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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gineer Jan 27. 2022

16화, 대니, 토론토 공대 입학

대니의 결혼식이 있던 날 나는 주유소 근무 중이라 결혼식에는 참석할 수 없었다.  내가 유라의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결혼식을 끝내고 아파트에 모여 커피와 케이크를 즐기고 있었다. 예식은 간소했지만 웨딩케이크만큼은 화려하게 하자고 대니의 식구들이 거금을 들여 3단 케이크를 마련했다며 조이가 내게도 한 조각을 건네줬다. 바닐라 케이크를 생크림으로 감싸고 케이크의 중간 부분을 소프트한 다크 초콜릿으로 채운 고급스러운 케익였다. 커피와 케이크 한 조각을 입에 넣자 커피, 바닐라, 초콜릿이 어우러지며 고급스러운 맛이 입 안에 가득 찼다.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 나왔다.

대니, 리나 두 분의 삶에도 이 케이크처럼 향과 맛이 가득한 날들만 있기를 빕니다…. 커피로 건배…

내가 커피잔을 들고 축하한다는 말을 대니와 리나에게 건넸다. 리나의 얼굴 표정이 조금 밝아진 것 같았다. 내가 아파트에 들어 왔을 때 결혼식에 대해 서로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표정들은 어둡지 않았지만 리나가 조금은 서운한 감정을 표출하는 듯했었다. 멋진 웨딩드레스까지 맞춰 가지고 왔는데 하객도 없이 달랑 식구 몇 명만 참석한 채 15분 만에 끝낸 결혼식이 못내 아쉬운 것 같았다.  


분위기를  좀 더 밝게 하려는 듯 유라가 방에서 선물 상자를 내왔다. 며칠 전 유라와 같이 요크빌의 작은 가게에서 영국 특산품인 본차이나(1) 티컵 세트(Tea cup set) 2 종류를 샀다. 그중에 하나를 대니와 리나한테 선물하기로 했었다. 유라가 리나한테 박스를 건네자 대니가 나에게 손을 내밀고 고맙다며 작게 속삭였다. 우리 누나 좀 구해줘요….  작게 말했지만 난 순간 푹 하고 웃음을 터트렸고 조이는 그 말을 알아들은 것 같았다. 조이는 피식하고 웃더니, “찰스 씨, 조오기 내 동생보다 훨 나은 남자로 부탁해요. 적어도 찰스 씨 정도요….” 하고 받아쳤다. 대니가 손뼉을 치며 웃어댔고 우리 모두들 한바탕 크게 웃었다. 그렇게 우리들 주변에 유쾌하고 마음이 맞는 친구들이 하나 둘 늘어갔다.


작년 톰슨 고교 졸업 시 토론토대, 맥마스터대, 워털루대, 3 대학의 공대에 지원을 했었다. 그리고 몇 달 후 3개 대학 모두에서 입학 허가를 받았다. 나는 토론토 공대를 선택했고 학비를 벌기 위해 내년 가을까지 입학을 연기했었다.  만일 유라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틀림없이 토론토를 떠나 다른 도시의 대학을 선택했었을 것이었다. 부모님께 토론토 공대에 입학했다고 말씀드리자 허허 웃으시며 유라가 너를 잡아 뒀구나, 다행이다, 네가 먼 곳으로 안 가게 되어서. 유라한테 고맙다고 전해라… 하시며 만족해하셨다. 집안의 이런저런 일들을 알아서 처리하는 내가 없으면 누가 하나 하시며 은근히 속으로 걱정하시고 계셨었다며 동생들이 귀띔해 주었다. 


1971년 캐나다에 온 후 나는 한 번도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온 지 한 달 만에  알바를 시작해 용돈과 학비를 벌었고 캐나다 정부가 지원하는 장학금도 받아 공부에 필요한 비용들을 충당했다. 한국에서 나의 삶은 학교, 공부, 과외공부, 학원 등등 초등학교 때부터 이미 사회가 정해 놓은 대로 학교와 공부가 삶의 전부였었는데 캐나다의 삶은 내 모든 앞날을 나의 판단으로 내가 결정하고 책임지는 삶으로 바뀌어 있었다.  캐나다 이민이 흔치 않았던 시절이라 주위에 나와 비슷한 길을 걸어간 선배들이 없어 도움을 요청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이 내게 강한 독립심을 키워줬고 삶에 대한 자신감도 생기게 만들었다. 


그렇게 자신감이 넘치던 나의 20대 삶에 세상은 자신감 만으로는 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처절하게 경험하는 사건이 생겼다. 대니가 토론토 다운타운에 있는 토론토 제네럴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유라와 함께 병문안을 갔다.  두 달 전 결혼식에서 보고 모두들 이런저런 사정들 때문에 간간이 소식은 들었지만 만나보지는 못했었다. 병원에 도착해 입원실이 있는 2층의 안내데스크 간호사에게 한두 가지 질문을 했다. 병문안 시간이며 대니의 상태 등등..  간호사는 “병문안 시간은 따로 없으니 아무 때나 들리면 된다, 대니 상황은 의사한테 문의하라” 라며 지극히 사무적으로 말했다. 그때까지도 대니의 위중함을 알지 못했다. 병실에 들어가자 대니가 가벼운 운동을 하고 있었다. 몇 시간 침대에 누워 있다가 방금 일어나 몸을 풀고 있다는데 그의 표정은 생각보다 밝고 전혀 병자같이 보이지가 않았다. 하지만 침상 옆 의자에 앉자 있는 리나는 하루 종일 병시중을 하느라 그런지 얼굴도 푸석하고 피곤해 보였다. 그런데 대니가 많이 아프다는 간호사의 말을 들었는데 그는 침대에 누워있지도, 팔에 링거를 꽂지도 않고 멀쩡하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어떤 위중한 병이길래 환자같이 보이지도 행동도 하지 않는 대니가 참으로 이상했다. 한편으로는 혹시 위험을 넘기고 회복 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안도가 되었다.  


유라가 리나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 난 대니를 데리고 복도로 나왔다. 그의 상태가 어떤지 궁금해 물어보고 싶었는데 갑자기 대니가 배가 고프다며 병원 음식은 너무 맛이 없어 다른 걸 먹고 싶어 했다. 문득 언젠가 우리 5명 모두 함께 상해 반점에 갔었던 기억이 떠올라 그 얘기를 했다. 얘기를 듣던 대니가 상해 반점 만두가 막 당긴다며 입맛을 다졌다. 상해 반점은 병원에서 걸어서 5,6분도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에 있기에 내가 얼른 가서 사 오겠다고 하자 대니가 손뼉을 치며 어린애 같이 좋아했다.  20여 분 후 내가 커다란 만두 박스를 들고 병동에 올라가자 대니가 입에 손을 갖다 대며 유라와 리나는 모르고 있다며 손을 내밀었다. 대니가 만두 박스를 들고 병실로 들어갔다.  서프라이즈! 대니가 리나 앞에 만두 박스를 열었다. 맛있는 만두 냄새가 병실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날 저녁 우리들은 모든 것을 잊고 세상에서 제일 맛난 만두를 즐기며 웃고 떠들었다.


이틀 후 대니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를 받았고 나와 유라는 비통에 빠졌다.

토론토 시티홀 웨딩


(1) 본 차이나 : 18세기 영국에서 최초로 만들어졌고 실제로 소뼈 가루를 혼합해 만들었다. 현재에도 거의 똑같은 방법으로 제작되고 있으며 특징은 얇고, 단단하며 표면은 크림 색갈을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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