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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Jun 22. 2022

대관람차

목소리에 색깔이 묻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것이라면 그것은 더 또렷하게 들리고 또 보인다.


익숙한 목소리가 안부를 물어왔다.


"아픈 건 좀 어때?"


아무 일 없기를 바라며 물어오는 물음. 마음이 다정하고 깊은 사람.


다른 사람의 아픔을 기억할 줄 아는 사람. 그녀가 나의 벗임이 나는 자랑스럽다.



"괜찮아. 너 무슨 일 있어?"


"아무 일도 없어."


뱉어내는 말과 그 안에 있는 진심이 일치하지 않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그리 어렵지 않게 알아챘다면,


그는 분명 하나뿐인 우인(友人).



높낮이와 떨림 없이, 혹은 그런 것들로 포장한다 하여도 숨길 수 없는 '색깔'을 알아본다면.


그녀는 당신의 연인일지도 모른다.



이상하지. 나는 왜 그런 것들이 들리는 게 아니라 보이는 것 같을까.



먹고 있던 파스타를 조금 남겨두고 그녀에게 향했다. 눅눅해진 마음에 해를 보일 길이 있다면 파스타 따위야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음악을 작게 틀어놓고 드라이브하기를 즐겨한다.


어떤 날은 조금 화창하고 어떤 날은 구름이 끼고. 물론, 가장 좋아하는 날은 비가 많이 오는 그런 날.


그런 날은 들려오는 음악이 내가 겪어본 이야기가 되고, 내리는 비가 그 스토리에 풍성함을 더하여 간다. 비가 선루프에 닿는 소리가 생생하게 느껴지고 사색은 배가 되어 가곤 하니깐. 이러한 자극들을 느끼길 좋아하는 나의 세계는 후퇴하지 않고 모든 것들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의 소리가 멈추는 때가 있다.


나의 생각과 감정의 세계를 담아내고 있는 마음이 침닉할 때.


그래, 그럴 때는 하등 소용이 없다. 저마다 한 번씩 몰아닥치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가지고 있겠지.


가라앉음의 깊이가 더하여 갈수록 허우적거림이 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나는 머물러 있기를 택했다.


심연에 닿을 때까지.



"런던 아이 타러 가자."


대관람차를 타본 적이 없다는 서른 너머의 너에게 나는 핀잔을 주었다. 핀잔이라기보다, 대관람차의 로망을 모르고 살았다는 너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했던 것도 같다.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합해지고 그 목소리가 되울려 나오는 가을 저녁. 조용하지도 소란하지도 않은 그런 웅성거림과 살결에 닿는 바람이 좋았던 가을 저녁에.


걸쭉하게 쪼그라드는 닭꼬치 냄새가 지나는 거리마다 풍겨오고 침을 돌게 하는 군것질 자판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곳.


쏘아 올리는 조촐한 폭죽들이 바다를 배경으로 부풀어 올라갔다가 다시 떨어지는 그런 곳에 런던 아이가 있다.


 밤바다와 반짝이는 유원지의 야경, 그리고 폭죽들이 수놓는 배경. 여러 해 동안 만들어진 주름으로 인해 인자한 얼굴을 하고 있는 백발의 노인. 그가 열어주는 대관람차의 문.


이 모든 것들이 연속되어 이루어질 때, 음악은 필요 없게 되고, 나는 엉뚱한 상상을 펼친다.


정방향으로 돌아가는 대관람차는 타임머신으로 변하고, 작업복 일지 모를 노인의 단색 조끼 옷은 색이 조금 바랜 정장으로 변한다. 정장이 꽂힌 타이바에는 '지혜'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노인은 내게 대관람차의 문을 열어 준 다음, 시계방향으로 9시, 12시, 3시, 다시 6시에 멈추어 내릴 수 있다 말하여준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는 깊은 연륜이 묻어나는 청록 그리고 탁한 갈색의 것.


"시간이 주는 것은 희로애락입니다. 어떤 곳이 희喜 일지, 어떤 곳이 애哀 인지는 당신이 정하여 오르고 내리면 됩니다."



대관람차 안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그런 것들이었다. 과거를 지나 현재로 오는 이야기. 그리고 현재에서 다시 과거로 가는 이야기. 우리의 사는 이야기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들. 볼 수 없는 미래를 이야기하기보단 살아온 과거를, 그리고 마주하며 살고 있는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들.


인생의 희로애락을 시간이 허락하여 주는 것이라면, 그 모든 이야기의 서술자는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


정방향으로 흐르는 타임머신을 타고 있는 인생이 아닐까.


과거로 갈 수 있으나 흐르는 현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인생들.


과거와 함께 현재를 살아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자신의 이야기를  내려갈  있는 서술자가   있다.


과거의 스토리는 불역의 것임을 안다.

잘못되고 틀렸다 해도 손을 대어 어루만질 수가 없다.


그렇다할지라도.


무너지는 삶을 살았던 과거라 할지라도,

무언가와 누군가를 바꾸기 위해 또는 그런 삶의 어떠함을 바꾸기 의해 각의하며 살았으나 실패한 과거라 할지라도,  모든 일을  내려갈  있는 이가  자신이라면,



그다음 이야기를  나아갈 이도 내가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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