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기

잊지 않기 위해서

by 온점

그는 바둑판 앞에 앉아 검은 돌이 들어있는 단지에 오른손을 넣고 만지작거렸다. 돌은 유선형으로 납작했고, 맨들맨들했다. 어렸을 때는 바둑돌을 만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다섯 알씩 일렬로 세워 놓고 중지와 엄지를 튕겨 반대편의 돌을 맞추기도 하였고, 다섯 개의 돌을 연달아 놓기 위해 머리털을 부여잡고 씨름하기도 했다. 그의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홀로 거실에 망연히 앉아 골똘히 바둑판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검은 돌 하나를 중지와 검지 사이에 끼우고 수평의 면 위 한 점에 올려놓았다.


그의 아버지는 목수였다. 당신과 가족들이 사는 집을 손수 주춧돌부터 서까래와 지붕까지 올렸다. 마을회관 공사도 주도했고, 마을의 집의 팔 할은 그의 아버지가 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그의 아버지는 공사판 인부들을 대하는 방식이 몸에 베어 있었고, 화가 나지 않아도 쉽게 소리치고 윽박질렀다.


그가 아버지와 조용히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바둑을 두는 시간이었다. 남는 나무를 가져와 손수 깎고 마름질하여 만든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부자는 서로의 생각을 읽으려 애썼다. 그는 서른을 넘고서도 그의 아버지를 이기지 못했다.


군대에서 바둑은 좋은 생존 수단이었다. 이등병 시절 바둑을 둘 줄 안다는 이유로 중대장이나 행정보급관에게 불려가 바둑 상대를 하며 선임들의 괴롭힘을 피할 수 있었다.


“동선아 바둑을 배워보지 않을래?”

“바둑이요?”


그의 아들은 스마트폰으로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바라보다 잠깐 고개를 들어 대꾸했다.


“응. 너 8월에 군대 갔을 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아빠는 부대의 높은 사람들하고 바둑 두면서 친해져서 군생활 편하게 했지.”

“요즘은 높은 사람들도 바둑 잘 안 둘 걸요.”


아들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바둑 상대가 필요하시면 요즘 AI도 잘 나오던데 제가 컴퓨터에 깔아드릴까요?”

“그 알파고인가 그거냐? 그거는 이세돌도 이기던데 아빠는 그 정도는 못 돼.”

“수준을 조금 낮춘 AI로 게임처럼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는 잠시 아들을 바라보았다. 눈은 아내를 닮았고 코는 그와 똑 닮았다. 그는 아들의 어린 시절을 잠시 추억했다. 태어나던 날의 병원, 돌잡이, 손가락을 선풍기에 넣어서 다쳤던 일. 울고, 웃고, 미소짓고, 대들고, 때론 화내던 아들의 표정들이 머릿속에 스쳤다.


“아빠는 괜찮아.”


그리곤 다시 골프 채널이 나오고 있는 TV로 눈을 돌렸다. 아들도 스마트폰에 다시 시선을 고정했다.


격자 무늬의 바둑판에 흑색과 백색의 돌이 천천히 수놓아졌다. 네 귀퉁이에서부터 시작해 날 일자, 눈 목자를 그리며 천천히 자신들만의 구역을 그리던 흑색과 백색은 충돌하고, 도망치고, 다시 충돌하기를 반복하며 각자의 집을 그렸다. 예순이 넘은 그와 여든이 넘은 그의 아버지는 각각 흑색과 백색을 맡아 서로의 생각을 읽으려 애썼다. 해가 지나듯 돌이 놓였고, 세월이 쌓이듯 집이 쌓였다.


“여보 이 새벽에 뭐 해?”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말없이 복기할 뿐이었다.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여보.”


돌을 놓는 것을 멈춘 그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말했다.


“아버지 목소리가 기억이 안 나.”


아내는 대꾸하지 않았다. 백색도 흑색도 아닌 바둑돌 몇 개가 바둑판 위에 영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