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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그림 Aug 23. 2024

6. 그것은, 풍경 3

이사를 하고 5년 남짓 지나고 위기가 찾아왔다.



이 멋진 한강 뷰 아파트에 살기 위해선 매달 월급의 삼분의 일에 달하는 원금과 이자를 꼬박꼬박 내야 했다. 그런데 하늘은 내편이 아니었다. 2020년 3월 갑자기 대부분의 비행기 운항이 중단되었다. 하늘길이 닫히고 있었다. 세상을 멈추게 한 코로나 팬데믹으로 항공업계 종사자인 나는 당분간 일이 없어졌다. 나의 월급에 적신호가 들어왔다. 당장 얼마 후부터 아파크 관리비, 공과금, 통신비, 교통비, 식비 같은 생활비와 생활 용품 구입비, 문화생활 지출, 의류 구매 지출 등의 품위 유지비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고민이 깊었다. 이 팬데믹의 끝을 알 수 없다는 게 더 문제였다. 아파트 구입과 이자납입으로 5년 간 모아 놓은 돈은 병아리 눈물만큼이었다. 누가 돈 걱정이 가장 쉬운 거라고 그랬나 막상 닥쳐보니 무척이나 힘들었다. 처음으로 돈 많은 사람이 진심 부러웠다. 나는 밤잠을 못 이루는 날이 많아졌고 입맛도 떨어졌다.


출근하지 않으니 갑자기 시간이 많아졌다. 일을 안 하고 논다고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마음이 답답해서 무작정 집을 나갔다. 한강변을 따라 산책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 앞 벤치에서 쉬고 있는데 유리벽에 이달의 프로그램 시간표가 쫘악 붙어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둘러보다가 해보고 싶은 몇몇 강좌를 발견했다. 골프, PT, 필라테스, 요가, 에어로빅, 스트레칭 등등이 있었다. 그중에 요가를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또 강변으로 자전거를 타러 나가기로 했다.


자전거를 타고 나가면 한강공원 상수 나들목, 자전거를 세워두고  바로 앞 간이 운동기구로 준비 운동을 한다. 팔도 돌리고 허리도 풀어주고 하체 운동도 돌아가면서 5분씩 하고 본격적으로 자전거 타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먼저 오른쪽으로 갈 것인지 왼쪽으로 갈 것인지부터 정해야 한다. 주로 오른쪽을 선택한다. 염불보다 젯밥에 관심 많은 스타일인 나는 망원 시장에 들러 점심을 먹고 연남동으로 넘어가 예쁜 카페를 갈 생각이 먼저였다. 이렇게 운동을 시작하면서 순간은 근심 걱정이 해소되는 듯했지만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그 답답함은 고구마 100개였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갔다.


그런데 차를 타고 다닐 때는 몰랐는데 걸어 다니다 보니 합정동, 망원동, 연남동 그리고 연희동까지 유니크한 공간들이 참 많았다. 작은 갤러리도 브런치 카페도 힙한 베이커리들도 색다른 소품가게도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을 해서 특색 있게 꾸민 공간들이었다. 아기자기하게 만든 작가들의 공방도 있었고 오래된 집을 수선해서 특별해진 공간도 많았다. 볼거리가 많았다.


문득 내가 서울에 정착한 20년 전 이런 풍경을 홍대 일대에서 보았던 것 같았다. 그렇다. 홍대라는 지역 특성이 있었다. 메인 거리에는 유명한 셰프의 레스토랑이나 애플이나 카카오 프렌즈 같은 힙한 브랜드의 매장들이 있었다. 그리고 뒷골목에는 그림 그리는 사람, 도자기를 빚는 사람, 가구를 만드는 사람, 액세서리나 귀금속 공예를 하는 사람 등등 예술가들의 작업실들이 많았다. 그 공간들이 지금 이쪽으로 밀려온 것 같았다. 홍대 앞 이렇게 사라진 공간들이 이동한 것 같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것이 그 말로만 들었던 예술가 이동 경로인가? 합정, 망원을 지나 연남 그리고 연희동까지 말이다.  마치 뉴욕의 예술가들이 이동한 루트인 첼시, 소호, 웨스트 빌리지, 이스트 빌리지, 로우 이스트 그리고 강 건너서 윌리엄스 버그 그리고 그린 포인트까지 부동산 가격이 너울을 치는 아주 쓸쓸한 현대 도시의 풍경 같았다.


내 상태는 더 나빠지거나 좋아 지지도 않은 채 얼마간의 시간이 또 흘렀다. 그런데 내가 처한 현실을 아무리 곱씹어 보아도, 아무리 생각을 해도 답이 없었다. 그러다 생각한 것이 한강 뷰 아파트를 팔고 오래된 주택을 사서 수선을 해볼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연희동으로 거의 매일 집구경을 다녔다. 아파트에서 자전거를 타고 25분이면 연희동이었다. 한강변을 따라가다 홍제천 변으로 빠져 달리다 힘들면 벤치에 앉아 쉬기도 하고 징검다리도 건너 다녔다. 그러다 삐끗 물에 빠졌다. 무릎 밑까지 아주 얕았지만 미끄러웠다. 물비린내가 났다. 불현듯 어린 시절 연못에 빠진 날이 스쳤다. 맑은 하늘이 연못에 비춰 구름 위를 걷고 싶었던 그날이 말이다.



인생은 타이밍이라 했던가? 시기가 중요했다. 아파트를 살 때도 집을 지을 때도 말이다. 내게 운이 계속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집을 짓기로 결심했다.



20년 넘게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비행기가 멈추니까 나도 멈춰버렸다. 욕심내지 않고 살기 위해 안정장치가 필요했고 자본주의 사회의 일원으로 서울에서 건강하게 살기 위해 힘든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다행스럽게 운이 굉장히 좋았다. 시기적으로 적절하게 건축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러시아 전쟁 전이라 원자재 가격이 지금 같지는 않았다. 대한민국에서는 부동산 자산이 재산 증식의 한 가지 중요한 수단이다. 그런데 나는 부동산으로 돈을 벌려고 결정한 일이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길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연희동에 집을 지었다.


40대 후반, 나는 나의 풍경을 이렇게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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