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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Aug 26. 2023

너 이래서 애는 보겠니?

어머니, 무수한 날들의 걱정은 이제 넣어 두소서

엄마가 되기 전후 삶은 베짱이가 개미가 되는, 외형뿐만 아니라 종족마저 변화하는 그런 희귀한 일이랄까. 기존의 나의 기질도, 삶의 사이클도 상상 초월하게 뒤죽박죽이 된다. 주변에 인간개조를 원한다면 육아를 당장 진행시켜라 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나 자유의 영혼으로 살던 이들에게 군대식 빡센 육아 라이프는 그 삶의 온도가 너무나도 달라 몹시 기가 막힐 노릇.


바로 내 이야기다.




싱글일 때 친정 엄마가 입이 닳도록 이런 말을 했었다. “너는 이래서 결혼은 어떻게 하고 애는 어떻게 볼래?” 분명 뾰족하게 가시가 붙은 말이다. 그래 인정한다. 30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서도 난 좀 개차반(?) 이었다. 일이 바쁘단 핑계로 요리, 청소 손도 까딱 안했고 주말이면 하루는 몽땅 잠자는 데 썼다. 매우 활발하게 바깥활동에 나서는 타입인데 에너지 충전이 참 오래 걸리는 효율이 안 나는 저질체력의 대표주자다. 주말 중 하루는 꼭 오후 2-3시까지 침대와 한 몸이 되어 태블릿으로 미드나 일드 등을 섭렵하는 게 루틴이었다. 또 이런 여유의 시간과 양대산맥을 이루는 낙은 쇼핑. 하루에도 온갖 온라인몰을 수시로 들락날락 했고 직구인생 20년차인 나는 DHL 아저씨를 베프보다 더 자주 만났다. 멋부리기란 나에게 그 어떤 취미보다 재미난 영역이었고 또 나라는 사람을 표현하는 대표적 키워드이기도 했다. 그래 맞다. 내가 돈쓰는 재미로, 사치는 나의 힘 외치며 살던 때가 있었지.


그.러.나. 이제는 아주 당당하게 이 연사 외친다.


“어머니!!! 가시돋힌 그 걱정들은 매우 기우였읍니다. 나무늘보 베짱이였던 딸내미는 이제 이 세상에서 없어요!!!”


모성애의 힘이라면 참 아쉽다. 그 모성애 진작에 가졌었더라면 서울대 갔을텐데. 아이가 일어나는 시간은 곧 나의 기상시간. 10시 출근일 때도 9시가 넘어야 겨우 몸을 일으키던 나였는데, 어떤 핑계로도 쉴드가 되지 않는 나의 ‘작은 생명체‘는 평생 미지의 시간일 줄 알았던 새벽 기상을 가능케 했다. 신생아 때는 4시, 5시 대중 없이 울려 퍼지는 아기의 엥 소리에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아이가 좀 자란 지금도 기상시간은 7-8시 사이. 고등학생 이후로 일어난 본 적 없는 오전 시간은 이제 매일 마주하는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 됐다.


그리고 인생에 매일 이렇게 일초가 아쉬웠던 적이 있던가. 해야할 일이 매일 줄줄이 소세지라 나의 도플갱어가 우주 어딘가 있다면 지금 바로 가내 도입이 시급하다. 몸 하나론 도저히 살 수가 없는 인생이 지금 나의 것이다. 더군다나 멋부리기? 그건 지금 삶에서 중요도 약 1423 순위로 밀린지 오래다. 과거 출퇴근하는 회사에 다닐 땐 매일 비싼 가방에 누가봐도 세련된 룩으로 치장하기 바빴고 TPO에 맞는 스타일링이 즐거운 청춘이었다면, 지금은 단어에서부터 초라하게 느껴지는 단벌신사가 바로 나다. 흰 티셔츠에 트레이닝 바지 한 벌이면 한 시즌을 난다. 신발은 눈이오나 비가오나 크록스. 가방은 가벼운 게 장땡이다.


