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나 Aug 12. 2023

당신의 육아 버팀목은 무엇인가요?


최근 가장 내 뒷통수를 알싸하게 만든 온라인상 우스갯소리가 하나 있다. “자식 걱정은 언제 끝나나요?” 라는 한 질문에 누군가 “우리는 그것을 ‘임종’이라 부르기로 해요” 라고 답한 굉장한 명언. 아이가 몇 살이 되든 부모가 된 이상 이 세상 눈 감을 때까지는 고민의 주제만 달라질 뿐, 무한으로 육아에 시달린다는 소리겠지.


그만큼 평생에 경험하지 못하는 수만가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매일 어지러운 육아 노동을 감당해야 하는 우리네 엄마 혹은 육아에 동참하는 모든 인력들은 그 감정의 무게를 결코 홀로 견딜 수 없다. 독박육아가 심각한 우울증의 원인이 되는 건 굳이 물어 따져보지 않아도 백번 수긍이 될 만한 일이다. 누구, 혹은 무엇의 힘을 빌려서라도 능동적으로 내 감정과 기분을 환기시켜야 우울이라는 악마의 유혹을 떨쳐 버릴 수 있다. 특히 여기에 한 번 휩쓸리면 나의 컨디션 난조가 육아, 곧 아이에게 직격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스스로 나의 상태를 지속 검열하고 또 긴급구호 버튼 장치를 마련하는 게 생존의 지름길이다.




나에겐 손이 닿는 곳에 늘 육아 긴급 구조대, 생존형 산소통들이 존재한다. 육아의 늪에서 생사의 기로에 놓일 때면 언제나 슈퍼 히어로처럼 등장해 숨을 불어넣어 주는 이들. 일단 인간 산소통 버전으로 남편, 친정엄마, 여동생 3총사가 있다. 남편은 약간 동전의 양면과 같은데, 최대의 열불과 청정 산소를 동시에 선사해 주는 인물이다. 친정엄마와 여동생은 그저 빛이 아닐 수 없다. 출산 전 엄마 집 부근으로 이사를 감행한 건 내 3n 평생 내린 판단 중 가장 현명하고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남편은 나와 참 다른 기질의 남자다. 예습과 계획 기반의 파워 J형이며 늘 이성적이고 냉철한 사고를 지향하는 빼박 T 인간이다. 나는 반대로 공감천재 F, 예측 불가능의 충동성 끝판왕 P 순도 99% DNA를 자랑한다. 아기가 없을 땐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며 몹시 화목했다.(지금도 대체로 화목합니다 ^^^) 아이가 생기니 이전에는 기꺼이 웃고 넘어갔던 서로의 반대되는 기질이 걸림돌이 되어 발목을 붙잡았다. 특히나 아이 사랑이 대단한 남편은 육아 참여도가 매우 높은 만큼 참견도 다채로웠다. 때론 그의 냉소적인 핀잔 또는 의견이, 또 때로는 냉철한 어떤 분석에 의한 비판 또는 나를 못미더워 하는 태도가 종종 내 뚜껑을 열리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인간 산소통으로 등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든 싸움과 논쟁의 끝에는 늘 집요하게 따라붙는 그의 한결같은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싸움과 갈등의 상황에도 결국 그는 사랑으로 나를 보듬어 줬다. 내 울분을 못이겨 마음과 다르게 내뱉어버린 가시돋힌 비난의 말에도 그는 비난으로 응수하기 보단 이성적으로 침착하게 대화하려 애썼고 (이럴 때 보면 그는 참어른이고 나는 아직 철부지다.) 대체로 화를 누그러트린 후에는 먼저 사과해줬으며 먼저 손을 내밀어 사랑으로 감싸줬다.


싸움은 보통 24시간 내엔 종결됐고 눈물 콧물 쏟은 전쟁 후 우리 관계는 이전보다 정말 더 많이 돈독하게 얽혔다. 싸움의 최고 기술은 끝맺음에 있다고 믿는다. 어떻게 싸움을 마무리 짓고 이후를 도모하는 지가 부부의 미래 희비를 가른다고도 생각한다. 아직 그와 산 세월이 그리 길지 않고 여전히 우린 치고박고 또 봉합하는 가운데 있지만 그럼에도 그는 내 산소통이 맞다. 공감 좀 없고 인정미도 좀 없지만, 내 최고의 문제 해결사이자 애정 표현의 대가이자 허당끼 가득한 나를 사랑으로 보듬어 주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참고로 애가 둘인 지금은 최고의 육아 전우로도 치켜세울만 하다. 인당 하나씩 전담마크 해야 육아 톱니바퀴가 겨우 돌아가는데 그 중에서도 대형 바퀴에 속하는 미친(?) 텐션의 세살 아들을 홀로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반면 친정 식구들은 그야말로 묻지마 긴급 구조대가 따로 없다. 늘상 내가 숨 넘어가기 전 SOS를 보내면 기꺼이 산소 마스크가 되어준 이들. 친정 엄마는 밥 못 먹는 딸 걱정에 하루가 멀다 하고 점심, 저녁 우리 집을 들락날락 했고, 여동생은 내 오른팔과도 같았다.


