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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경 Dec 09. 2022

상실의 기술(奇術)

캐디와 사람


아들이 운전하는 차를 타는 것을 좋아한다.

아들 운전대를 잡으면 반드시 휴대폰을 차량의 블루투스 장치와 연결해 음악을 는다.

차 안의 공기는 아들에게 택된 노래들이  스며들어 부드럽다.

가끔 내가 '돼지야"라고 놀리는 그 녀석의 등빨(?)과 달리 섬세하고 서정적인 발라드를 즐겨 듣는다.

한스러운 국악풍의 노래도 좋아한다.

"엄마, 이 노래 알아? 요즘 핫한 노래인데..."

"아니, 몰라."

나는 클래식 방송을 듣기 시작한 후로 가요를  거의 듣지 않  유행하는 노래를 잘 모른다.

어느 책에선가 사람들은 "공유 본능"이 있어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가르쳐주려는 욕구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들은 자 마음에 들어온 음악이나 영화, 드라마가 있으면 꼭 나에게 보라고 권하고 심지어 중간에 확인하고 재촉한다. 자신의 감성이 틀리지 않았음을 나에게 확인받고 싶은 가 보다.


차창밖 풍경은 내 시선을 잡아두려 하고

차 안의 음악은 내 추억을 잡아두려 한다.


트랙이 바뀌고 여전히 낯선 선율과 가사의 음악이 나온다.

하지만 가수의 목소리는 에 설지 않다.

"어! 이 목소리? 이 노래 가수 ㅇㅇ지?"

라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맞아떨어진다.

"엄마, 어떻게 목소리만 듣고 알아?"

"글쎄, 나도 몰라. 가만 생각해 보니까  엄마는 어릴 때부터 목소리로 사람을 잘 기억했던 거 같아. "

정말 그랬다.

마치 "너의 목소리가 보여"처럼 누군가의 목소리는 그 음성을 들었을 때의 시간 장소로 를 데려다 놓는다.

순간,  지나간 시절의  찰나를  품고 있는 기억 서랍이 스르륵 열린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하던 시절,  사무실 유선전화의 응대는 거의 내가 도맡았다.

학원 운영업체였기에 매일 수강생들의 문의 전화와 수강생 관리를 위해 수없이 많은 통화를 야만 했다.

그리고 핸드폰이 보급되기 전이라 수십 명의 강사님들을 찾는 전화도 바꿔 줘야 했다.

그때부였을지 모른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들 한 번 들었던 것은 분간할 수 있었다.

상대방이 자신이 누군지 알리 전에 내가 먼저 누구누구 아니냐며 물었었다.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 목소리의 질감과 무늬가 다다는 것은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야 알다.

나에겐 게임처럼 흥미로웠고,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참여하게 된 그 상대방도 좋아했다.

그 사람을 알아맞혀 준 덕분에 자신이 누군가에게 각별한 존재로 인식된다고 느꼈을지 모른다.

나의 가벼운 기술이 사람들의 '인정 욕구'를 충족시는데 조금 보탬이 되었나 보다.

그 기술은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현장에서도 십분 활용되고  있다.


나는 제법 고객들이나 회원들을 잘 기억한다.

일부러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닌데도 어느새 그들은 내 기억 속으로 들어와 똬리를 틀고 있다.

이게 나에게 독인지 득인지...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내리신 선물'이라고 하던데 나는 그 선물을 제대로 받지 못한 듯하다.

나와는 반대로 유난히 사람 기억을 잘 못하는 동료들도 있다.

마치 '그날 일은 그날 잊는다.'라는 주문을 걸어 놓은 사람처럼 심플하고 가벼워 보인다.

상념의 부스러기들을 주렁주렁 달고서 털어도 털어도 털어내지 못하는 나와는 다른 상쾌함이 부러울 따름이다.


나는 여행을 가거나 혼자 산책을 할 때 사진을 잘 찍지 않는다.

게으르거나 귀찮아서 수도 있지만, 아무리 요즘 휴대폰의 해상도가 월등하게 좋아졌다고 하나, 그 실체의 느낌을 오롯이 담아내지는 못한다.

가장 중요한 건,  사진을 찍었다는 이유로 그 풍경과 그 시간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거다.

언제라도 꺼내볼 수 있다는 생각이 각별함의 빛을 잃 한다.

그래서 그냥 나의 눈에 나의 마음에 담으려 한다.

분명 아쉬울 것이고 모든 걸 기억하려고 한들 다 기억해내지 못할 것이란 것도 안다.

지나간 것은 지난 간대로 의미가 있다고 하듯, 잊혀진 것은 잊혀진 이유가 있을 것이고 , 잊지 못하는 것은 잊지 못하는 연유가 있을 터.

