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대학의 소멸에 반대하며
교육 방면에서 상당 부분 평등이 이루어진 2024년에 여자 대학교의 존재가 언뜻 불필요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여자 대학은 없어져야 하는 존재일까?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여대의 가치를 잘못 판단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대의 가치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이 판단한다.
첫째, 여대는 단순히 ‘여자만 가는 대학교‘가 아니다. 수십, 수백 년 간 이루어진 여성 차별에 대항하는, 결국 교육에서만큼은 상당 부분 평등을 이루어낼 수 있도록 이끈 ’역사적 유산‘이다.
여자도 ‘당연히’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된 건 겨우 이삼십 년 정도 밖에는 되지 않았다. 남자 형제들의 교육을 위해서, 여자는 똑똑하면 안 되어서 등등의 이유로 교육을 포기해야만 했던 수많은 여성들이 여전히 사회 속에 남아있다. 비록 설립 초기에는 가사 등의 ‘여성으로서 마땅히 배워야 할 덕목’으로 여겨졌던 일을 위한 교육이 대다수였지만 점차 (결혼으로 인해 교육이 중단되는 것을 막기 위해 혼인 금지 교칙을 세우는 등;이화여대) 교육에서 소외된 여성들을 위한 공간으로 자리 잡아갔다.
이러한 공간을 없애겠다는 건 그동안 존재해 온 차별의 목록을 부정하겠다는 사회적 공표나 다름없다. 동덕여대는 이화여대, 숙명여대, 성신여대와 함께 한국의 대표 격 여자 대학으로 오랜 시간 존재해 왔다. 만약 동덕여대가 공학으로 전환되는 순간, 다음 타깃은 불 보듯 뻔하다.
둘째, 여대는 여성이 사람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 중 하나이다. 이 말에 의문을 품을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굳이 여대를 다니지 않았더라도 여중, 혹은 여고를 다녔던 많은 이들은 알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여자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얼마나 자유로웠는지 깨닫는다. 모든 여자 학교는 전교 회장도 부회장도, 선도부도, 반장도 부반장도 전부 여자다. 그리고 거기에 의문을 품는 이들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학교에서 앞머리가 훌러덩 까지든 표정이 일그러지든 상관없이 운동장을 뛰었다. 급식실을 향해 우악스러운 소리를 내며 달렸고 집에 빨리 가기 위해 치마를 입고도 담을 넘었다. 처음으로 축구공을 차 보았고, 사물함 위에서 마음 놓고 잠들 수 있었고, 교실 문만 닫으면 체육복으로 마음 편히 갈아입을 수도 있었고, 학교에 바바리맨이 들어와도 모든 학생들이 함께 몰려가면 도망간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곳에서 나는 마음껏 인간으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남녀공학인 대학에 진학하고서야 깨달았다.
대학에서 나는 인간이 아닌 여성으로서만 존재했다. 치마를 입든 바지를 입든 언제나 다리를 오므려야 했고 무거운 물건은 절대 들 수 없었다. 총학생회장은 내가 졸업할 때까지 항상 남자였고, 여성적 매력으로만 나의 가치가 매겨지고, 밖에서 맘 편히 잠들 수도 없었다. 여고 친구들과 난 여대에 갈 걸 그랬다며 만날 때마다 하소연했다.
여대는 여성들이 성별에 따라 주어지는 가치평가에 영향받지 않고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다. 당연하게 여성이 학생회장이 되고 동아리회장이 되고 응원단장이 될 수 있는 공간이다.
시간에게는 망각이라는 힘이 있다. 얼마나 치열했든 처절했든 상관없이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점차 가벼워질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여대의 존재 가치는 ‘잊지 않기 위함’에 있다. 우리는 그동안 교육제도에서 소외되어 왔던 수많은 여성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 여성들은 우리의 어머니이기도, 할머니이기도, 형제이기도, 친구이기도, 본인이기도 하다.
동덕여대의 공학 전환을 강력하게 반대하는 바이다. 보잘것없는 글이지만 작게나마 마음을 보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