특히 내가 첫째를 출산한 시기엔 우주의 모든 기운이 나를 도운 것이 틀림없다. 승무원인 동생이 코로나로 인해 장기 휴직에 돌입한 시즌과 딱 맞물렸다. 동생을 우주 최저 시급으로 주 3일 전격 고용했다. 누구나 신생아 육아 시기를 겪었다면 알겠지만 이맘때는 성인 1인이 굳이 뭘 돕지 않고 한 공간에서 숨을 쉬어 주는 것만으로도 고난이 반이 된다. 동생은 내가 잠이 들면 젖병 소독부터 살림 정돈까지 척척 해줬다. 특히 이유식 시작 후엔 이유식 전담 셰프로 100% 모든 이유식을 뚝딱 만들기까지 했다. 그녀의 복직이 결정된 후 내 어깨가 무릎까지 닿을 뻔했다는 전설은 결코 과장이 아닐 게다. 둘째를 꿈 꿀 수 있었던 것도 다 이 두명의 든든한 은인 덕분이다.


그리고 역시나 우주는 내 편인 게 확실하다. 둘째를 낳기 일주일 전 동생이 임신을 하여 또 휴직에 돌입했다.(승무원 업 특성상 임신을 안 순간부터 휴직이란다.) 둘째가 갓 100일이 지난 지금까지 동생은 여전히 주 2~3회 나의 육아 도우미로 활약한다. 동생이 아기를 낳는 겨울엔 내가 은혜 갚는 까치되어 꼭 공동육아 최대주주가 되어줘야지.


마지막으로 나의 심리적 육아 산소통으로 신앙을 꼽는다.(여기서부터 약간 신앙일지 같을 수 있읍니다) 사실 우리 부부는 교회에서 만나 결혼한 CC(처치 커플)다. 오랜 기도 끝에 하나님의 예비하심으로 이룬 가정이라는 것에 한 치의 의심도 없다. 돕는 베필을 달라 기도하니 정말 딱 내가 없는 부분만 골라 가진 남편을 만났다. 다윗같은 아이를 주신다 응답 받았는데 정말 다윗 같이 담대한 아들을 얻었다. 셀 수 없는 은혜의 응답을 받고서도 육아에 발을 들이니 신앙이 갈대같이 흔들렸다. 기도는 고사하고 예배도 건너 뛰는 날들이 많아졌다. 한창 신랑과 하루가 멀다하고 싸울 때 심신이 피폐해져 뭐라도 붙잡아야겠다는 심정으로 교회 사이트를 뒤졌다. 그 때 매주 수요일 기도의 자리에 초청하는 ’어머니 기도회‘ 모집 공고를 만났다. 수많은 기도회 중에서도 ’어머니‘가 주축이 되는 자리라니.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갓 어미가 된 새싹이지만 고귀한 그 이름의 그룹에 속할 수 있게 됐다니, 그간 엄마라서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구별되어져 하나님 세계에 고속으로 통하는 특급열차 표를 얻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매주 어머니 기도회에서 크리스챤으로서 나를 다시 회복시켰다. 육아를 하며 쌓아두기만 했던 마음 속 응어리진 노폐물 같은 감정들을 기도로 쏟아내니 헤파필터 씌운 공기청정기마냥 못난 감정들이 싹 걸러지는 은혜도 경험했다.


참 공교롭게도 이런 경험을 신랑과 나누면 또 나눔으로 인한 은혜가 우리 관계에 부어진다. 관계의 선순환은 그렇게 기도로 시작이 되어 일어난다. 적어도 우리 부부의 경우엔 참으로 기도가 답이다.




육아란 자고로 남녀노소 막론하고 인정 사정 봐주지 않는 놈(?)이라는데, 내 버팀목들을 늘어 놓고 보니 어쩜 나에겐 인정이 좀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이 내 저질체력과 유리멘탈의 역치를 아시는지 적재적소에 돕는 손길을 배치해 주시고, 여느 성경 말씀처럼 정말 내가 감당 가능한 수준의 시련만을 주신 것도 같다.


나의 육아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 둘째가 아직 핏덩이 같은 아기라 겨우 한 숨 돌릴만 했던 육아 시스템이 거의 리셋된 수준이지만, 내 믿을 구석들이 여전히 건재하기에, 이들과 함께라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으리라 확신하기에 좌충우돌 애둘맘은 오늘도 긍정회로를 가열차게 돌려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성의 끈을 자주 잃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