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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gineer Nov 27. 2022

Once Upon a Time in Toronto

“아이에무 카판다!“

목소리가 너무 작았는지 방안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박영감을 쳐다보지 않았다.

박영감은 목청을 가다듬고 한번 더 큰소리로 “아이에무 카판다!” 하고 소리쳤다. 

깜짝 놀란 듯 등을 돌리고 앉아 있던 캐네디언 남자가 의자를 급히 돌려 박영감을 쳐다봤다.

캔 아이 헬프 유?

박영감은 또 한 번 아이에무 카판다 하고 큰소리로 말했다. 목소리가 얼마나 크고 힘찼는지 꽤 너른 사무실이 쩌렁쩌렁 울렸다.

어안이 벙벙해 있던 그 남자는 순간 깨 닳았는지 웃는 얼굴로, 

“Ah, I am a carpenter."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남자는 이런 엉터리 영어에 익숙한 듯 그의 얼굴엔 자연스러운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딱이 더 할 말도 없었고 할 줄 아는 영어도 없는 박 영감도 덩달아 미소를 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박 영감 쪽으로 걸어오며 말을 해 왔지만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박 영감은 냅다다 손을 내젓고는 방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는 가방에서 망치, 못, 끌과 매끈한 판자를 바닥에 놓고 그 위에 무엇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돌발적인 박 영감의 행동에 모두들 놀래 눈을 휘둥그레 뜨고 박 영감을 쳐다봤다.


잠시 후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박영감의 행동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박영감의 날렵한 손놀림이 만들어 내는 경쾌한 망치소리와 사람들의 감탄사가 어우러지며 사무실은 마치 록 콘서트장처럼 환호스런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박 영감님이 내미는 판자를 받아 든 남자와 사람들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원더풀을 연발했다.

판자 위에는 이 회사의 이름이 정교한 그림처럼 못으로 빼곡히 박혀 쓰여있고 밑에는 회사 로고가 멋지게 새겨져 있는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연신 탄성을 발하며 모라고 지껄였지만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박영감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눔들아 60 평생을 망치와 끌 하나로 살아온 몸이야. 그 정도가 모 그리 대수라고 법석들이냐.... “ 

목수 구한다는 말을 듣고 이 회사에 찾아오면서 입구에 서 있는 간판을 눈여겨보아 두었다가 솜씨 발휘를 한 번 해 본 것이었다.  여의치 않은 가정 형편에 일지감치 공사판을 돌며 목수일을 배운 박영감은 한번 보면 눈 감고도 그 장면을 재현해 낼 정도로 비상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다. 


남자는 박영감이 만든 판자를 책상 위에 놓고 흡족한 미소를 머금은 채 바라보다가 서랍에서 서류를 꺼내 무엇인가를 쓰더니 박 영감 앞에 내밀었다. 온통 영어로 쓰여 있는 서류를 박영감이 아무런 반응 없이 물끄러니 쳐다만 보자 남자는 손가락으로 어느 한 부분을 가리켰다.  25라고 적힌 부분 위에 두줄이 그어져 있고 옆에 손글씨로 30이 쓰여 있었다.

“오호라, 시간당 30불 준다는 말이겠다” 눈치 빠른 박 영감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남자가 시키는 대로 서류 밑에 사인을 했다. 사인 이랬자 한글로 자신의 이름을 적은 것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얘기지만 30불은 최상급 목수에게 주는 급여로서 공사장에 한 두 명 있을까 말까 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벌써 작년의 일이었다. 캐나다 구경 실컷 해드리겠다는 아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이 먼 캐나다 땅까지 왔지만 막상 와보니 아들놈의 사는 꼴이 말이 아니었다. 아들의 가게는 불경긴지 불구경인지에 파리만 날리고 있고 할아버지란 말 대신 그랸빤지를 연발하는 손주 놈들 이랑은 말도 안 통하고 모 하나 맘에 드는 게 없었다. 그렇다고 방구석에 앉아 있기에는 너무 무료하여 극구 말리는 아들을 달래 연장 몇 개를 준비하여 공사판에 오게 된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공사판이라면 안 가본 데가 없는 박 영감, 이까짓 캐나다 목재 집야 하며 완전히 배짱으로 공사판을 휘젓고 다녔다. 영어 못하는 건 아예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박영감의 망치소리만 들으면 그가 예사 목수가 아니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아무리 긴 못도 단 한방의 망치에 쑥 박히고, 박 영감이 못질한 마룻바닥은 뜀박질을 해도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기계화된 연장을 사용해 지은 집보다 박영감의 망치와 끌로 마무리된 집이 오히려 더 견고하고 말끔했다.  

박영감의 진가는 강한 돌풍을 동반한 폭풍우가 지나간 다음 날 여지없이 증명되었다. 박영감이 일하던 새 주택 단지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반이상 지어진 집들이 아예 쓰러졌거나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다. 그런데 중간중간에 아무런 피해가 없는 듯 끄떡없는 집들이 눈에 띄었다. 바로 박영감의 손을 거친 집들이었다. 

요즘 박영감의 연장통은 한결 가볍다. 망치 하나와 끌 하나만 있기 때문이다. 박영감 덕분에 큰 손해를 피할 수 있었던 회사 사장이 박영감을 트러블 슈터로 임명한 것이었다. 즉 공사장을 돌며 잘못된 부분들을 고치는 일인 것이다, 급여도 물론 더 많이 올라갔다. 트러블슈터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박영감. 우리말로 모라고 하냐고 아들한테 물어봤더니 일종의 해결사란다.

“해결사.. 아니 해결사면 주먹 휘두르는 사람들 아닌가벼? 

하기사 나도 망치 휘두르니 고급 해결사제....“ 

너털 웃음을 한바탕 웃는데 손주 녀석이 쪼르르 뛰어 왔다. 

“그랜파!”

“할로 지미, 하우 아 유?” 박영감은 손주을 번쩍 치켜들으며

너털웃음을 또 한 번 터트렸다. “그랸빠 스삐끄 꿋 잉글리시 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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