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나 하지 농사는 뭐 하러 지어.” 이렇게 말한 금예 할머니 자신은 한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농사를 지으며 사는 삶이 고되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닐 것이다. 농사 짓는 삶을 세상이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어떤 방식으로 천대하는지에 대해 몸으로 겪었기에 그리 말한 것일 테다.
금예 할머니는 스물이 채 되기 전의 나이에 결혼을 하고, 목 씨 성을 가진 사내의 가족과 함께 살았다. 그리고 원댕이마을에서 목 씨 성을 가진 이들이 대대손손 지켜온 땅에서 마을 사람들과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왔다. 이곳은 고구마가 잘 되는 곳이라고, 할머니는 말했다.
“두둑을 더 높이 쌓았어야지. 그렇게 고구마 심은 건 다 헛일이야.” 그가 한평생 몸으로 쌓아낸 지혜를, 나는 덥썩 덥썩 전해듣는다. 금예 할머니는 유아차를 끌고 집밖을 나선다. 그가 사는 집에서 100m 남짓한 거리에 나와 친구들이 일구는 텃밭이 있다.
어느 겨울, 쪼그려 앉아 마늘을 심으려는 우리에게 어김없이 할머니는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하루나 씨앗이 있었다. 마늘 옆에 하루나 씨앗을 뿌리라고, 처음에는 조언만을 하는 것 같더니 어느새 할머니는 밭 안에 들어와 있었다. 바람이 세게 부는데 하루나 씨앗을 그냥 호로록 호로록 손으로 뿌렸다. “어~ 어~ 할머니, 씨앗이 바람에 다 날라가는데요.” 말하며 웃었더니, 할머니도 슬그머니 같이 웃었다.
“이제 봄이 오려나보다.” 봄이 오는 것을 반가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함께, 하루나 씨앗이 싹을 틔웠다. 이파리가 무럭무럭 자라났다. 하루나에서 꽃이 피기 전에, 이파리를 뜯어서 된장국도 해먹고 겉절이도 해먹었다. 그래도 이파리는 계속해서 자라났다.
“모카, 저 왔어요~” 돈 없고 땅 없는 젊은이들에게 땅을 내어준 친구의 이름은 모카다. 모카는 자신의 집 뒷마당을 보라고 했다. 그의 말을 따라, 뒷마당에 가니 노란빛 유채꽃이 만개해 있었다. 유채꽃을 많이 심어둔 관광지에 굳이 갈 필요 없이, 모카네 집 뒷마당에서 우리는 “아 예쁘다” 소리를 남발하며 많은 사진을 찍었다.
유채꽃의 노란빛을 향해 아름다움을 잠시 만끽하고, 텃밭에 새로운 모종과 씨앗을 심으러 향했다. 어김없이 할머니는 다가왔다. 그의 유아차 위에는 유채꽃 한 다발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말에 잠시 응답하고, 할머니는 마을 도랑에 유채꽃을 버리려고 했다.
“어, 할머니 그거 왜 버려요. 그렇게 예쁜 걸!” 모카가 할머니에게 묻자, 할머니는 이제는 씨앗을 채집했으니, 꽃은 버려도 된다고 답했다. 도랑에 버려질 뻔한 유채꽃은 모카의 개입으로 인해 나와 친구들의 책상 위에, 플라스틱 보틀 안에서 생명을 며칠 더 연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