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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Aug 10. 2023

엄마의 은밀한 외출


출산 전 나를 돌아보면 참 애송이 같아 낯 부끄러울 때가 많다. 모두가 한 목소리로 ‘육아 보통 아이오’ 외치는 가운데 뭣도 모르는 나는 내심 ‘뭘 그리들 어려워해?’ 하며 고개를 꼿꼿이 세웠다. 대표적으로 육아 선배 언니들의 막대한 코웃음을 유발한 발언 하나. “애기 낳고도 난 외출 편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친정 엄마나 동생이 근처에 사니까 애기 봐주러 오면 커피숍 마실 나가야지.” 과거의 나 제발 입 닫아...


그렇다. 누가 집에 온들 어미는 나갈 수 없다. 아니 대문을 박차고 나갈 에너지가 없다. 일단 나가려면 씻어야 하고 나가 놀 힘을 영끌 해야 한다. 그 둘을 모두 갖출 체력자면 진작에 혼자라도 아기를 들쳐업고 나갔을 게다. 집에 누가 방문하면 모자란 잠을 허겁지겁 채우기 바빴다. 아기가 통잠을 자는 100일경까진 늘 몽롱한 채하루를 보냈고 틈 날 때마다 잠의 바다에서 허우적댔다. 알아주는 잠만보 명성은 애시당초 엄마가 버려야 하는 과거의 아주 귀염뽀짝한 영광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첫째를 낳고 워낙 온몸이 오랫동안 골골했던 탓에 첫 외출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정도로 집 구석에 오래 틀어박혀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았다. 나름 마른 유전자로 나고 자랐는데 출산 후 복구되지 않는 체형과 몸무게로 누구를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치장을 해봤자 임신 전 옷들은 넘의 옷 입은 것마냥 볼성사나운 핏으로 자존감만 추락시켰다.


그나마 이정도면 볼만하다 싶을 때 외출했던 한 날이 떠오른다. 사진을 찾아 보니 출산 후 꼬박 6개월 만의 일이다. 한없이 흔들리던 멘탈이 그나마 중심을 다시 잡았을 때다. 친정 엄마 찬스로 처음 신랑과 단 둘이 데이트를 나선 역사적인 그 날은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다.


육아맘이라면 이런 말 귀에 못 박히게 들었을 거다. ”출산 후 남편과는 이제 로맨스 아니고 우정으로 사는거야.“ 그 말이 그렇게 싫었다. 남편에게 아기가 아무리 이뻐도 우리 부부는 서로가 제일 우선시 돼야 한다고 끊임없이 세뇌시켰다. 진심이다. 아직도 변함 없는 생각이다. 아이들을 독립적으로 키워내고 언젠가 미련없이 세상으로 내보낸다는 건 내 옆의 사람과의 애정 기반이 견고해야 가능한 시나리오라는 확신이 전에도 지금도 동일하게 든다.  


장밋빛 미래만 있어 보이던 우리 부부에게도 위기는 여러 번 찾아왔다. 출산 후 육아관이 맞지 않아, 수면 부족에 예민이 끝간 데 없이 질주하여 서로를 마구 헐뜯고 윽박지르는 날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연애도, 신혼기간도 짧았던 커플이었기에 우리만의 싸움과 화해 매커니즘에 대한 누적 데이터가 많이 부족했던 것도 싸움이 심화된 이유로 꼽는다. 가장 힘겨웠던 아기 200일경까지 내 깊은 우울감의 원인 중 하나도 남편과의 대립이었다. 나는 나를 보살펴 주길 바랐고, 그는 말로는 그렇다 했지만 눈은 항상 아기에게로 먼저 쏠렸다. 지금은 백번 천번 ”잘한다 여보야. 브라보!“ 문동은처럼 두 팔 벌려 박수쳐 줘야 마땅하다 생각되지만 모든 게 공허했던 그 때의 나는 배신 당한 조강지처마냥 날을 세웠다.


지질했던 그 날들을 버티고 견뎌 다시 손 꼭 붙잡고 나서는 둘만의 외출이라니! 그 날의 온도, 습도, 조명까지(?) 모든 게 감각으로 살아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정말 신이 났었나 보다. 출산 후 처음 산 옷을 입었고 에코백이 아닌 가죽 가방을 걸쳤으며 로션에서 끝나지 않는 무언가를 덧발랐고 삐죽삐죽 튀어나온 잔디머리도 가지런히 잠재웠다. 게다가 무려 홀로 대중교통에 올라 신랑 퇴근 시간에 맞춰 회사 앞으로 찾아가는 호사까지 누렸다. 지금 생각해 봐도 완벽한 서사다. 8월의 한 여름 밤의 꿈은 그렇게 정점으로 흘러갔다.


여느 연애하는 커플처럼 두 손을 꼭 잡고 푸르스름한 하늘 아래 빛나는 한강을 눈에 담으며 신랑이 나 몰래 예약해 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어쩜 부부의 로맨스 회생 모멘텀으로 더할 나위 없는 근사한 공간이 아닌가. 대감집 대문 같은 고급진 문을 열고 들어서며 ‘아 나 이남자 사랑하네.’ 그렇게 쉽게 또 마음을 내주고 말았다. 한강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테라스 자리에서 그간의 역경과 고난은 훌훌 날아가는 듯 했다. 비록 집에 남겨진 아기 걱정에 쫓기듯 집으로 컴백했지만 그 날을 기점으로 나는 엄마로서가 아닌 ’여자‘로서의 정체성을 소생시킨 것은 물론, 엄마의 역할에만 매몰되어 있던 모든 생각과 잡념을 환기시킬 수 있었다.




나를 얼만큼 사랑하는지, 그 사랑이 예전과 같은 크기인지 끊임없는 확인 절차를 거치는 연인들의 긴장감이 부부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 말로 하기 낯간지럽다면 정성으로 행동으로 표현하면 된다. 아주 묘하게 평소와 다른 어떤 언행 하나만으로도 부부는 귀신같이 알아 볼 수 있지 않은가. 아, 이 분 오늘 나 좀 사랑하네? 사랑받음의 확신은 자존감으로 직결된다. 요즘 아이 자존감 지키기 육아법이 그렇게 성행이라는데, 누구보다 먼저 자존감 챙겨야 할 대상은 부부 서로가 아닐까. 오늘 또 다짐해 본다. 내일 신랑 출근길에 ”여보 오늘도 왜이렇게 잘생긴거야?“ 한 번 외쳐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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