혹시 화려한 청춘에서 누추한 엄마가 된 지금의 현실을 부정하고 싶냐고?


전혀 노, 엑스.


이미 경험치 만랩 찍었던 좌충우돌 청춘이라 오히려 미련이 없다. 겉모습 좀 자글자글하고 후줄근해졌지만 내면은 만수르 버금가는 부자다. 금같은 시간을 허튼 데 쓰느라 마구 허비했던 엄마 이전의 삶은 오히려 내 안에 중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일과 쉼이 전부였는데 이를 둘러싼 대부분의 것들이 남들과 비교해서 나은 것, 남들이 봤을 때 그럴싸한 것으로 위장되었다. 아이가 중심이 된 지금은 나의 어떠함은 전혀 중요치 않다. 오히려 자유로워졌다.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나 스스로 속박했던 것으로부터.


매일 1분 1초가 아까워 오전부터 심야시간까지 쉴틈 없이 무언가를 클리어 해내고 있는 내 모습도 꽤나 멋지다. 솔직히 커리어우먼 정점을 찍었던 30대 초반의 나보다 페어런팅우먼의 지금의 내 모습이 더 기특할 때가 많다.


아이 저녁 식사를 뚝딱 만들어 낼 때, 난장판 거실을 10분만에 그림같이 치워낼 때, 아이와 단둘이 데이트를 나가 장시간 외근(?)을 완수할 때 등등. 엄마라면 누구나 하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은 그것이, 나는 유난히 못할 것 같다고 예견했던 것들이라 예상 밖으로 꽤나 업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는 생각에 성취감이 대단하다. 육아 업 특성상 일의 완성도를 치하해 주는 이도, 퍼포먼스를 인정해 주는 이도 없지만 내가 나를 알아주면 된다.(물론 이게 잘 안 되서 힘든 날도 가끔 있다.)


누군가는 전업맘이면 때때로 ‘나’로서의 모습을 잃게 되어 헛헛해진다는데 나는 비록 워킹맘이지만 전업이었어도 엄마라는 직업을 아주 만족하며 품었을 것이다. 임신하며 24시간 치열해야 하는 직장을 떠나 최소 시간만 재택으로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선택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전과 같은 소득은 아니지만 작고 귀여운 경제활동을 겸하며 엄마로서의 잡도 어느정도 풍성하게 해낼 수 있으니까.


물론 일과 육아 병행은 무척 하드코어일 때가 많지만 아이의 성장 단계를 하나도 건너뛰지 않고 직접 보아 되새길 수 있다는 점에서 나의 선택을 매우 셀프 칭찬하는 바다.




누군가 다시 과거의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냐 물으면 난 한치의 망설임 없이 현재에 머무르겠다고 답할 것이다. 깜찍한 요 두 꼬맹이가 없는 삶의 나는 너무 불안전했고 허접했다. 우리나라는 유독 엄마에게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한다며 K-엄마들의 기울어진 희생의 분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지만 난 가끔 이 희생이 영광처럼 느껴진다. 희생해서 분하지 않고 희생해서 더 당당하고 축복스럽다. 너무 행복회로 돌리는 것 아니냐고?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아이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는 미라클 모닝도 반갑고 아이 덕분에 육아란 세계에서 고군분투하며 또 다른 경험의 성취를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다. 무엇보다, 일단 하기로 맘 먹고 뛰어든 이상, 불행을 곱씹으며 비관하는 것 보단 행복회로가 훨씬 낫지 않은가!


엄마 이전의 삶은 화려해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엄마가 된 지금은 하루하루가 흐르는 게 눈물나게 아깝고 소중해서 값지다. 오늘도 나는 나의 엄마의 무수한 날들의 우려를 보기좋게 깨 부수며 엄마 9단, 레벨 업을 향해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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