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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경 Dec 23. 2022

도망쳐도 괜찮아.

캐디와 사람

골프장 시계는 빨리 돌아간다는 말이 있다.

시간에 착시현상이라도 있는 걸까?

현장에서 경기자들에게  타구진행방향에 벙커나 워터해저드등의 장애구역이 있어서 그곳까지의 거리를 알려주다 보면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내게 반문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멀다고요? 가까워 보이는데...."

"페어웨이 중간에 있는 능선들이 접해 보여서  가깝게 느껴지시는 걸 거예요."

잔잔한 물결모양의  3차원의  지형이 입체적임에도 우리의 눈에는 평면으로 펼쳐놓은 듯한 모습으로 인식이 되니 그럴 만도 하다.

어쩌면  시간도 그 시간을 입체적으로 쓰지 못하 우리의  행위들이 겹쳐져  줌(ZOOM)으로 당겨 쓴 느낌을 받는 건 아닐까?

"째깍째깍'

시간매 순간을 흐트러짐 없이 가고 있는 속....  빨리 가버렸다고 뒤집어 씌운다.

어느 때는 빨리 간다고 타박, 어느 때는 안 간다고 탓하는 ,  인간들의 무성의한 푸념시간은 매번 억울하겠다.

'속절없다'는 '단념할 수밖에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뜻이란다.

과연  우리는 그 수많은 날들을 어찌할 수 없었던 걸까?


 벽에 달린 달력이 그 수많은 날들을 떨구어 가벼워지는 12월은, 겨울나무와 많이 닮아 있다.

각 지상파 방송들과 유수의 영화, 음악제들이 시상식 개최를 알린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즈음, '어쩔 수 없었다'에 순응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안팎으로 이루어낸 사람들이 상을 받는다.

올해 우리 회사도 전체임직원이 함께하는 '송년의 밤'행사를  계획이다.

 이때, 올해 10년 근속대상자에게 수상을 한다.

나는 수로 17년을 근무하고도 근속상은 받은 적이 없다.


나의 청소년시절은 철없음은 사치였다.

  소위 말하는 사춘기의 격랑은 나를 비껴가야 했다.

그래서일까?

지구별에 40년째를 의탁하던  그 해, 겪을 수 없었던 사춘기가 햇수와 강도를 더해 사십춘기(?)를 격하게 맞아야 했다

마치 어릴 적 앓았던 수두 바이러스가 수십 년간 몸에 숨어있다가  나이 들어 숙주인 사람취약한 틈을 서 솟구쳐 나오는 대상포진처럼 내 마음에 붉은 반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날 밤을 기억한다.

늦은 퇴근길, 회사의 전화를 받았다.

"미경 씨. 내일 OOO님 팀 좀 나가줘야겠는데 , 그 팀 시간에 맞춰 출근해 줘요."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일방적인 통보.

"......"

곧이어

"아니요. 저 그냥 회사 그만둘래요. 그냥 내일자로 퇴사처리 해 주세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 팀 나가기 싫어서 그런 거라면 그냥 순번대로 팀 나가면 돼요."

"아니요. 그냥 그렇게 처리해 주세요. 유니폼이랑 비품들은 수일 내에 가서 처리하겠습니다."

"갑자기 왜 그러는데? 미경 씨 답지 않게...."

그래 맞다. 나답지 않은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

늘 생각이 많아 행동함에 망설임이 많던 내가 그런 결단을 내린 건,  건강한  결말은 아니었다.

"일단 알았어요. 내일은 휴가처리할 테니 나중에 진정되면 다시 얘기해요."

나는 바로 다음 날, 회사로 향했다. 

.

퇴사처리를 진행했다.

특수한 근로형태다 보니 업무를 인수인계해야 한다거나 후임을 맞아야 하는 일은 없으므로 나의 퇴사의지와 회사의 승낙이 있으면 퇴사처리는 바로 이루어진다.

캐디들에게 매우 우호적이던 팀장님은 즉흥적인 결정이라며 나의 퇴사를 만류다.

"잠깐 쉼이 필요한 거라면 무기한 휴가를 줄 테니 안식년이라 생각하고 쉬다 돌아와요."

"아니요. 팀장님 마음은 감사하지만, 제가 그렇게라도 한 발을 이곳에 걸쳐놓고 있으면 다시 돌아올지도 몰라요. 저는 그게 두려워요. 다시 제 발로 잔디를 밟는 날은 없을 겁니다."

그렇게 나는 회사를 떠나왔다.

수킬로에 달하는 회사진입로에 있는  아름드리나무들의 가지들이 바람에 휘몰아쳤다.

그 길을 빠져나오면서도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을 앓았다.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하고 밖은 푸르른 5월의 날들이 하루를 달리하며 푸름을 더해갔지만  우리 집 거실에 놓인 화분들생기를 잃어갔다. 마치 주인럼...


