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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반짝 빛나는 Sep 04. 2023

협상의 대가 (실로 유치 빼기 도전~!)

(8살 아들, 세 번째 유치 발치 도전기)



엄마 이가 흔들려~!


"그래? 한번 보자.

앞니는 조금 더 흔들려야 뺄 텐데.

아프진 않아?

주말이라 어째!

월요일 치과 갈까?

앗! 그전에 집에서 이 뽑음 치과 비용 너 줄게 콜?"






1학년 둘째의 세 번째 이가 흔들렸다.

둘째는 아직 용돈이 필요 없다.

돈이 필요한 때는 과자 사 먹을 때뿐인데 

그 항목조차 엄마 지갑에 있는, 

아빠카드에서 해결한다.

(돈이 생기면 치킨을 사지 물건 살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런 아들이 돈에 넘어올까? 싶어 던져 본 말인데 덥석 잡는다.


신경이 쓰이는지 어서 이 불편함을 해소하고 싶은지,

앞니를 손으로 흔들흔들 혀로 날름날름 거려본다.


힝힝 아파!



첫째 이를 몇 번이나 실로 뽑은 경험이 있다.

둘째도 아랫니를 두 번 실로 뽑았다.

베테랑 발치사답게 호기롭게 반짇고리를 들고 온다.

내 손에 든 실패를 보더니 아들은 주춤거리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


''에이 5천 원 준대도?

엄마, 진~~ 짜 하나도 안 무섭고 안 아프게 뽑아줄게!

기억 안 나?

지난번 아랫니 2개도 엄마가 집에서 뽑았잖아. 슝~~!"

하며 발치 전문가답게 손목 스냅을 야무지게 꺾어 보이는 제스처를 취한다. 

최대한 신뢰가 갈 수 있도록.


둘째 유치 중, 세상에 제일 먼저 빛을 본 귀엽고 소중한 아랫니 2개는 이 생의 시간을 빠르게 소진하고 실에 감겨 아들의 이마를 탁 치는 순간 가뿐하게, 훌렁 날아갔다.

그 홀가분했던 기억을 잊었는지 혹은 무서운지 잔뜩 웅크린 표정으로 내게 온다.


힝, 진짜 안 아프게 빼줘



비장하게 앞니에 실을 감았다.

그런데 실을 감는 느낌이 지난 경험과는 사뭇 달랐다.

뾰족 나온 평면 같은 아랫니 두 개를 뺄 때와는 다른,

앞니 뒷면이 유독 잇몸 안으로 푹 들어간 입체도형처럼 느껴졌다.

앞쪽은 흔들렸지만 뒤쪽은 아직 잇몸에 지탱하고 붙어있는 듯했다.

실을 감는데 촥~ 감기는 느낌이 아니라 자꾸 훌렁훌렁 빠졌다.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둘째는 이미 아기새 마냥 입을 벌리고 내 무릎에 누워있었다.

'어떻게 꼬셨는데, 포기할 수 없지' 스스로 용기를 건넨다.

불안한 마음과는 달리 태연하고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아들 얼굴 위에서 평온하고 신뢰감 있는 표정을 내려 짓는다.


"자,  하나, 둘,.. 셋 하면 뺄 거야.  알겠지?

하나아, 두울.

(탁!)"

이마를 치며 실을 휙 잡아당겼는데 이가 빠지지 않았다.

실을 감은 손이 민망하리 만큼 반대손은 경쾌한 운율을 띄며 청명하게 이마를 두드렸다.

아들은 울상을 지었다.

자신이 없었다.

남편을 불렀다.


"여보, 안 되겠다. 못하겠어. 여보가 좀 해봐요"

낮은 소리로 남편을 향해 소곤거렸다.

실패의 두려움을 남편에게 넘기자,

남편은 아들을 향해 빙긋이 미소 짓고는 귓속말로 내게

"나는 이 빼는 게 완~~ 전 처음이야''

그리고 나지막이

 "내가 더 무서워"라고 속삭였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어금니를 꽉 깨물고 귀속말로 화답하며 부담감을 보탰다.


남편은 아주 섬세하게 실을 감아 돌렸다.

(누가 보면 치과 의사인 줄, -'메쓰'-딴딴-딴딴-!)

옆에 있던 내가 봐도 꼼꼼하고 정성스레 이를 묶었고 남편의 초집중에 이마엔 작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oo아, 기도하자.

자,  

하나님 우리 00 이를 뺍니다.

oo이의 이가~~~~ "

보도 듣도 못한 발치법에 깜짝 놀랐지만, 

남편 어릴 적 할머니께서 유치를 뺄 때 하셨던 방법이라고 한다. 

포인트는 반드시 기도가 끝나기 전 알게 모르게 빼는 것이라는 덧붙임과 함께.


(탁)


남편은 기도를 마치기 전에 아들 이마를 때렸고 불행히도 역시나,

이는 빠지지 않았다.

그 후로 두어번 더 실패.

남편은 참으로 난감했고 아들도 어리둥절하다가 잠시 침묵 후,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으아아앙~!!

으아아아아아아아앙~~~~~~~~~!!

아들은 이가 안 빠져 화나고 속상했는지 아주 그냥 펑펑, 서럽게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한참을 울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마 때리는 거,
너~~ 무 기분 나빠!!



오해를 했다. 이가 안 빠진 게 문제가 아니라 이마를 맞은 게 문제였다.

나까지 보태 남편과 나는 아들에게 연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결과 이번 앞니는 다른 이 와는 다르게 유난히 작고 잇몸 안으로 많이 파묻혀 있고....

여하튼, 우리 둘이 해결할 수 없는 발치로 결론짓고 치과에 가기로 결정했다.





