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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gineer Jan 06. 2022

15화, 쏜클리프 파크 아파트, 토론토

룸메이트

유라의 새 집은 토론토 다운타운과 내가 사는 스카보로의 중간 지역인 쏜 클리프 파크 지역의 7층 아파트였다. 1970년대 쏜 클리프트 파크는 오래된 건물과 현대식 초고층 콘도들이 조화롭게 설계된 지역으로 토론토시의 새로운 현대식 주거 단지로 알려져 있었다.  유라는 학교 친구인 조이와 함께 투베드룸 아파트를 렌트해 살게 되었다. 


이사하는 날 내가 유라의 하숙집에 도착했을 때 그녀의 짐이 모두 문 앞에 놓여 있었다. 지노가 박스를 구해 포장까지 하고 모두 내려다 주었다고 유라가 귀띔을 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지노와 마리아의 따스한 성품 때문에 우리 모두는 쉽게 정이 들었었다. 내가 먼저 그들과 굿바이 악수를 하고 유라에게 시간을 조금 주고 싶어 차에 돌아와 기다렸다.  유라가 가방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얘기를 하며 마리아에게 건넸다. 마리아가 유라를 포옹하고 둘은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말없이 서 있던 지노가 유라에게 악수의 손을 내밀자 유라는 가까이 가 지노를 포옹했다. 포옹을 끝낸 유라가 한걸음 뒤로 물러나 양손을 흔들어 굿바이 하고는 뒤돌아 걸어왔다. 유라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들의 얼굴엔 진심 어린 아쉬움이 서려 있었다. 유라의 눈시울도 살짝 붉어져 있었다. 


유라의 짐을 차(1)에 싣고 아파트로 향해 가면서 유라에게 마리아에게 건네준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유라가 잘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말과 작은 그림을 그려 넣은 카드였다며 말끝을 흐렸다. 자신을 위해 특별하게 싱크까지 설치해 주었는데 3달 만에 나오게 되어 미안해하고 있는 듯했다. 내가 유라의 손등을 살짝 두드렸다. 괜찮다고.. 지노와 마리아도 이해할 거라고….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먼저 온 조이와 식구들이 그녀의 짐을 나르고 있었다. 조이는 식구들과 살다가 독립해 나오는 길이라 그녀가 사용하던 가구와 물건들이 꽤 많았다. 반면에 유라는 가구라곤 작은 책상과 의자, 몇 가지 부엌 용퓸, 미술 도구와 옷, 책들뿐였다. 그들과 함께 서너 번 오르락내리락 하니 이사가 다 끝났다.  짐이 많은 조이가 미리 아파트 엘리베이터 한대를 예약해 놓은 덕이었다. 이사를 다 마치고 조이의 한 살 터울 남동생, 대니만 남고 나머지 식구들은 돌아갔다. 유라와 나 조이와 대니 4명이 모여 커다란 피자를 시켜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이가 이사 가던 날 먹던 자장면이 생각난다며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던 아버지 덕분에 이사를 많이 다녔다는 이야기를 했다. 유라도 자신도 어렸을 때 이사를 많이 다녔던 기억이 있다며 가장 좋은 기억은 어느 시골 동네에 대한 기억이라고 했다. 그 시골집 뒤로는 너른 들판이 있었고 봄부터 늦가을까지 오색 찬란한 야생화가 항상 피어 있었다고 했다. 그 기억들 때문에 자신이 그림 공부를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며…  조이가 학교에서 유라를 처음 만났을 때 미대 학생임을 알아봤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니가 피식하더니, 우리 누나  잘난 척하시네, 라며 “또”를 강조 해 한마디 했다. 조이도 지지 않고, 까불지 마, 라며 손가락을 입에 대고 지퍼를 닫는 시늉을 하더니 이내 손가락을 가위로 싹둑 자르는 흉내를 냈다.  오케이! 무승부.. 유라가 상황을 종려시 켰다. 조이는 조그만 몸매지만 아주 야무지고 유머러스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었고 유라와는 정 반대 성향이었는데 의외로 둘은 잘 어울렸다.  대니는 누나와는 달리 키도 크고 훈남형이었다. 


피자와 맥주로 허기진 속들을 채워지자 유라가 부엌에서 향기 좋은 커피를 만들어 나왔다.  커피엔 도넛이라며 대니가 조이 방에서 컨츄리 스타일 도넛 박스를 들고 나왔다. 아침에 오면서 사 온 것이라는데 다양한 도넛이 들어 있었다. 더불 초콜릿(2) 도넛을 한입 베어 먹은 대니가 약간은 미안스러운 표정으로 누나 조이가 이사 나온 이유에 대해 말을 시작했다. 자신의 약혼자가 곧 한국에서 온다며 약혼자가 오는 대로 결혼할 거라 했다. 결혼하면 어머니와 함께 셋이 살 거라며 그래서 부득불 불상한 조이를 내 쫒은 거라며 누이를 잘 부탁한다고 넙죽 절하는 너스래를 떨었다.  조이는 성난 듯이 대니의 옆구리를 꼬집었고 유라와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에는 조이가 목청을 가다듬더니 자신은 이 결혼을 반대했었는데 식구들 중 아무도 자기편을 안 들어줘서 이 꼴을 맞게 되었다며 투덜스레 이야기했다.  


대니의 약혼자는 조이의 절친이라며 어릴 때부터 진주 한 동네서 초등학교와 진주여고까지 같이 다닌 소꿉친구라 했다. 초등 때부터 일 학년 아래인 대니는 학교나 동네에서 유독 누나 친구를 따랐고 그녀는 대니를 아주 살 보살폈다 했다.  대니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쯤 대니는 폭풍 성장했고 반대로 그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면서 둘은 점점 연인 사이로 발전해 갔다고 했다. 3년 전 대니가 한국을 떠날 때 결혼을 약속했고 일주일 후면 드디어 그녀가 오는데 골칫덩이 대니를 자기 대신 친구가 떠맡게 됐다며 친구가 불쌍하다고 조이가 혀를 끌끌 찼다.


일주일 후 대니의 약혼자 리나가 도착해 결혼할 때까지 며칠 동안 조이, 유라와 함께 한 아파트에서 지내기로 했다. 며칠 함께 지내면서 서로를 알게 되었는지 리나가 유라한테 들러리를 부탁했다. 유라는 흔쾌히 수락했고 대니와 리나의 결혼식은 토론토 시청(3)에서 치러졌다. 


(1) 

내 최초 자동차:1971 AMC Hornet : “아메리컨 모터(AMC)” 사는 1979년 크라이슬러가 인수

(2) 더블 초콜릿 도넛 : 초콜릿 반죽으로 도넛을 만들어 표면에 초콜릿 가루를 한번 더 입힌 것으로, 초콜릿 마니아들의 최애 도넛.. 

(3) 토론토 시청 예식장: 70년대 시티홀 결혼식은 free 또는 아주 저렴했었다고 기억되는데 근래에는 약 160~300 달라 정도이며 marriage certificate와 예식장을 30분 사용할 수 있음. 주례는 따로 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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