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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멩리 Apr 30. 2024

나를 위한 약속

1. 카페인을 멀리할 것이다.

빈 속에 제로콜라를 들이붓고 디저트로 녹차 아이스크림을 먹었더니 불안이 기어올랐다. 쇼핑몰에 갔더니 침을 질질 흘리는 거대한 탐지견이 돌아다녔다. 갑자기 두려워졌다. 누가 총이라도 꺼내면 어떡하나.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앞다투어 소리를 질렀다. 우울, 불안, 공황에 안 좋은 게 있다면 하나는 마음대로 약을 끊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카페인이나 술을 마시는 거다. 그전날 약을 빼먹고 겁 없이 녹차를 마셨더니 하루 종일 심장이 덜컹거리고 손이 떨렸다.



2. 나를 우선시할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밝힐 수는 없지만, 상대가 나에게 무리한 요구를 했다. 내가 싫다고, 하지 않을 거라고 몇 번이고 말했음에도 끈질기게 압박했다. 당황해 눈물이 났다. 배신감이 들었다. 너 이런 사람 아닌 줄 알았는데. 내가 불편한 건 시키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패닉이 왔다. 출구를 찾아 달렸다. 오만 생각이 들었다. 입을 떼는 데 몇 번을 망설였는지 모른다. 그가 먼저 말했다.

"나 화 안 났어. 단지 조금 실망했어."

"실망이라고?" 되물었다. 나는 네가 무서워졌는데, 너는 실망했다고?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말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를 지켜야, 내가 나를 소중히 여겨야 남도 그렇게 할 거니까.


"내가 싫다고 말하면 그만 요구할 수 있어?"

Can you be less pushy about the things that I am not comfortable with?


그는 알겠다고 했다. 끝내 사과는 하지 않았다. 대신 말했다.

"나 너한테 강요한 거 아니야. 그냥 물어봤어. 내가 너한테 강요했어?"

그건 강요라고, 내가 싫다고 해도 끈질기게 압박한 건 강요가 맞다고 얘기하진 못했다. 신물이 났다. 잠을 자고 또렷한 정신으로 생각했다. 그를 안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너무 신뢰했다. 그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 내 친구가 이런 일을 당했다면 나는 기겁하며 말렸겠지. 그와는 끝냈다. 함께 보냈던 좋은 시간을 전부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나를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3. 내 행복을 찾을 것이다

남이 주는 행복만을 좇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기분이 좋은 건 당연하지만, 나는 나만의 것이 있어야 한다. 야리와 메리를 쓰다듬으며 온기를 느낄 때 드는 행복. 내 차를 운전하며 느끼는 행복. 맛있는 걸 먹을 때의 행복. 타인이 있어서 완전해지는 삶은 필요 없다. 더 단단해지기를, 그래서 나를 더 사랑하기를. 돌멩이처럼 타인에게 영향받지 않는 굳건함이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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