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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데이 관성에서 벗어날 준비

by 청블리쌤

화이트데이날 아침에 반에 들어서며 "오늘 고백하는 날이라며?" 하면서 마치 고백하기라도 하듯 준비한 봉지를 반 학생들에게 돌렸다.



아이들은 내가 차례로 한 명씩 자리로 가서 전달할 때마다 고맙다는 인사를 했지만, 전체적으로 동요하거나 과한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 어떤 학생은 굳이 이런 것까지 왜 해주냐고 무언의 표정으로 말하는 듯했다.

특히 우리 반은 공부에 열의가 넘치는 학생들이 유독 많이 몰려 있어서, 학반의 아침 자습시간을 방해한 것 같은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우리 반 전체 분위기가 늘 그러했지만, 이 선물로도 그들의 평정심을 움직일 사소한 반응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물론 아이들의 자습을 방해하려 한 건 아니었으니 다행이었다.

직접 포장했다는 사소한 이야기도 덧붙이지 못하고 조용히 나눠주고는 쑥스럽게 교실을 나섰다.


나중에 학생 한 명이 교무실로 찾아와 감사 인사를 전하며 물었다. 포장된 완제품이냐고. 그래서 무슨 비밀이라도 얘기하듯 아내가 직접 포장했다고 했다. 학생은 놀랐다. 리본 마감이 너무 꼼꼼했다면서.


이번 화이트데이는 절기처럼 늘 그날을 지켜왔던 나의 관성에 의문을 갖게 된 첫해였다.

교사로서 짝사랑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현실에서 증명된 듯한 느낌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의 교육 활동에 내가 생각하는 기준 이상의 호응을 모두가 해야 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상징과도 같은 이벤트였다.


요즘 나는 계속 화이트데이 같은 일상을 보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학생들을 위해 수업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설렌다.

수업할 때 선물을 받아드는 학생들을 보면 너무 행복하다.

그러나 꿈나라로 가거나 정시파이터라고 몸으로 외치는 학생들도 있고, 수업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어서 가슴이 아파지기 시작하고,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고 싶어서 단 몇 초의 낭비도 하지 않으려 말로 수업을 쏟아내어 목이 아파지기 시작했다.

고교학점제 블록시간표 특성상 시간표 특정 시간 몰림 현상도 한몫했다. 수요일은 수업이 한 시간, 목요일은 다섯 시간이고, 월요일은 수업이 5,6,7교시가 붙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연강이 많다.

부족한 여백과 잠시 멈춤의 결여는 연강의 시간표뿐 아니라 내가 진행하는 한 시간의 수업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고3이라서 어떻게든 결과를 내야 하는 막바지 과정에 기본기가 더 무시될 수 있는 그 어떤 지점이라서 내가 바라던 기본기부터 차차 쌓아 올리는 수업의 방향은 아니었고 갈수록 많은 아이들의 절실함도 멀어질 것도 각오해야 하는 무게도 느꼈다.


그렇다고 짝사랑과 흡사한, 선물을 준비하는 시간과 노력을 멈출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사전에 플립러닝방식으로 동영상강의를 찍어서 기본기에 자신 없는 학생들이 예습을 할 수 있도록 준비했고, 평소 기본기를 위해 영어멘토링학습코칭 신청도 받았다. 본 수업 시간에도 수업 때 다루는 지문뿐 아니라 어떤 지문에서든 적용할 수 있을 기본원리 위주로 수업 컨텐츠를 꾹꾹 눌러 담아 주려 했고, 그런 맥락의 내용도 정리해서 링크도 공지해 주었다.

마치 하나씩 수작업으로 화이트데이 선물을 포장하듯이 그렇게 마음을 담아냈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노력과 진심을 학생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이 정도로 열심히 선생님이 노력하고 있으니 너희들도 마땅히 따라야 한다"며 자기만족이나 자아도취에 빠져서 학생들을 질책하듯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맞춰주지 못한 나만의 외침이 메아리로 공허하게 튀어나오는 것을 학생 탓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니까.


아이들의 수준도 고려해야 하지만, 자발적으로 예습하고 평소 꾸준하게 기본기를 쌓으려는 습관형성의 정도도 함께 고려해서 더 긴 기다림으로 나의 역할을 매번 재정의하며 다가가야 할 것이니 보다 세밀하게 학생들의 필요를 살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


잠시 멈춤과 휴식과 여백은 늘 유효한 전략일 것인데 수업 시간에 여백 없이 너무 혼자 쏟아부으며 마주하게 된 목의 통증, 그 아픔 덕분에 이렇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듯 주는 선물은 안 될 거라는 생각에 다다를 수 있었다.


매년 관례처럼 주던 화이트데이 사탕 봉지처럼, 이런 정성은 마땅히 받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전제가, 진정 학생들이 바라고 원하는 지점에서 멀어지는 나만의 고집이 아니었는지를 수업과 함께 돌아볼 수 있다니...



화이트데이에 아이들에게 주었을지도 모르는 사소한 기쁨으로 인한 행복감보다, 주고 나서 더 큰 것을 선물받은 듯한 성장의 기회에 감사했다. 올해는 그렇게 나만의 특별한 화이트데이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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