월요일이 되었다.

아들 하교만을 기다렸다.

하교한 아들을 양치시키고 치과 갈 준비를 했다.

현관에서 신발은 신고 있는 내게 아들은

"엄마, 그냥 내일 가자!"라고 말했다.

"안돼! 내일 공휴일이라 치과 안 해."

"그럼 그다음 날 가지 뭐"

"안돼. 내일은 빼고 싶어도 치과엘 갈 수 없고 오늘 하기로 마음먹었으니 어서 가자.

지금 치과 가면 한참 기다려야 할 거야.

점심시간 끝나기 전에 도착해야 빨리 하니까, 어서 챙겨 "


아들은 어물쩍 어물쩍 행동이 느려졌다.

"내가 그냥 빼볼게"

라고 말하며 이를 앞뒤로 흔든다.

그것도 아주 조금 살살살~

'그래가지고 빠지겠냐? 백번을 흔들어봐라.'

맘속 생각을 삼키고 말했다.

"그냥 딴 소리 말고 가자. 어서 챙겨!"

"아니야 내가 뺄 수 있어. 해 볼 거야."

신발을 신고 현관에서 서 있는 내 말을 뒤로한 채, 열심히 이를 아주 소심하게 계속 흔들고 있었다.


"엄마 피피피! 피가 나와."

"에잇 손에 세균이 얼마나 많은데 그만하고 어서 나와. 엄마 기다리잖아?"

내 말에 끄떡도 않고 아들은 이를 흔들고 앉아있다.

몇 번의 회유와 협박 그리고 달램.

현관에 서서 아주 한참 동안 거실에 버티고 있는 아들과 실랑이를 했다.


"엄마!!! 우두둑했어.
우두둑!
어? 어? 두 번이나 우두둑!!


대단한 결과를 이룬 듯 소리를 질렀다.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갔다.

살펴보니 정말 엊그제 보다 훨씬 더 흔들거렸고 잇몸과 이 사이 틈이 더 벌어져 보였다.

'흠, 이 정도면 실로 가능할 것 같은데?'

살짝 고민하며 아들에게 말을 건넸다.


"오천 원! 오천원 줄게,

엄마 이번엔 진짜 뺄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절대 절대 이마 안 칠게, 약속해."



싫어, 무서워.
치과도, 엄마가 하는 것도 싫어.
내가 이렇게 뺄 거야.


라고 말하며 또 아주 조심스레 흔들고 있다.

그러다 갑자기


그럼... 10만 원!!!

이라 말한다.

10만 원은 가져 본 적도 없으면서, 녀석 돈 귀한 줄 모르고...

헛웃음이 나왔다.

"엄만 10만원 있지도 않아.

됐어. 하지 마!

그럼, 6천 원은 어때?"



싫어 싫어!
힝힝
그럼, 만원!!



뭐? 요 녀석이???

"6천5백 원"


으앙~~! 싫어!
7천 원!

"오케이 7천 원 다시 무르기 없기.

땅땅땅" 

극적으로 협상이 끝났다.

아들 마음이 바뀌기 전에 서둘러 반짇고리를 들고 와 실을 감았다.

두 번 다시는 실패하지 않으리라 굳은 결의와 빨리 내가 해야 할 일(발치라는 사건)을 어서 해결해 버리고 싶은 마음, 그야말로 앓던 이를 재빨리 뽑아버리고 싶었다.


이에 실을 감는데 이와 잇몸 사이 공간에 실이 턱 하고 걸리는 게 느껴졌다. 아주 촥 감겼다.

이가 많이 흔들리니 잇몸과 이 사이 틈이 생겼다.

아들의 '살살살 흔들 요법'이 도움 되었나 보다.

'옳거니 이번엔 무조건 성공'이라는 느낌적 느낌이 들었다.


"자. 하나 둘 셋, 세봐!

엄마 이봐 이 손 안 쓴다.

이마는 때릴 필요도 없겠다.

금방 빠질 거야 엄마 믿어. 진짜야!

대신 엄마가 실 당길 때 절대 얼굴을 앞으로 따라 나오지 마. 알겠지?"

아들은 나지막이 '응'이라고 대답하고 의심쩍은 표정으로 실을 입에 물고 있다.


"자 한다.

하나아~~~, 두 우울~~~ "

이번에도 어김없이 셋을 세기 전, 실을 들고 있던 내 오른손 스냅을 힘차게 꺾었다.

이번엔 반드시 성공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아이에게 이 빼는 날 트라우마를 계속 줄 수 없었고 치과 가는 일로 더 이상 실랑이 벌일 에너지도 내겐 없었다.


이가 슝~~~~~~날아갔다.

선풍기 앞에 툭 떨어졌다.


와 성공이다.


우리는 힘차게 박수를 쳤다.

서둘러 준비했던 거즈를 앞니에 물려주고 입술을 다물어 지혈을 시키고 서로를 바라보며 빙긋이 웃었다.

지혈을 시킨 후 이 뺀 자리를 살펴보니, 그 자리엔 아주 작은 하얀 영구치가 빼꼼히 드러나 있었다.

휴, 다행이다. 마음이 조금 가붓해졌다.





남편에게 자랑을 했다.

드디어 이를 뺐다고.

심지어 집에서 성공했다고.

5천 원에 시작한 협상이 7천 원으로 끝났고

호기롭게 10만 원을 부르던 아들의 금액이 7천 원까지 내렸으니

나의 완벽한 성공으로 끝났다고...! 아하하^^;;

이를 빼고 거즈를 물고 뱅실 웃는 귀여운 둘째 사진과 함께.


그러자 남편에게 톡이 왔다.




ㅜㅜ

진짜 그러고 보니 아들이 이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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