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나 Aug 10. 2023

눈물의 심야 전쟁터


우리 집엔 29개월 어린이와 3개월 아기 남매가 산다. 두 번의 동일한 임신과 출산을 거쳤는데 첫째와 둘째의 육아 난이도는 시작부터 달랐다. 상상 이상의 캡사이신급 매운맛을 모르고 맛보는 것과 알고 맞이하는 것은 천지 차이일 터.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는 심리적 육아 타격감이 달랐다는 의미일 뿐, 경력직이라고 배짱 좋게 마음을 놓고 있다가 첫째 때 경험하지 못했던 온갖 신생아 고난들을 잔뜩 껴안았다. 뜬 눈으로 지새운 짙은 밤의 역사는 그렇게 최근까지 다양한 챕터로 쓰여졌다.




첫째 때는 그냥 모든 게 우왕좌왕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근거 없던 육아 자신감은 집에 남편과 나, 아기 셋만 남겨진 그 날부터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특히 신생아 시기부터 통잠 새시대를 맞기 전 100일 부근의 날까지가 그러했다. 이유없는 아기의 울음에,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모유수유 땀뻘뻘 타임에, ‘꺼억’ 그 소리 하나만을 위한 기약없는 강약중강약 손목 스냅에, 최소 수면시간조차 보장이 되지 않는 업무 환경에, 보잘 것 없는 눈물은 24시간 흐리멍텅한 내 눈을 비집고 나와 안 그래도 나약해진 멘탈을 쥐잡듯 흔들어댔다.


그 배경은 늘 고요한 심야 전쟁터, 나 홀로 남겨진 밤의 시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맙게도 낮 시간엔 대체로 은혜로운 도움의 손길이 함께했다. 내 몸의 회복이 느린 탓에 누가 함께하지 않으면 정말 심신이 바스라질 것만 같았다. 100일 전까지는 산후 관리사님이, 그 이후엔 친정 엄마와 여동생이 낮 시간 육아 동지가 되어 주었다. 다만 일하는 남편의 다음날 컨디션을 고려해 새벽 육아는 웬만하면 떠안으려 애썼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역시 어미희생사상주의 K-와이프는 열일의 아이콘이다.


첫째는 이제와 둘째와 비교해 보면 별 문제 없이 쑥쑥 크는 순한 아이였다. 문제는 밤잠. 특히 100일즈음 잠에 들려다가도 10분컷 모로반사 때문에 몸을 뒤틀며 잠에서 깨기 일쑤였고, 이 사태는 뭘 해줘도 빠르게 진압되지 않았다. 공갈 젖꼭지를 물고 안정을 취하면 딱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은데 모든 젖꼭지를 거부하는 게 문제였다. 너무 졸려 눈꺼풀이 들리지 않는데도 입면이 되지 않아 양질의 수면을 취하지 못하는 나날이 계속됐다.


나는 많이 지쳤다. 가장 기억이 남는 날은 창피하게도 내가 알고 싶지 않은 내 밑바닥이 드러났던 날이다. 여느 새벽처럼 새벽 4시에 잠에서 깬 후 3시간 동안 다시 잠에 들지 못해 우는 아기를 안고 낑낑댔던 그 날. 참다 못해 핏덩이 같은 아기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고 같이 울었다. 아마 아기에게 처음 짜증섞인 사자후를 뿜었던 날로 기억한다. 다음 날 아침 SNS 계정에 ‘백일의 기적은 없었다. 기절할 만큼 너덜너덜한 몸과 마음만 남았다.’라고 남긴 글이 그 때의 처참한 마음을 증거한다. 그리고 이틀 후, 전 가족이 다 동원되어 기적적으로 공갈 젖꼭지 물리기 대작전을 성공한 후에야 너울치는 파도 같던 밤의 시간들은 일단락 되었다.


최신 버전의 둘째는 느슨해진 육아 씬에 긴장감을 주러 온걸까. 경력직 짬바로 온갖 변수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는데, 한결 다채로워진 퀘스트를 쳐내느라 체력적으로 힘에 부쳤다. 첫째 때 오로지 수면의 수난시대를 겪었다면 둘째는 고난 모듬세트 한 상 대령 수준이다. 매일 밤 3시간씩 용을 쓰게하는 배앓이와 원인불명의 식사 거부사태, 낮잠 없이 1시간 간격으로 찔끔 먹고 트름하고 또 먹고 트름하는 무한 뫼비우스 띠 같은 날들이 이어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몹쓸 기억은 지옥같은 감기와의 전쟁을 치른 일. 조리원 퇴소 후 집에 오자마자 약 20일경부터 최근 90일 언저리까지 어언 두달가량을 첫째로부터 물려 받은(?) 바이러스와 격전을 펼쳤다. 30일도 채 되지 않은 작디 작은 아기에게 항생제를 먹여야 하는 무너지는 심정은 말해 뭐하랴. 그마저도 설사가 심해 바로 끊을 수 밖에 없었고 항생제를 먹이지 못하니 코는 늘 꽉 막혀 숨을 시원하게 쉬는 날이 손꼽힐 정도였다. 새벽 내내 킁킁대며 잠 못 이루는 아기를 안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면, 긴 밤이 더 야속하게 느껴졌다. 병원에선 조금의 안 좋은 사인에도 무조건 입원을 해야 한다고 겁을 줬다. 열이 오르거나 아기가 처지는 모습이 보이거나 식사를 오래 거부하거나. 그렇게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위태로운 밤이 쌓여갔다. 결국 기침 감기까지 얻고 나서야 다시 항생제를 써보기로 결정했고, 2주간의 투약 씨름(어나더 심화 퀘스트...)을 거쳐 겨우 지긋지긋한 바이러스와의 종전을 선언할 수 있게 됐다.




문득 아기들은 참 강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온갖 이슈로 점철된 날들 속에서도 미쉐린 팔다리 장착하며 슈퍼 베이비로 잘만 자란다. 엄마도 대단하다. 순간은 휘청이고 연약해 보일지 몰라도 밤새 와르르 무너져 내린 마음들을 스프링 회복력으로 빠르게 쌓아 올린다. 신기하게 밤새 눈물을 쏟아도 다음 날 아침 환하게 웃는 아기 얼굴 보면 순식간에 에너지 완충이다. 참 육아만큼 일희일비 하는 업계(?) 또 없을 거다.


분명한 건 아기가 선사하는 희열의 크기가 탈우주급 상상초월이기에 그렇게 힘겨웠던 날들의 기억도 쉽게 쓱 잊고, 전쟁 같은 육아의 세계에 다시 기쁘게 뛰어든다는 사실. 내가 우리 둘째를 기꺼이 맞이한 것처럼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출산이란 육아 전초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