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나 Aug 13. 2023

우리 집에도 관찰예능이 필요해

우리집 장남은 이제 30개월, 만 두 살 아이다. 육아 선배들 말로는 막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는 그맘때 귀요미 지분이 평생의 99%라던데, 훗날 이 지분 땔감삼아 꽁꽁 얼어붙는 혹한의 육아도 감당해 낸다던데, ‘아 지금이 그 때구나! 미라클 큐티 판타지 그 시즌이구나’ 딱 알겠다 싶은 요즘이다.


한두 단어 시작 할때는 오 이제 말 시작하려나 싶었는데 거의 하루 일주일 단위로 폭발적인 언어 성장을 이루는 아이를 보니 이 충격적이게 귀엽고 웃긴 환희의 시간들이 기록할 새 없이 끝을 향해 (말을 능숙하게 하는 그 시점)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다급해진다. 그렇게 오늘도 어미는 이미 풀로 땡긴 핸드폰 용량을 짜내고 또 쥐어 짜내어 영상 촬영 버튼을 남발한다.  그럼에도 최고 맥스를 찍는 귀여운 순간은 매번 놓치고 땅을 친다. 왜 카메라만 들이대면 입을 꾹 다무는지. 24시간 고프로 달린 헬멧 쓰고 다니고 싶은 심정이다. 관찰 예능 하는 연예인들처럼 말이다. 난 연예인 근처도 못가는 서민이니 관찰 예능 버금가는 생생 정보통급 관찰 일기를 남겨야지.




요즘 아들에겐 기상천외한 말들로 어른들을 기절시키는 재주가 있다. 요리조리 요상한 문법으로 외계어를 구사하는데 그게 또 다 알아듣겠다 싶어서 참 기이하다. 습득력은 또 얼마나 광속같은지 스치듯 말한 단어를 신통방통하게 기억하며,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온 모난 언어를 아이가 놓칠새라 복사해낼 때면 흠칫 남말도 애가 듣고 밤말도 애가 듣는구나 자나깨나 말조심, 허술했던 나를 일깨운다. 언제가는 관성적으로 ”아이씨“ 라는 감탄사를 뱉었다가 남편에게 된통 혼이 났다. 아이가 그 짧은 순간에 말의 쓰임새와 뉘앙스를 간파하여 이후 찰떡같은 상황에 족집개처럼 그 말을 외치는 게 아닌가! 이 요물같은 놈. 추수를 기다리는 벼처럼 남편 앞에서 고개를 숙이느라 목이 꺾일 뻔 했다.


그런가 하면 기록을 부르는 귀여움 덕지덕지 에피소드는 수만 가지도 늘어놓을 수 있다.


우리 가족은 지난 7월 시댁에 내려가 짧은 여름 휴가를 보냈다. 내가 진심으로 사랑해 마지 않는 나의 시댁은 속초. 그 중에서도 설악산을 병풍처럼 두른 부락으로 불리는 시골이다.


집집마다 개성대로 얹은 기와 지붕과 어깨 높이 돌담이 담북한 그 곳에선 하루 n번 산책이 낙이다. 그 날도 어김없이 아이와 아이의 최애 누나이자 나의 시조카와 함께 산책을 나섰는데 아이가 갑자기 “타요타요” 하는 게 아닌가. 어딜봐도 타요의 머리꽁지도 안 보이는데, 타요 광팬인 아들이 이젠 환상도 보는가 싶어 “리온아 여긴 타요 없어~” 비웃음 반 섞어 콧방귀를 꼈다.


아이는 예상과 다르게 주장을 접지 않았다. ”아니 저기 타요~ 이짜나~“


어라? 머쓱하게도 그가 가리킨 곳엔 타요가 아닌 타이어가 떡하니 있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덧붙이는 말이 가관이다.


”엄마 안 보요(여)?“


와, 타이어는 어떻게 기억한 단어이며, 이제 나 면박도 주는구나! 아들아 정말 하산해도 되겠다. 이렇게 한방 먹는 순간이 곧 하루 두방 세방 네방으로 늘어 대적도 안 되는 날이 오겠지.(급 서운)


사실 요즘은 말문이 트일대로 트여 감흥이 좀 덜한데, 말을 막 시작한 그 때는 매일이 경이로웠다. 웃기게도 누구나 하는 말인데 손바닥했던 내 아들이 훌쩍 커서 그 ‘말’을 알아듣고 입 밖으로 낸다는 게 참 기적같기만 했다. 게다가 아이가 막 시작한 말들이 엄마와 아빠를 위하는 모양의 것 투성이라 눈물 쏟을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언젠가 아침에 신랑이 아이를 깨워 안방으로 데려온 날. 아직 침대 위에서 눈만 꿈뻑이며 정신 못 차리는 나를 보더니 순진무구한 반짝이는 눈으로 심장 철렁한 묵직한 멘트를 툭.


”잘 자떠? 옴마?“


아이에게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인데, 나랑 신랑이 늘상 매일 아침 아이에게 습관처럼 하던 첫 인사말. 그걸 그대로 이렇게 불시에 되받다니. ‘잘잤어?’ 라는 물음이 이렇게나 심장 내려 앉게 달콤한 말이었다니. 무방비 상태로 누워있던 나는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계속 그 말 또 해달라고 아이처럼 조르고 또 졸랐다. 그 찰나의 감동을 끝이 없게 느끼고파서.


아이는 우리의 거울과도 같아서 아이의 말에는 우리의 언어가 날것으로 담긴다. 요즘 아이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은 “됴심해 엄마!“ “됴심해 아빠~“


우리가 아이에게 매일 수도없이 읊어댔던 짧은 한 마디. ”조심해!“ 란 그 말이 내가 운전하는 차 앞에 오토바이가 지나가거나 후진할 때 사람이 보이면 그대로 아이 입에 실린다. 그렇게 아이를 위해 뱉은 말은 아이 마음 밭에 작은 씨앗으로 심겨 타인의 안전을 걱정하고 배려하는 심성으로 꽃 피어난다.




말이 바르고 이쁜 사람으로 자랐으면 하는 바람인데 그 기저엔 분명 우리 부부의 보통의 언어가 깔릴 것이다. 이토록 두터운 사명감이라니. 부디 아이의 말의 세계가 화려하게 만개할 때까지 우리 부부가 예쁘고 고운 말의 자양분으로 터를 다져주기를, 말의 화분이 알록달록 여러 색채로 수놓아지기까지 다정하게 넘치게 급수하는 일에 꾀부리지 않기를. 이미 고층으로 쌓인 엄마의 다짐거탑에 오늘도 어김없이 작은 돌 하나를 더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의 육아 버팀목은 무엇인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