멈춰 섰다.

늘 달리던 자의 반동 때문인 것일까?

모든 걸 내려놓고 싶어 스스로 '멈춤'을 택했지만 그 뒤에 온 건 공허함과 무기력이었다.

신체적인  증상도 따라왔다.

전신의 무력감은 아무리 내가 정신을 차려 버텨보려 해도 나를 땅으로만 잡아끌었다.

원인을 알고자 양방, 한방치료를 위해 병원과 한의원을 찾았다.

내 증세로 병명을 특정 지을 수 없다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한의원에서 흘리듯 했던 선생님의 말씀이 답이었을  것 같다.

"온몸의 진이 다 빠졌네."

 힘든 상황을 견딘 자들이 그냥 푸념처럼 하던 말이 실제 내 몸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기력이 다해 진이 다 빠진 산 송장 같은 내가 그때의 나였다.

정신건강학적으로 표현한다면 "번아웃증후군"일 것이다.

올해부터 특수고용노동자인 캐디들도 국가에서 실시하는 안전관리공단주관의 안전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 온라인강의 내용 중에 캐디인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직업병중에 번아웃증후군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었다.

 내용을 공부하면서 그때의 나를 떠올렸다.

뭔가 이름 붙일 수 없던 그 불분명함이 제야 그 이름을 찾은 듯했다.


늘 해마다 봄이 끝나고 여름이 올 무렵 마음무장을 단단히 한다.

날이 따뜻해져 길을 걸으며 더 이상 손을 주머니에 넣지 않아도 되지만,  오히려 난 이때만 되면  마음의 빗장을 꼭꼭 걸어닫는다.

어쩌면  의식하는 탓에 더 힘들게 해마다 그 시기를 건너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보름 정도 생기를 잃은 생활은 계속되었지만 지쳐있던 몸은 조금씩 회복이 되어 갔다.

 일부러 밖으로 나와 산책도 하고 자전거도 타면서 햇빛을 맞았다.

머릿속은 복잡한데 휑한 바람소리만이 가득했다.

갈피를  잡지 못한 마음 탓에  바닷가 한 귀퉁이에서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를 가장한 반성문이다.

항상 반성문의 마무리는 다시는 반성할 내용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과 각오가 실리기에 쓰고 나면 뭔가 후련하고 쓰는 것만으로도 구원을 받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된 이상, 이번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삶은 해야만 한 것을 했더라면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도 괜찮겠다고 내가 나에게 해 주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으니 

조금은 게을러져도 되고,

조금은 너의 욕심을 부려도 괜찮다고,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고.


 골프장을 퇴사하고 거의 6개월 동안은 잔디를 밟지 않았다.

매주 가는 도서관마당에 펼쳐진 잔디밭을 나는 수고스럽게 에둘러 가며 의식적으로 그것들을 쳐다보지도 밟지도 않았다.

우습고 유치한 행동일지 몰라도 그만큼 나의 결심은 결연했다.

어릴 적 꿈을 돌아보았다.

내가 무엇을 하며 놀았고, 무엇을 좋아했었는지...

누군가에게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가르쳐줄 때, 나는 나 스스로 반짝거린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거리는 멀었지만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는 보습학원에서 강사생활을 시작했다.

수입은 캐디수입의 1/5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의 적성을 찾은 것 같아 돈은 문제 삼지 않았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선 내가 더 열심히 공부해야 했었고, 1년여 남짓 그 생활을 하면서 가르침을 받은 아이들보다 내 스스로의 성장 더 뿌듯했다.

비록 사교육현장에서의 가르침이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적은 수입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배우며 무조건 채우려고만 하던 욕심의 항아리도 깨버렸다.

그리고 내가 비록 내 현실에 도망쳤지만, 뭔가 큰일이 일어나지도 나쁜 일이 계속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마음을 비우는 일, 쉽지 않지만 가능하다는 것.  그 이후로 나는 남과 다른 내 삶을 비교하지 않는다.

나의 그릇이 작더라도 나는 그 그릇만으로도 충분하다.

명품백보다 무지천의 천가방이 좋고, 값비싼 구두보다 편안한 운동화가 좋다.

별다방 커피보다 집에서 내린 보온병 안의 커피가 더 짜릿하다.


지금 나는 다시 돌아와 잔디를 밟고 서 있다.

그렇게도 도망치려 했던 그곳에 다시 돌아왔다.

또 내가 도망칠지도 모른다.

늘 경계에 서 있어 때론 위태롭고 때론 설레인다.

그건 내가 나를 보호하는 나름의 장치라는 것. 

변명이든 핑계든 내가 나를 살리고자 하는 방법이므로 그냥 괜찮다고 그렇게 해도 된다고 나는 나를 그렇게 이끌고 싶다.


나는 나를 믿는다.

나의 성실함이 나를 계속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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