄마의 마음사이에서 갈팡질팡한 요즘이다. 이러다 또 어딘가에 떠밀리듯 나의 의사와 상관 없는 결과가 나올까봐도 두렵다.
이력서를 작성하고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취업사이트를 뒤지면서, 적당한 일자리를 찾는다. 그러다 나에게 알맞은 곳이라 생각되면, 바로 지원하지 못하고 또 한번 망설이게 된다. 방학에 혼자 남겨질 아이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아니면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하는 용기를 내기까지의 망설임인지는 알 수 없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할때까지만 해도 내가 이곳에 합격 전화를 받고 말리라며 호기로웠던 나의 마음이 지원하기 버튼 하나에 무너져 또 다시 두근거리는것을 주체하지 못하고 망설이다 취업 정보를 스크랩 해 놓는것으로 만족해버린다.
한번은 점점 더 겁쟁이가 되어가고 있는 나의 모습이 화가나 신랑에게 "당신은 이직할때 안무서웠어요?" 하고 물어본적이 있었다. 나만 이렇게 소심한 겁쟁이가 된것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러고보면 신랑은 한번도 이직 하면서 나에게 망설임이라는것을 보여준적이 없었다. 그런 신랑에게 돌아 온 대답은 의외였다. "무섭지 왜 안무서워 근데 그냥 하는거지" 나에게 보이지 않았던 가장의 무게는 이런것이구나를 느낄 수 있었던 대답이라 신랑의 그말을 듣고 그 무게를 조금 덜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스크랩 해놓았던 취업정보에 지원하기 버튼을 눌러버렸다. 다들 새로 시작해야하는 것에 대한 마음의 무게는 느끼고 있는데 그걸 어떻게 이겨내느냐의 차이였을뿐, 나의 마음의 준비가 문제가 아니라 준비는 이미 다 해놓고 실천만하지 못했던것은 아닐까 생각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