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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Jul 12. 2024

나 같은 친구와 대화하면 일어나는 일

방어적 비관주의(defensive pessimism)라는 공통점을 가진 대학 친구가 있다. 

비관주의 중에서는 그래도 긍정적인 성취를 가져다주는 유형이다. 필요 이상의 걱정을 미리 하는 바람에 피곤하고 지친 삶을 살기도 하지만, 필요 이상의 과잉 노력을 하면서 시간과 노력이 때론 허비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변수를 최소화하며 미리 철저하게 시험에 대비하게 되기도 한다.

계획하고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 친구와 나는 각각 졸업 수석과 임용고시 수석을 나눠가졌다. 

대입으로 보면 그 친구는 수시러고 나는 정시러에 가까웠다. 대학 학점은 고등학교 내신과 비슷하여 평소에 꾸준함과 성실함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임용시험과 대학원, 교육대학원 시험 등은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증명해 내야 하니 수능과 유사하다.

내가 세 가지 시험을 동시에 다 준비한 것은, 수능처럼 단 한 번의 실수나 변수로 단번에 미끄러지기도 하기 때문에 백업으로 준비한 안전장치였다. 자신감이 넘쳐서가 아니었다.

대학 졸업할 때까지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나의 단 한 번의 미끄러짐은 바로 군입대를 의미하기 때문에 뭐라도 하나 걸려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준비한 것이었는데..

운 좋게도 세 시험에서 다 수석을 했다. 

대학원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했으니 결과적으로는 잉여의 시간과 노력이 낭비된 것이었지만, 결과를 몰랐던 준비 과정 중에 그 안전장치와 같은 또 다른 기회가 내게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늘 걱정이 많았다. 시험에 대한 걱정은 더 많은 노력과 준비로 이어졌지만...

현실에 대한 걱정은 신체와 정신적인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나이가 훨씬 더 들고 나서 몸과 마음의 고통으로 확인해갔다.

머리로 의식하더라도 몸과 마음이 반응을 하고 있으니 노력만으로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느낌이다.

오랜만에 그 친구와 전화를 했다.

신기했다. 서로의 고민과 어려움에 대해 조언을 해주는데 그게 결국 나 스스로에게 조언하는 혼잣말이기도 했다.

보통 비슷한 유형의 성격이 만나면, 그게 이런 방어적 염세주의라면, 서로 더 깊은 수렁으로 함께 빠져들어야 할 것만 같았는데... 서로 "나는 저 정도는 아닐 것 같다"라는 안심에 가까운 위로나(각기 다른 이유로 고민하고 힘들어하고 있으니까) "나 혼자만 그런 건 아니다"라는 동질감 같은 공감의 마음이, 모든 상황과 말에서, 심지어 표현하지도 않은 각자의 생각까지도 전해져서 마음이 편해졌다.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친구에게 던지면서, 나 자신의 상황을 객관화하고 있었다.

우리는 늘 필요 이상의 노력과 애씀으로 삶을 버텨왔던 것 같았다.

내가 이런 비유를 했다.

100만 원을 지불하고 물건을 받았는데 때로는 10만 원짜리 짝퉁이 배달되는 것 같은 상실감과 좌절감이 드는 것이 아닐까..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오버페이를 하면서 본전도 안되는 허망한 결과를 확인하게 될 때는 낭비된 것 같은 노력이나 애씀만큼 더 크게 추락하고 좌절하며, 자기 가치에 대한 의심과 회의로까지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끊임없이 가치를 증명하려고 애쓰면서, 그 구멍을 메워야 하는 강박 같은 생각으로... 우리는 세월의 흐름으로 더 힘겨워지는 노화의 과정과 우리가 더 이상 영향력을 끼칠 수 없을 것만 같은 자녀의 독립, 예전만큼 우리에게 조건 없는 호감이나 신뢰를 보내지 않는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의 반응에 상처를 키워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우리에게 아픔이 지속되고 힘겨운 것은, 우리의 소중한 본질과 가치가 훼손되어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당히 상황과 타협하지 않고 맞서서 노력하고 애썼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좌절 가운데서도 의미를 찾는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었다.

더 이상 완성과 완벽에 집착하지 말자고... 

어차피 자꾸 높아지는 현실의 벽이 우리에게 그러지 말라고 훨씬 그 전부터 이야기하고 있었겠지만. 이제서야 아픔이 충분히 커지고 오래 지속되면서 객관화되어 가는 눈으로 겨우 현실 인식을 하는 중일 거라고..

그래서 그저 나중에 알게 될 퍼즐 한 조각에 의미를 찾자고 다짐을 했다.

친구는 내 블로그의 열혈 구독자다. 내가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이미 내게 필요한 위로를 준비하고 있었다.

친구가 "수업 안 들어가는 학반 설명회"에 대해 감탄하며 칭찬을 보내주었을 때 내가 이랬다.

3개 학반 75명의 학생 중에 17명만 신청했고, 그중 2명은 졸았고, 15명은 경청했지만, 그중 2명만 설명회 후 내게 다가와 추가 상담을 하고, 여름방학 자기주도학습 프로그램에 참여 의사를 밝혔다고..

친구도 나도 고등학교 교사로만 20년 넘게 있다가, 우리의 노력과 애씀이 바로 교육적 성과와 반응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고등학생들과 달리, 그 영향을 바로 확인할 수 없는 중학교에 와서 겪게 되는 일을 보여주는 축소판 체험이었다고.

75명 중에 17명 참여, 17명 중 성과가 바로 드러나는 2명...

실패라고 규정해도 이상하지 않을 비율이니, 우리는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소수의 인원보다 그렇지 않은 인원에 안타까워하고 우리의 쓸모에 대해 회의를 품고 아파하고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일 수도..  

그러니 그냥 한두 명의 드러나는 반응에도 격하게 의미를 부여하고, 설명회 13인과 같은 학생들에게서 확인할 수 없는 잠재된 교육의 영향력을 찾아보자고. 

중학교는 고등학교보다 훨씬 더 오랜 기다림과의 싸움인 건 이미 현실로 받아들였으니까.

절대 우리의 진심과 노력을 상황에 타협하지 말자고.

그리고 끝까지 힘을 내자고. 자책하지 말고, 너무 힘들어하지도 말고.

최근 갑자기 강의가 두 개 연속 취소되고, 매년 방학에 있던 초대가 줄어든 현상에 대해 이제 내 거품이 걷히고 있는 거라고 하니까... 

친구는 내게.. 내 글과 말의 힘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특히 아들로 인해 고민하고 있을 때 내가 전해주었던 진심이 담긴 말의 힘으로 자신은 많이 회복되었었다며, 보이는 현상으로 보이지 않은 가치와 본질을 놓치지 말라고 얘기해 주고 있었다.

너무 고마운 응원과 격려와 위로였다. 

 

친구도 본인이 힘든 이야기를 했고, 나도 친구의 아픔에 공감하고 위로가 되려고 애썼지만...

결과적으로 오히려 내게 힐링과 치유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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