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습 시간에 별빛이가 조용히 노란 쪽지를 주고 갔습니다. 평소 조용한 별빛이가 건네준 쪽지에는 어제 체육 시간에 겪었던 불편함이 반듯한 글씨로 담겨져 있었습니다.
“어제 체육 시간에 친구들이 떠들고 체육 선생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학급 회의를 할 좋은 기회가 왔습니다. 학급의 수업 분위기를 돌아보고 아이들이 원하는 수업에 대해 이야기할 시간이 왔습니다. 5월의 길목에 있는 지금 시기에 서로 친해진 아이들 사이에 수업 분위기가 흐려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교직 경험이 쌓이면서 좋은 일 중의 하나는 이런 일들을 큰 감정의 동요 없이 받아들인다는 것이고, 심지어 올해는 ‘때가 되었군!’하고 이 상황을 예측하고 기다렸던 저를 마주합니다. 감정 출석부로 기분을 나누는 시간에 달빛이가 어제 화가 난 이유로 체육 시간에 규칙을 지키지 않은 누군가를 이야기합니다. 자연스럽게 분위기는 체육 수업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옵니다. 달빛이가 이야기한 누군가는 그날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지만, 사실 수업 분위기는 학급 구성원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슬램덩크의 포인트가드 송태섭이 잘 풀리지 않던 산왕과의 경기에서 공을 인터셉트하며 동료들에게 외치는 말이기도 하죠.
“흐름은 우리들이 가져오는 거야.”
더 퍼스트 슬램덩크감독이노우에 다케히코출연미등록개봉2023.01.04.
아이들이 불편해하는 수업 시간에 좋은 흐름을 가져오기 위해 학급 회의를 열었습니다. 우리 모두의 수업 분위기에 관련된 부분이므로 익명을 사용하고 수업에 방해되는 행동을 보는 ‘나의 생각이나 느낌’에 집중하기로 합니다.
# 체육시간, 수업 분위기를 흐리는 모습을 보면 ~한 생각이 듭니다.
아직 학기초이기도 하고 친구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솔직히 이야기하게 될텐데, 줄줄이 발표로 말하기를 부담스러워하는 아이들을 위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각자 포스트잇에 적었습니다. 아이들이 솔직한 생각을 제출하면 제가 읽어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소수의 아이들이 규칙을 어기거나 큰 소리로 수업을 방해할 때,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수업시간이 지연되어서 불편하다, 불편하다, 체육선생님께 죄송하다, 수업 진행이 되지 않아서 짜증나고 화가 난다, 저아이는 왜 저러지 하는 생각이 든다, 체육선생님의 말을 잘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솔직한 마음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소수의 지나치게 활발한 아이들은 내 행동을 지켜보는 다수 아이들의 진짜 속마음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친구들의 솔직한 마음을 알고 있었다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테죠. 내 행동이 친구들에게 그렇게 피해를 주는지 몰랐을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첫 번 째 질문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질문에 다수의 아이들이 솔직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안정감과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교사가 해야할 일입니다. 숨죽여 있던 다수의 아이들에게는 나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목소리를, 학급에 피해를 주게된 아이에게는 조절되지 않은 나의 행동이 학급 공동체에 끼치는 영향을 눈으로, 귀로 확인하는 기회를 주는 것이죠.
# 내가 원하는 체육시간은 ~입니다.
회복적 생활교육을 기반으로 한 학급 회의에서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회의가 자칫 ‘인민재판’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인민재판의 목적은 범법자에 대한 처벌을 결정짓는 것입니다. 반면 학급 회의의 목적은 규칙을 어긴 아이에게는 나의 행동을 돌아볼 기회를, 학급 공동체에는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모두가 함께 피해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체육 시간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봅니다.
재미가 있는 체육 시간, 행복한 체육 시간, 체육 선생님께 죄송하지 않은 체육 시간, 배움과 교훈이 있는 체육 시간, 협동, 화목, 안전, 한숨이 나오지 않는 체육 시간
아이들은 자신의 의견을 솔직히, 줄줄이 발표를 통해 공개적으로 이야기 했습니다.
# 재미있고 행복한 체육 시간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입니다.
체육 시간에 우리가 입었던 피해를 직면하고, 내가 원하는 체육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이들이 가장 많이 원했던 체육 시간은 <재미있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한 학급 분위기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봅니다. 수업 분위기나 학급 분위기는 함께 만들고 노력하는 부분임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아이들이 고민 끝에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경청, 선생님께 마음을 표현, 협동, 친구가 알아차리도록 알려주기, 싸우지 않기
아이들은 내가 해야 할 부분을 명확히 알고 있습니다. 경청을 가장 많이 언급해주었고, 솔직함이 매력인 늘빛이와 같은 친구들은 규칙을 잊은 친구에게 솔직히 알려주는 일도 하겠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모두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실천 가능한 일들을 발표해주었습니다. 이 부분을 잘 지킨다면 좋은 수업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을거라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줍니다. 솔직한 나의 의견을 표현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에 진지하게 참여해준 아이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회의 결과를 게시판에 게시해둡니다.
서로의 기여와 노력이 모여 내가 원하는 학급을 만듭니다. 모두의 의견을 듣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은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만큼의 가치가 있습니다. 학급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회복적 생활교육을 기반으로 한 회의를 통해 해결책을 찾아갑니다. 오늘이 시작이죠. 문제의 끝은 잔소리나 처벌이 아니라 모두 함께 고민하는 ‘해결’의 과정에 있음을 알아가는 첫 시간이었습니다. 문제상황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던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