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동창 하나가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나에게 이런 말을 툭 건넨다.
“애들 혼낼 때 나 가끔 너 생각한다? 이럴 때도 리나는 화 안 낼 텐데. 넌 애 키우면서도 화 안 나지? “
좀처럼 화가 없고 늘 히히호호 하는 나의 이미지가 그녀에겐 그렇게 마더 테레사 같았나 보다. 하긴 나도 내가 이렇게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린 기합과도 같은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인간인지 차마 몰랐으니. 철저하게 내 인격의 폼새는 육아 전후로 나뉜다. 육아에 동참해 본 사람들은 만이면 만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내 인내심이 이렇게까지 무한대를 그릴 수 있다는 것에 나 스스로도 감탄할 지경이다.
내가 이성을 잃은 순간들은 대개 아이의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아이가 잠을 잔다는 것은 즉 엄마에게 육아 외 다른 무언가를 할 자유가 생기는 것이고 그 작디작은 시간 동안 우리는 무수히 많은 일들을 쳐내야 한다. ’한다‘ 기 보다 ‘친다‘는 표현이 알맞다. 골똘히 생각하며 할 수 없고 초단위로 줄어드는 시간제한이 있는 미션처럼 마구 클리어 해야 비로소 진정한 나만의 시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수면교육은 일찌감치 시작했다. 안아 재우지 않는 것을 목표로 했고 아이는 무수한 날의 시행착오 끝에 밤에 “잘 자~” 하고 엄마가 방을 나서도 혼자 10분만 잠에 드는 경지에까지 올랐다. 수면나라의 마법은 오래가지 않았다. 마의 18개월을 기점으로 모든 게 다 흐트러지면서 다시 누군가 옆에 없으면 아이는 눈을 감지 못했다. 공들어 겨우 빚은 마법이 물거품이 되자 기운이 빠졌다. 그리고 아이가 잠에 들 때까지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적막의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시간을 허비할 때면 난 시쳇말로 꼭지가 돌아버릴 거 같은 벼랑 끝 감정을 견뎌야 했다.
침대 안에서 좋은 말이 나올 리 없다. “오리온!(태명) 안 자면 엄마 나간다?” 협박부터 시작해서 “오! 리! 온! 지금 몇 신줄 알아?!??” 스타카토 권법 호통까지 내 안에 숨어있던 도깨비 얼굴이 불쑥 튀어나와 이 상황을 어떻게든 종료하려 애를 썼다. 하루는 나는 왜 이토록 아이가 잠을 자지 않는 것에 핏대를 세우는가 나름의 고찰을 해봤다.
복직 후 풀재택을 하는 나는 낮이고 밤이고 육아 외 시간은 늘 일을 하느라 쫓겼다. 오전 10시부터 하원 시간인 오후 4시까지 6시간 내 일을 끝내는 건 늘 내 머릿속 파랑새의 나라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었고 항상 일은 육퇴 후에도 나를 따라다녔다. 8시부터 재우는 날이면 꼭 한 시간 만에 애를 재우고 일은 9시부터 10시까지 깔끔하게 끝내야지 다짐하는데, 이 다짐도 늘 다짐으로 끝나기 일쑤. 내가 세운 계획에 변수는 늘 아이가 선사했다. 아이가 잠을 늦게 잘 수록 내 수명이 짧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도 결국은 온전히 내 계획 하에 쓸 수 있는 한정된 밤의 시간이 줄어드는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리라.
살림도 스트레스를 거들었다. 11시까지 온라인 장을 봐야 내일 먹거리가 새벽에 집 앞에 도착할 수 있고, 몸은 침대 안에 있으나 초토화된 거실과 주방 풍경이 자꾸만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결국 아이가 잠을 자지 않으면 난 내가 세운 수많은 계획을 수행할 수 없고 그것은 결국 내일의 내가 떠안아야 하는 거대한 짐이 되니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육퇴 후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내 욕심이 내 화를 부르는 거다.
아이 관점에서 이 상황은 어찌 보였을까. 아이는 에너지 소진이 다 되지 않은 상태에서 엄마의 욕심으로 침대에 끌려가는 것과 같았을 테고 잠이 오지 않는데 윽박지르는 엄마가 무서워 자야 하는 고문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지 모른다. 실제로 나에게 끝내야 하는 업무가 남아있지 않고, 집이 어느 정도 정돈된 날이면 아이가 잠을 자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그냥 같이 잠에 들면 끝나는 일이었다. 오히려 내가 먼저 잠에 빠지면 아이가 언제 잠에 들었든 몇 시간이 걸렸든 전혀 상관없는 일이 됐다.
어느 날, 힘겹게 애를 재우고 나와 종잇장처럼 늘어져 사뭇 전쟁터 같은 거실을 바라보다가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마침 퇴근하며 들어온 남편이 그런 나를 놀란 토끼 눈으로 보더니 전격 집안 시스템 개조를 제안했다.
일, 육아, 살림 다 내 기준대로 해내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경제적 손실을 감내하더라도 이 상황에선 제삼자의 손길을 빌리는 게 맞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복직 6개월 만의 일이다. 운 좋게도 예전 산후관리를 해주셨던 이모님을 오전부터 오후 6시까지 살림, 요리, 육아 3 대장을 해결해 주시는 구원투수로 모실 수 있었다. 내 삶의 질은 크게 상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밤잠이 늦어지는 날이면 난 여전히 인간으로서의 최소 자유시간 보장권리를 잃는 기분이지만 전보다는 많이 인내하려 노력한다. 너도 이 재밌는 세상을 뒤로하고 컴컴한 잠의 세계로 이동한다는 게 얼마나 애통하겠니. 엄마도 그랬단다.
지금은 이렇게 엄마랑 조금이라도 더 놀겠다고 아우성인데 머지않은 날에 엄마는 놀이 대상에서 1순위로 탈락하는 그런 인물이 되겠지? 매일 되새기는 말이지만 또 금세 금붕어처럼 까먹는 말. 아이가 엄마를 우주라 생각하고 사랑을 퍼부어주는 시기는 그리 길지 않다. 그 시기를 금처럼 여기고 일분일초 아껴 쓰는 데 전력을 다해보자. 나의 자유시간은 훗날 아이의 독립 후에 누려도 넘치고 찰 만큼 충분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