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단정 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2020년, 코로나로 교환학생이 취소되었을 때. 토플을 다시 보지 않겠다고, 그냥 취업하겠다고 할 때 엄마는 말했다.
"그래? 마음 바뀌면 얘기해."
6달 전만 해도 카피라이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야근에 시달린 후 얻은 꿀 같은 주말, 독일이 그렇게 워라밸이 좋다는 영상을 봤다. 막상 찾아보니 독일보다 캐나다 영주권이 쉬웠고, 나 같은 직장인도 회사를 다니며 준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매력적이었다. 3주 간은 나사가 빠진 듯 살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고 할 정도로 틈만 나면 Express Entry 요건을 검색했고, 어느 대학원을 갈지 정하고. 직업을 바꿔야 하나 가서 뭐 먹고살지 좌절에 빠졌다가, 그래 길이 있겠지 희망을 보고. 코엑스에서 열린 이민 박람회를 갔더니 그랬다. 캐나다보단 미국에 가는 게 어떠냐고. 그 길로 취업 공고를 뒤지고 지원서를 50개 이상 난사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아이디어는커녕 앉아있기 조차 버거워져 퇴사했고 보기 좋게 비자 인터뷰에서 떨어졌다. 그 후 두 달 동안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싱가포르에 100개 정도 지원서를 넣었는데 인터뷰 기회는 3번이었다. 두바이에 있는 회사에도 면접을 봤다. 비자 인터뷰는 다음 주인데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과외를 매일 2-3탕 뛰고 틈틈이 면접 결과를 확인하고. 퇴근길 버스 안에서 다리를 안 떨었던 날이 없다. 나 진짜 어떡하나.
비자 인터뷰 당일, 오늘 마주칠 영사의 기분이 좋길 바라며 휴대폰을 제출하고 줄을 섰을 때. 영사가 질문하면 침착하게 I can explain, 하고는 준비된 말을 꺼냈다. 네 말 믿는다고 추가 서류 필요 없다고 할 때 서류를 창문에 들이밀었다. 교수님 추천서, 이력서, 전부. 봤으니까 비자를 내줄 수밖에 없게끔. 결과는 3초 안에 결정된다던데, 저번처럼 거절 레터를 주면 어떡하나. 타이핑을 계속하던 영사가 잠깐 자리를 비운다며 일어섰다.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뭐지? 기다리는 3분이 3년 같았다. 옆 사람은 비자가 통과되어 기쁜 표정으로 자리를 뜨고, 그걸 부러운 듯 쳐다보자 영사가 다 되었다며 지문 찍으라고, 비자 나왔다고 했다. Oh my god. 진짜 좋았다. 대사관에서 비자가 승인되었어도 여권을 돌려받을 때 비자가 취소된 사람도 있다고 해서 3-4일 동안은 마음 편하게 있지도 못했다. 일양로지스 본사에 가서 여권을 받고 비자를 확인했을 때. 3일 후 출국으로 비행기표를 예매했을 때.
모든 일은 예상 밖이었다. 퇴사 후 시작한 영어 과외 아르바이트가 씨앗이 되어 미국 어린이집에서 일하고 있다. 아이들은 정말 큰 기쁨을 준다. 첫날 낯선 어른이 어색한 표정으로 짓는 인사에도 작은 치아를 보이며 배시시 웃던 아이들. 낮잠 시간 서투르게 토닥이는 손길에도 금방 잠이 드는 천사들. 경계하던 아이가 나에게 마음을 연 게 보일 때 드는 행복감. 활짝 웃으며 달려와 내 다리를 껴안을 때 드는 만족감. 어린이집 특성상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깊은 교감을 할 순 없지만, 하라는 것보다 하지 말라는 말을 더 많이 하지만 그래도 좋다. 몸은 힘든데 아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퇴근하고 기차역으로 걸어갈 땐 깊은 충만감이 든다.
내 취향 아니라고 했던 차이티라떼를 좋아하게 되었고, 절대 안 하겠다고 했던 운전을 시작한다.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다고 했는데 아기옷만 보면 설레고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라고 했는데 자연스럽게 시작하는 스몰톡이 익숙해졌다. 1주 후, 한 달 후엔 또 어떤 모습으로 나를 깜짝 놀라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