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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쌤 Dec 16. 2021

완성형 VS 과정형

 얼마전 종영한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신경외과 펠로우 역할을 맡은 용석민이 인상깊었다. 어려운 가정에서 돈을 벌기 위해 의사가 된 그는 초반에 자신의 논문을 위해 확률이 높지 않은 수술을 환자에게 강요하기도 하고 중반에는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종합병원으로 이직을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다시 율제병원으로 돌아왔다. 사람은 어쩌면 유리 슐레비츠의 그림책 「보물」의 한 구절처럼 ‘가까이 있는 것을 찾기 위해 멀리 떠나야 할 때도 있는 것’ 같다. 어쨌든 돌아온 용석민은 이전과 달랐다. 수술을 하지 않으면 실명을 할 위기에 처한 환자가 수술에 대한 부담감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수술을 거부할 때, 몇 번을 찾아가 쉽게 설명하고 설득해 수술동의를 받아낸다. 그의 지도교수 채송화는 “ 나는 완성형 인간보다는 너처럼 과정형 인간이 더 좋아...”라는 말을 남긴다. 지도교수가 초반 용석민의 행동을 모르지 않았을텐데 참을성있게 기다려주고 믿어준 것, 그 마음에 보답하듯 성장을 거듭하는 용석민과 그 성장을 알아봐주는 지도교수의 관심이 참 따뜻하게 다가왔다.

 교실에도 완성형 아이가 있다. 때로 어른인 나보다 더 마음이 넓고 자신의 일상을 잘 만들어가는 아이들이 있다. 몇 해 전 만난 호준이는 완전한 모범생에 가까운 아이다. 학급 회의에서 자신의 의견을 자신 있게 말하고 수학여행에서 100명이 넘는 아이들 앞에서 홀로 오카리나를 연주할 정도로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있다. 전교회장 선거에 출마했을 때, 같은 학년의 인기가 높은 후보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교사의 양해를 구하고 점심시간을 쪼개어 4~5학년 교실에서 따로 선거연설을 하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방송연설에 중점을 두어 목표한 전교회장에 당선될 정도로 목표의식이 있는 아이다. 학창시절의 나를 호준이의 자리에 데려다놓았으면 아마 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음이 힘든 아이들을 잘 챙기고 배려심 깊어 당시 학급에서 감정조절이 잘 되지 않던 서준이는 호준이와 친분을 나누고 싶어했고 호준이는 서준이를 잘 챙겨주었다. 내가 본 완성형 아이인 호준이는 나의 신뢰도 받았지만 나 이전에 5명의 담임교사에게도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받았을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원씽의 저자 게리 캘러가 말했듯 사람의 에너지는 유한하다. 하지만 한 그릇에 담긴 나의 에너지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전적으로 나의 의지에 달렸다. 

교사로서의 나 역시 다르지 않다. 교사의 시야는 유한하고 에너지의 양 또한 그렇다. 에너지가 유한하다면 에너지를 어디에 쏟을것인가 선택해야 한다. 나는 의식적으로 완성형 아이 보다는 과정형 아이에게 에너지를 쏟으려 노력한다. 노력이 중요하다. 노력하지 않으면 저절로 완성형 아이를 보게 되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의식적인 노력이 없으면 귀여운 둘째를 넋놓고 바라보며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차싶어 돌아보면 첫째의 질투어린, 날 선 눈빛을 마주하는 때가 많다. 교실에서도 다르지 않다. 나의 말을 귀기울여 들어주고 나의 말을 지키려 노력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려 노력하는 완성형 아이들을 보면 바쁘고 힘든 일상에 마음에 위로를 얻기도 하고 계속 바라보며 긍정적 강화를 주고 싶어진다. 하지만 귀여운 둘째만 바라보는 것이 엄마가 없을 때 둘째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을 알 듯 교실에서도 그렇다. 너무 그 아이에게만 관심과 칭찬을 하는 것은 그 아이에게도 좋지 않다. 


교사는 의식적으로 시선을 돌려 과정형 아이의 성장의 징후를 찾아내야 한다. 과정형 아이가 성장하면서 주는 긍정의 에너지가 과정형 아이도 살리고 완성형 아이와 함께 생활하는 학급의 분위기를 더 긍정적으로 만든다. 한정된 물을 이미 싱싱하고 꽃이 핀 화분에 주기 보다는 한모금의 물이 절실한 시들어가는 화분에 주어야하는 이유다. 완성형아이는 이미 안정된 내적 자산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교사의 관심과 사랑이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과정형 아이는 다르다. 교사의 관심 한 번, 말 한마디가 아이의 어두운 터널에 한줄기 빛이 되기도 하고 평생을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과정형 아이에게 집중하면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고 그로 인해 때로 마음이 힘들지만 어느 순간 ‘보람’이라는 큰 선물을 주기도 한다. 쉬운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교실에서의 어른이라면 당연히 ‘쉬운 일’ 보다는 ‘옳은 일’ 혹은 ‘해야만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고 믿는다. 고학년을 맡으며 그동안 물을 얻지 못해 많이 시들어버린 아이를 찾는 것, 그 아이가 말라죽지 않도록 한모금의 물을 주는 것, 그것이 나의 교사로서의 보람이자 사명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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