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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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금 지급에 며칠씩 걸리던 시대는 이제 저물고 있다. 진단서를 발급받기 위해 병원을 전전하며 서류를 모으던 풍경이 사라지고 있다. 대신 ‘1분 지급’이라는 속도가 보험 산업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고객은 더 이상 불편한 절차를 견디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다. 이제는 언제 어디서든 실시간으로 보장을 체감하는 능동적 주체로 바뀌고 있다. AI가 촉발한 변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카카오페이 해외여행보험이다. 고객은 DIY 방식으로 필요한 보장만 선택할 수 있고, 안전귀국 시 환급을 받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항공기 지연이 발생하면 단 1분 만에 보험금이 지급된다. 카카오톡을 통한 24시간 청구 지원과 함께 출시 2년 만에 가입자 400만 명을 돌파했다. 보험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느린 청구와 복잡한 지급 절차가 AI 덕분에 빠르게 해체되고 있는 것이다.
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네이버페이는 사진 한 장으로 여러 보험사에 동시 청구가 가능한 간편 청구 서비스를 선보였다. 마이데이터와 연계해 고객이 놓치기 쉬운 보장 범위를 즉시 확인시켜 준다. 삼성화재와 한화생명은 AI OCR로 영수증·진단서·처방전을 자동 분류·접수해 일부는 20분 내 지급이 가능하다. 정부가 추진하는 ‘실손24’ 프로젝트 역시 의료기관에서 진료 내역과 영수증이 자동 전송되도록 해, 고객의 번거로운 서류 제출 부담을 크게 줄였다. ‘빠른 지급’은 이제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보험 산업의 새로운 표준이 되고 있다.
청구와 지급 혁신에서 출발한 AI 활용은 이제 마케팅과 영업 전략으로 확장되고 있다.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 연령, 건강,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초개인화 상품 추천이 가능하다. AI는 해지 가능성이나 교차판매 기회를 예측하고, 설계사에게 맞춤 대응 전략을 제시한다. 챗봇과 AI 콜센터는 고객 문의를 24시간 처리하면서 대화 도중 영업 기회를 포착한다. 웨어러블과 IoT 연계 상품은 고객의 건강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험료를 할인하고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해외에서도 흐름은 거세다. 미국의 Lemonade는 AI 챗봇으로 가입부터 보상까지 전 과정을 자동화하며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중국의 Ping An은 AI 기반 헬스케어 앱을 통해 수억 명의 사용자를 확보하고, 이를 자연스럽게 보험 가입으로 연결했다. AI가 고객 경험을 매출 성장의 동력으로 전환한 대표적 사례들이다.
보험 광고와 마케팅도 새 국면을 맞았다. 미국의 Progressive 보험사는 생성형 AI를 활용해 수십 가지 버전의 오디오 광고를 제작했다. AI는 어떤 문구와 톤이 고객의 반응을 이끌어내는지 학습했고, 그 결과 광고 제작 기간은 획기적으로 단축되었으며, 고객 참여율과 제안 요청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이제 보험 광고는 고객 개개인에게 맞춤형으로 전달되는 시대로 진입한 것이다.
AI의 영향력은 빠르고 넓게 확산되고 있다. 리스크 관리에서도 예측 모델과 리스크 스코어링이 도입되며, 사고 가능성과 청구 확률을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됐다. 보험사는 단순히 사고 후 보상하는 존재가 아니라,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예방하는 라이프 파트너로 진화할 수 있다. 보험료 할인, 맞춤형 보장 설계, 건강 관리 프로그램까지 아우르는 패러다임 전환이 가능해진 것이다.
앞으로 보험 산업은 AI 기반 초개인화 상품과 실시간 피드백 서비스가 표준이 될 것이다. AI는 고객 데이터를 분석하고 전략적 인사이트를 제공하며, 인간 설계사는 공감과 상담, 맞춤 설계 같은 고부가가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 결국 AI는 단순 효율화 도구를 넘어, 보험사의 전략적 경쟁력을 재정의하는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다.
이제 보험은 더 이상 사고가 났을 때 보상받는 ‘사후 제도’가 아니다. AI와 만나면서 보험은 고객의 일상과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경험으로 변모하고 있다. 향후 보험 산업의 판도는 AI를 얼마나 전략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갈릴 것이다. 보험의 미래는 AI와 함께 설계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