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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gineer Mar 27. 2022

어느 발렌타인 데이...

언제부터인가 발렌타인 데이는 내게 특별한 날이 되었다. 결혼을 대학 다닐 때 했는데 학생이 무슨 돈이 있어 장가를 가랴. 주말에 만나 밥 먹고 길거리 데이트 아니면 다운타운 차이나타운에서 2달러에 두 편의 영화를 보여주는 시끌벅적한 중국 영화관에서 쿵후 영화를 보고는 늦은 밤 헤어질 때가 다가오면 왜 그리 초조하고 발길이 안 떨어지던지.. 그게 싫어 어느 날 불쑥 같이 살자 한 것이 나의 프러포즈였으니.. 아내는 아직도 그 어정쩡한 프러포즈에 화가 나있다. 


돌아가신 장모님 말씀대로 난 정말 bural 두쪽만 가지고 달랑 장가를 간지라 아내에게 남들이 자랑하는 패물 등은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결혼식장에서 달랑 반지 하나 손가락에 끼워준 것이 패물의 전부였으니... 결혼 5주년이 되던 해 무엇인가 아내에게 해주고 싶어 무작정 아내를 데리고 당시 토론토의 유명 보석상인  피풀스 보석상으로 갔다. 아내는 보석을 그리 탐내는 편이 아니라(자기 말에 의하면....) 평상시에는 그리 관심을 두지 않다가 정작 보석상에 가니 눈알을 반짝이며 이거 저거, 특히 알 큰 다이아몬드를 둘러보는 게 아닌가... 에라 엎질러진 물인데., 이것저것 골라 보다가 알이 적당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목에 턱 걸고는 거울을 보며 폼을 잡는다. 만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난 큰 쉼을 한번 쉬고 지갑에서 반짝이는 비자카드를 꺼내 세일즈아지매에게 건네주었다. 값도 모르면서... 근대 사실 속으로 오기가 나서였는데, 그 이유는 그 세일즈아지매가 너들이 무슨 돈이 있어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사냐,,, 하는 표정이 얼굴에 연연했기 때문에. 그런데 그날이 발렌타인 데이였다... 그 후로 발렌타인 데이는 내게 값비싼 날이 되어버렸다. 그날만 되면 선물을 하느라고... 


이번 발렌타인 데이는 토요일이라 늦잠도 못 자고 아침부터 부산을 떨어야 했는데..

9:30 AM : 아내는 아직 코를 드르렁 골면서 잠에 떨어져 있다. 아내는 10시 전에는 일어나는 법이 없다. 아내가 깰세라 발뒤꿈치로 살살 일어나 눈곱만 적당히 떼고 꽃집으로 달려갔다.

10:00 AM : 거금을 들여 싱싱한 꽃을 한 다발 사고 카드에 온갖 달콤한 말을 쓰고는 베이커리에 들려 고소한 냄새가 솔솔 나는 따끈따끈한 크로와상을 한 봉지 사 가지고 집에 도착하니 10:30.. 아내는 방금 일어났는지 부스스한 얼굴로 토일렛에 앉자 볼일을 보시고 있길래 입술에 뽀뽀를 하고.. 해피 발렌타인.... 윽... 모닝 브레스.....


11:00 AM : 향기 좋은 커피를 끓이고 웨스턴 오믈렛을 만들고 바삭한 크로와상을 쟁반에 담아... 아침 드세요!!... 아직도 볼일 보고 있는 아내에게 소리친다.. 우아한(으악한) 모습으로 나온 아내는 커다란 꽃다발에 눈을 휘둥그레 뜨는 척하며 좋아한다,,, 카드에 쓰인 온갖 달콤한 말에 감동하시는 듯.. 입술에 다시 뽀뽀를 하고.. 스코프로 입가심을 했는지 싱그런 민트 냄새라 입술을 좀 더 길게 부치고... 아내 엉덩이를 슬그머니 잡아당겨 보면서,,, 겨울이라 살이 오르셨나 빵빵하네.. 한마디 하니 아내가 입술을 꽉,,,윽 아야!!


24시간 전 발렌타인 데이 전야.. 아내에게 저녁을 나가 먹자고 얘기하고 대충 이일 저일 챙기다 보니 아차,,, 벌써 8시가 넘었다... 부랴부랴 아내와 근처에 있는 아웃백 스테이크 집에 갔는데 오 마이 갓,,,, 기다리는 인간들이 20여 명도 넘고... 거의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한단다... 시간은 8시 반을 넘어가고 있고.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는데 기다릴 수는 없고 차를 몰아 동쪽으로 가며 눈을 씻고 봐도 쓸만한 식당은 안 보이고.. 무작정 드라이브. 토론토시를 벗어나려는 순간 눈에 들어오는 유명한 스테이크 하우스 “더 케그”. 아 살았다 하며 차 세우고 식당 문을 열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장면은, 기다리는 인간들로 바글바글,,, 거의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리라고,,,, 이러다가 발렌타인이고 머고 배곯게 생겼네 하며 다시 토론토시로 돌아와서는 평상시에 자주 가던 영국식 펍에 도착하니 9시 반.... 스트립로인이 스페셜이라 해서 그걸 시켰더니 질기긴 왜 그리 질긴지 다 먹고 나니 턱이 얼얼... 10시 반도 넘어 거의 11시..


단골 카페에 들려 카푸치노와 스위트 디저트를 시켜 야금야금 먹는데 주인 아지메가 눈을 찡긋한다. 발렌타인 밤에 빨리 아내 데리고 집에 안 가고 무엇하냐 라는 표정으로.. 얼떨결에 나도 눈 찡긋하고 밖으로 나오니 12시.. 배 좀 꺼진 담에 집에 가자고 토론토 대학 캠퍼스 안 길을 이리저리 별 하나 나하나 헤이며 다니다가(무드 잡느라고...) 집에 오니 1시..

휘다닥 양치하고 대충 샤워하고 침대에 들어가 아내 쪽 자리에 누워 자리 덥혀주노라니 피곤했는지 깜박 비몽사몽 하는 순간에 귓가에 간지르는 따스한 숨소리..... 잠이 퍼드득 깨며 실눈을 살그머니 뜨니 오 마이 갓,,.,,,,, She was gloriously uchi!

아주 오래전 젊었던 어느 해 2월 14일…

** uchi 는 아프리카의 탄자니아 국가의 언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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