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짓기로 결정한 후 우리가 만난 첫 번째 난관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와 용가비의 오피스텔을 처분하면 자금이 마련되겠지만 당장 계약금이 없었다.
처음에는 엄마, 아빠에게 말씀드렸다.
엄마는 “계약금도 없으면서 욕심이다. 서울 아파트 그거 전세 주고 서울 근교로 이사 가는 건 어떻노?” 라며 나를 포기시키려 했다.
패스!
다음은 시누이에게 연락했다. 시누이 부부는 처음에는 집짓기 프로젝트에 동참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바로 처리하기 어려운 당시 여러 가지 주택 규제, 세금 문제가 있었다.
아웃!
몇 날 며칠을 고심한 끝에 우리는 마지막으로 시부모님을 찾아뵙기로 했다.
달 ; 말씀드리면 들어주실까?
용 ; 네가 말해 봐. 너 이런 거 잘하잖아?
달 ; 비행기 안에서나 잘하지 시부모님한테는 나도 어렵지.
용가비는 내 말에 아무런 답이 없었다.
우리는 안 되더라도 '일단 말이라도 꺼내 보자'라는 심정으로 시어머니가 계신 약국으로 향했다. 마침 어제 부동산 실장이 계약 확인 차 전화해서 은근히 다른 계약자가 나설지도 모른다고 하여 불안해하던 참이었다. 이 물건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고 또 당시로서는 다른 선택지도 없었다.
약국 사거리 전봇대 앞까지 와서도 우리는 용기가 부족했다. 계속해서 누가 먼저 입을 뗄지를 서로에게 떠넘기고 있었다.
아! 파란 하늘과 녹음이 푸르른 2020년 5월 봄날은 왜 이렇게 더운 걸까?
그날만큼 약국문이 크게 느꼈던 적은 없었다. 손에는 땀이 흥건했다. 정작 들어가자고 말은 했지만 우리는 풀이 죽은 채 젖 먹던 힘까지 내어 무거운 약국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들어와 약국 데스크 너머에 앉아 계시는 어머니께 인사를 했다. 전화도 없이 갑자기 불쑥 찾아온 우리를 어머니는 안경너머로 살피시는 듯했다. 데스크 반대편 구석에 얌전히 신발을 벗어 놓고 약제실 뒤로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통로를 예닐곱 걸음 걸어 계단을 올랐다. 세 개 밖에 되지 않은 계단이 끝없이 연결되는 느낌은 기분 탓이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계단을 올라가니 오른손에 리모컨을 들고 소파에 가부좌를 하고 TV를 보고 계시던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아버지는 “웬일이냐? 어서 와라. 앉아라 앉자. 별일은 없지? 너는 얼굴이 왜 그러니? 아픈 데는 없어?” 아버지의 걱정은 끝이 없으셨다. 뒤따라 들어오신 어머니는 딸기를 씻어 내오셨다. 우리는 딸기를 가운데 두고 식탁에 정상회담에 나선 정상들처럼 서로의 눈을 탐색하며 마주 앉았다. 과일 중 제일 좋아하는 딸기를 한 입도 먹을 수 없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시부모님께 현재 자본금을 말씀드리고 계약금은 7월, 중도금은 10월, 그리고 잔금은 12월에 지불할 것이고 아파트와 오피스텔 처분 계획 및 집짓기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설계에서부터 하나하나 상세히 설명드렸다. 그리고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자금이 융통이 안 되는 상황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계약금이 부족하다 말씀드렸다.
“어떻게 조금 빌려주시면 최대한 빨리....”말을 다 듣지도 않고 아버지는 우리를 획 등지고 돌아 앉으셨다. 기침을 크게 한 번 하시더니 가부좌를 풀고 벌떡 일어나셔서 뒷마당으로 나가버렸다. 아버지가 나가시고 얼마간 지구의 모든 시계가 멈춘 것처럼 고요했다.
그때, 정적을 깨고 어머니가 “탁!” 소리가 나도록 탁자를 세게 치셨다
하나님의 구원처럼 “내가 해줄게” 하셨다.
그 소리를 듣고 마당으로 나가셨던 아버지는 허겁지겁 들어오셨다. 아버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와 어머니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용가비는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한 자세로 입은 벌린 채 눈은 커질 대로 커지고 눈동자는 빨개졌다. 예상치 못한 한 마디에 우리 모두는 말을 잃었고 다시 고요해졌다. 그러는 와중에 나는 밝게 지저귀는 새소리에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하나님, 부처님, 성모 마리아 님 그리고 고조선의 단군님 그 누구의 목소리가 이리 따스했을까?
계약금을 치르기로 한 날보다 일주일 빠르게 어머니의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계약금 보냈다”
다른 말씀은 없으셨다.
용 : 내 통장에는 입금 안 됐는데... 어디로 보낸 거야?
우리는 그 큰돈이 어디로 사라진 것이 아닐까 순간 아득해졌다. 덜컥 겁도 났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혹시 보이스피싱으로 잘못된 것은 아닐까 별별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
“딩동!”
내 휴대폰 알림 메시지가 울렸다.
어머니도 당장 그 큰돈을 현금으로 갖고 계시지는 않았다. 약사회 신용대출로 자금을 융통시켜 주셨다. 그리고 아들이 아닌 며느리의 통장으로 계약금을 입금해 주신 것이다. 나는 너무 놀라 바로 가까운 은행지점으로 달려갔고 통장정리를 했다. 드드득 드르륵 통장지면에 글자가 박히는 소리가 전에 없이 명쾌했다. 나는 몇 번이고 통장 위의 숫자를 확인했다. 통장 위에 인자된 숫자는 몇 개에 불과했지만 어머니가 얼마나 너른 마음으로 나를 품어주고 믿어주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이제 막 며느리가 된 나에게 말이다. 몇 번이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렸는지 모른다. 하지만 어머니는 역시나 별말씀이 없으셨다.
어머니 ; 이자는 25일이다!
달 ; 네! 어머니!
암요 암요 어머니 저는 24일에 보낼게요! 몇 번을 되뇌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건축을 위한 첫 삽을 뜰 수 있었다.
그렇게 집짓기 프로젝트의 첫 번째 과제가 해결되었다.
건물이 완공되고 집 주변 몇몇 공인 중개사 사무실을 들르고 인터넷 부동산 매물을 확인하고 주변 건물들의 시세를 반영하여 각 층, 각 집마다 책정한 나름의 가격이 있었다. 하지만 내 뜻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 들어오고 싶어 하는 사람도 각자의 사정이 있었고 계약조건을 수정해 주기를 바랐으며 자신들의 상황을 수용해 주기를 원했다.
세입자와 계약서를 쓰고 계약금을 받을 때마다 어머니가 생각났다.
나는 사람들과 숫자로만 관계를 하지 않는다. 어머니에게 배운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과 절충하는 과정에서 이해하고 품어야 하는 부분도 있었고 내가 이해받는 부분도 생겼다. 확실한 건 전보다 나는 조금은 더 여유 있어졌다는 사실이다. 어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나는 또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에어버스사의 초대형 항공기 380 점보 비행기 같은 그 너른 마음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