그래도 작은 노력은 한다.

감정을 한껏 실어 그 곳의 풍경과 사람을 보는 것이다.

철학교수인 강신주 님의 < 감정수업>이란 책에서 보고 나서 뭔가 곱씹어볼 만한 것이 생기면 최대한 그때의 나의 감정과 이야기를 담아 놓는다.

'밑져야 본전이지'라는 생각으로 실행해 본 게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세상에 대한 어정쩡한 스탠스를 취한 탓에 그에 대한 감정의 표현도 어설펐다.

지금은 길가에 핀 꽃이 예쁘면 그것의 이름을 한 번 나지막이 불러주고 "너 참 이쁘구나" 한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강아지풀을 보면 손바닥으로 쓸어보고, 가느다란 분홍 색실을 따놓은 것 같은 여뀌를 보면 흐드러진 초록의 세계에 우아하게 늘어진 그것의 당당한 자태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바라본다.

소리 내어 불러 그 때의 감정을 온몸에 새겨놓는다.

가장 현재에 충실한 감정인 "좋다"

이 말들을 나의 발길이 닿는 곳, 내 시선이 머무는 곳에서 알뜰살뜰 모아 본다.

이렇게 기억의 장치를 걸어놓으면 그나마 내가 내 기억을 열람할 수 있는 기간이 늘어나는 것 같다.

하지만 잊고 싶은 기억들 ,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들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영구 저장되어 있나 보다.


회원제 골프장이므로 만났던 회원을 다시 만나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몹쓸 기억력덕분에 자신들을 기억해주는 회원들과 돈독하고 유쾌한 라운딩을 할 수 있어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들과 좋은  기억을 공유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불편함이 남아 있는 사람을 다시 만나야 한다는 것은 심적으로 부담이 크다. 전 날 다음날 배정될 팀이 어떤 팀인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하다.

그 팀에 내가 배정될 수 있다는 예상에 어느 날은 밤잠을 설치고 새벽녘에 악몽을 꾸기도 한다.

그래서 한동안 출근시간만을 대강 확인하고 그 명단은 일부러 확인하지 않았었다.

잠이라도 편히 자고, 남은 시간이라도 맘 편히 지내자 싶어서였다.

뭘 이렇게까지 하겠냐 싶지만 그 스트레스가 그만큼 내게는 크다.

그래서 잊고 싶은 게다. 함께한 라운딩이 어찌 되었든 간에 그 기억들을 모조리 지우고 싶다.

하지만 잊으려 할수록 다시 그 사람을 혹은 그 상황을 다시 되새겨야 하는 프로세서를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그 대상이 강화가 되어 희미해져 가던 기억마저 선명해진다.

진부한 관용어의 표현을 빌자면, 비워야 채울 수 있고 지워야 다시 쓸 수 있다.

그러므로 잊어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으니 기술이 필요하다.


기억법에서 감정을 매개로 했으니 반대로 나의 감정을 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어렵다면 측은지심의 마음을 대신 담아보려 한다.

누군가가 자신의 화를 다스리지 못해 나에게 무례를 범한다 해도 그 대상이 그런 사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의 고단함이 있었다는 것으로 치환시켜 보겠다. 굳게 다짐해보려 어미를 '~겠다'라고 붙여 보았지만 잘 될는지는 나도 장담할 수는 없다.

상대방의 화(火)에 나를 데이게 하는 대신 상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나를 구원할 듯하여 그리 해보리라.

아마도 많은 심호흡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뭔가는 하나라도 배울 수 있겠지 라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얻을 수 있는 것을 찾아보겠다.

최소한 까칠하고 깐깐한 사람들을 내가 어떻게 대하고 나를 통제하는 방법이라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아니면 '나는 절대 저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라고 '초딩'같은 다짐을 할지도 모른다.

  나쁘게 기억될 감정의 고리들을 다른 방법으로 변환시켜 내 뇌리에 저장시켜 보겠다.


잊는 것에도 기술(奇術)이 필요하다.

기억만큼 허술하고 가장을 잘하는 것도 없다고 한다.

 기억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조작도 가능한 것이라고 한다.

그럼 그 어느 날 나를 아프게 했던 기억들은 조작되고 변형되어 기억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위안으로 삼아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마저도 힘들다면 좋은 생각으로 덮어 보는 것이 더 슬기로운 방법이 아닐까?

그래도 기억에 머문다면 그마저도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내가 나를 보호하려는 눈물겨운 불안의 징표일지도 모른다.


한 가지는, 그 한 가지는 남겨두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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