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기세와 형세가 만든 U-16 배구팀 승리의 비밀

용겁세야, 강약형야 (勇怯勢也, 强弱形也)

by 최송목
한국 U-16 여자배구대표팀 선수들 /사진=아시아배구연맹페이스북 캡처. 연합뉴스

지난 2025년 11월 9일 한국 여자배구 U-16 대표팀이 아시아 정상에 등극했다. 한국이 연령별 아시아선수권에서 우승한 건 2004년 남자팀 이후 21년만, 여자만 따지면 1980년 이후 45년 만이다. 저출생으로 선수층이 얇고, 국제 순위는 40위로 밀린 현실 속에서, 중학교 3학년 소녀들이 연이어 일본과 대만을 제압하며 우승을 차지한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사건이다.


이번 승리의 핵심은 개인 능력이나 근성만으로 보기 어렵다. 일본, 중국, 태국처럼 선수층이 두껍고 경험 많은 국가들과 달리 한국은 국제 경험이 제한적이고 평균 연령도 낮았다. 현실적 조건이나 구조적으로만 보면 기대하기 어려운 전개였다. 하지만 감독은 개인과 팀의 에너지를 정교하게 설계해 불리함을 극복했다 ‘용기와 자신감은 팀의 기세(氣勢)에서 나오고, 강함과 약함은 형세(形勢)에서 비롯된다’는 손자병법 전략이다. 바로 “용겁세야, 강약형야(勇怯勢也, 强弱形也)”라는 구절이다.


먼저 ‘기세(氣勢)’를 보자. 기(氣)는 보이지도 않는 힘(Energy)이고, 세(勢)는 흐름이나 분위기다. 이 기와 세의 결합이 ’ 기세‘다. 손자병법에서 기세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용겁 세야 (勇怯 勢也)’에서 용기는 개인적 심리현상뿐만 아니라, 집단에서도 형성될 수 있는 에너지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승여 감독은 기본기 반복훈련과 체력 관리로 선수들의 몸과 정신을 동기화했다. 반복된 습관으로 불안을 줄이고, 그런 탄탄한 멘털 기반 위에서 용기와 자신감이 발현됐다. 개인의 에너지가 팀 전체의 흐름으로 ‘기세(勢)’를 형성한 것이다.


하지만 흐름만으로는 지속적인 힘이 되지 않는다. 흐름을 지탱하는 구조가 필요하고, 그 역할이 바로 ‘형세(形勢)’다. 형세의 전형적인 모델이 진형(陣形, formation, 전투대형)이고 대표적인 기초훈련이 제식(制式) 훈련이다. 차려. 열중쉬어. 우향우. 좌향좌 같은 훈련은 전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 보이지만, 조직의 기강과 힘(勢)을 담아내기 위한 일종의 구조(틀)다.


손자병법의 ‘강약 형야 (强弱 形也)’는 소위 ‘강한 조직은 모양(形勢)부터 다르다’는 뜻이다. 이에 이승여 감독은 자율성을 부여하되 최소한의 형세(形勢)를 요구했다. 머리 단정히 묶기, 경기 중 걷지 않기, 방을 깨끗이 하는 일, 휴대폰 제한이나 직접 음식 준비 같은 규율은 모두 집중과 흐름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한 형세 설계다.


기세와 형세의 두 축은 상호보완적으로 작동한다. 기세는 방향과 속도를, 형세는 구조와 문화의 지속성을 담보한다. 선수들이 규율과 흐름을 받아들이며 자발적 팀 문화가 형성되자, 개인의 자신감과 역량은 조직 에너지로 집중 동화되어 증폭됐다.


이 기세와 형세의 작동 원리는 비단 스포츠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개인의 역량 강화와 자기 관리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예컨대, 많은 사람들이 예비군복을 입었을 때와 정장을 입고 외출했을 때의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될 것 같은 편안한 복장(형세)은 행동의 긴장감(기세)을 낮춘다. 반면, 격식 있는 정장(형세)은 그 옷차림에 맞게 조심스럽고 신뢰감 있는 태도(기세)를 스스로 갖도록 유도한다.


이는 '마음의 자세(기세)'가 곧 옷차림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옷차림(형세)'이라는 외부의 틀과 구조가 내부의 '마음의 자세(기세)'를 좌우하고 관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인의 책상 정리 정돈, 하루의 여러 가지 소소한 루틴, 깔끔한 업무복장 등 스스로 설정한 작은 '형세'가 집중력과 자신감이라는 '기세'를 끌어올리는 강력한 지렛대가 될 수 있다. 결국, 성공은 기세와 형세 두 축의 적절한 운용이다. 기세로 에너지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형세로 그 흐름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것이다.


이처럼, 기세와 형세의 운용 원리는 조직 경영 및 현대 스포츠에서도 핵심 전략으로 작용한다. 이번 한국 U-16 대표팀의 승리가 그러하듯, ‘강한 조직’은 강한 의지와 열정만으로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인다고 되는 게 아니다. ‘기세와 형세’에 기반한 조직 문화 설계와 그 흐름을 함께 실천. 관리함으로써 만들어가는 하나의 전략적 작품이다.


https://m.skyedaily.com/news_view.html?ID=292233

<참고 인용 발췌>

1. 이해준기자, 중앙일보, 머리부터 묶게 하니, 소녀들이 팀이 됐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경로 우대는 많은데, 글자는 여전히 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