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만의 출장이었다.
그래도 한 때는 칭찬받던 직원으로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경험한 워킹맘으로서
2주간의 출장은 전혀 어려울 것이 없고 자신만만했으며
심지어 설레기까지 했었다.
나는 그 곳에서 끝까지 모른 척하고 싶었던
나의 진짜 모습을 발견했다.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내 나이,
마흔 하나.
중년.
먼 타지에서 마흔 한 살은
어렵고 힘든 점이 너무 너무 많은 것이었다.
일단 호기심이 없어졌다.
새로운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그다지 알고 싶지 않다.
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사는 일도 힘든데
굳이 다른 나라까지 알아야 할까.
부지런하기가 싫다.
호텔 방문을 나서는 일은 엄청나게 강한 의지가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현지 교통수단을 이용해 어디를 간다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그렇게 국물이 먹고 싶다.
뜨끈하고 얼큰한 국물.
한국인에게 국물이란 뭘까.
비가 내리던 출장지에서의 주말,
곰탕과 갈비탕과 된장찌개와 김치찌개와
순대국과 선지해장국과 쌀국수와 오뎅국물을
끝도 없이 그리워했다.
써놓고 보니 경악스럽다.
내가 20대 30대 때 욕을 하던 아재의 모습이다.
" 그렇게 멀리까지 가서 호텔 방에만 있는다고?
와 진짜 너무 이해안된다...거기서 꼭 국물을 먹어야 돼?"
응.
국물을 먹어야 하더라.
그 때 그 아재들. 죄송해요.
물론 나이때문만이 아닐수도 있다.
날씨 때문일 수도 있고
출장 온 도시의 매력도가 낮아서일 수도 있고
또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라서,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난 내 자신이 매우 열려있고
적응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 쭉 생각해왔는데.
그게 사람이든 장소든
마음에 안들어도 잘 맞추고 잘 지내는 성격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충격에 빠졌다.
내가 좋아하는 도시가 아니면
호텔방에 처박혀서 국물만 그리워하는 닫힌 마음.
맘에 안드는 사람이면 얼굴에 속마음이 다 드러나는
아주 투명하고 맑은 사람이었다, 나는.
이렇게 나를 몰랐다.
나는 아주 무난하고 유연하고 성격좋은 사람인 줄 알았다.
이렇게 착각 속에 사는 건가?
내가 이래서 MBTI 를 별로 믿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대부분 착각이니까.
이제 와서 노력하기는 싫은데, 어쩌지?
더 어렸을 때에 많이 참아오고 애쓴 것들이
이제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게 느껴진다.
사람은 생긴대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 진짜구나.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
나이 든 아저씨 아줌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 게
일순간 이해가 된다.
나도 까칠한 아줌마, 말이 안통하는 할머니가 되는 건가.
그렇게 되도 어쩔 수 없지.
앞으로는 너무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