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 당신은 박카스를 얼마나 마셨길래!

by 나로살다

피카소는 별로 마음이 가지 않는다.

일단, 시각적으로 편안하지가 않다.


- 올라! 시뇨라! 나를 좀 해석해주지 그래?

- 이리 와 봐, 난 좀 달라~내 이야기를 들어봐!


그림 속에 왕왕거리는 에너지가 들썩들썩하다.

들여다보려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래서, 피카소가 무엇으로 유명하고 대표작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었지만 굳이 찾게 되진 않았다.



그러던 어느 여름에 넷플릭스의 리플리 라는 드라마를 보게 되었고, (맷 데이먼 주연의 동명의 영화와 같은 이야기인데 드라마로 제작, 강추!)


찐 부자들이 사는 모습, 휴가를 즐기는 모습,

그리고 그 안에 무심하게 '갠소'되어있는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이

찐 부의 상징처럼 출연하는 것을 보았다.



글쎄...

나의 미약한 심미안으로는 딱히 위대함을 모르겠는데

왜 피카소는 그렇게 높이 평가받는 것인지,

번쯤은 알고 싶었다.


나의 충직한 친구 제미나이에게

모네와 피카소 그림 중 누구의 작품이 더 비싸냐고 물으니

단연 피카소가 더 비싸다고 한다.

모네의 작품은 1500억원, 피카소는 2400억원이랜다.

(최근 낙찰가 기준)


뭐가 그렇게 특별하고 위대한가?



드디어, 파리 피카소 미술관으로 향했다.

그동안 루브르, 오르세, 오랑주리, 로댕, 팔레드도쿄, 루이비통 파운데이션, 그랑팔레, 쁘티팔레 등 화려하고 웅장한 미술관들에 밀려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 거장의 미술관이다.



핫플레이스인 마레지구의 한복판에 있어

Merci 에 들러 짧은 쇼핑을 마치고

마치 지인의 집에 놀러가듯 그렇게

피카소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봉쥬르 파블로, 이제 와서 미안해요!'


피카소 미술관 입구


파리의 모든 미술관들이 그렇

일단 전시의 양과 질이 나를 압도했다.

4층까지 이어지는 방대한 양의 마스터 피스들을

촘촘하고 센스있게 짜여진 동선을 따라 감상하며

초반에는 작품 설명도 주의깊게 읽고

색채와 구성이 흥미로운 그림 앞에서는 여유롭게 감상하는 사치도 부렸지만,


3층 정도에 다다랐을 때

나의 집중력과 체력은 방전 되고야 말았다.



- 아니,

해도 해도 너무 많은거 아닙니까?!?!?!



단순히 다작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림만 그린 것이 아니

판화도 만들고, 조각도 하고, 도자기 구워서 그릇과 화병을 만들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고,

기타를 스케치하고 캔버스에 그린 후

나무와 종이를 가지고 모형처럼 만들기도 하고


한마디로 별애별 짓을 다 해놨다.





줄무늬 티셔츠 입은

키도 자그마한 스페인 아저씨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작품을 만들어낸 것인지.

그것도 다 다르고 모두 새로운 방식이다.



내가 놀란 것은

작품들이 너무 아름답고 혁명적이어서가 아니다.


한 명의 인간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이렇게 다양하고 입체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을까.


피카소의 뇌는 정말로 아인슈타인의 그것처럼

주름이 진뜩 진

아주 말랑말랑한 재질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모네 옆에서는 의자를 놓고 멍때리며 쉬고 싶었다면

피카소를 만날 때는 박카스, 레드불, 핫식스를 가방에 잔뜩 넣고 와야할 것 같다.

발편한 운동화에 짐은 최소화 하고

이 아저씨가 (예상컨대) 침 튀기며 소개하는 자신의 영감과 작품 세계를

본인만큼 열정적으로 들어야 할 것 같다.



저 세상 사람이 된지 몇 백년이 지났는데도

그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공간에 있으니

나도 텐션이 높아지는 듯 했다.

다리가 아파 이미 작품을 하나하나 보는 것은 포기했지만.


- 와...이런 것까지?

- 또 있어?

- 아우...저기는 안갈래...

- 출구가 어디야....ㅠ



그의 작품을 보는 것에 지쳐갈 때 쯤

창 밖으로 보이는 마레 지구와

파리의 파란 하늘이

나의 시선을 붙든다.



여기에 창을 내면 이렇게 예쁘게 보일 걸 알았을까?

당연히 알았겠지.

그러면 시공하는 사람은, 여기에 창을 내는건 부적절하고, 어렵고 그래서 비싸다고도 했을거야.

그래도 다른 곳은 안된다, 여기여야만 한다, 고 고집했을 거고

결국은 프랑스 문화 예술부의 재정 지원을 받아

이런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창을 내게 된 것 아닐까?

파리의 예술 사랑은 가끔 보면 인류애보다도 강한 것 같아서 혼자 해 본 생각이다.


계단을 올라가며 한 발 자국마다 다른 이미지를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동그란 창문




피카소는 왜 유명해졌을까.


그 당시의 사람들도 새로운 것, 충격적인 것, 재밌는 것, 뭔가 다른 것을 갈구했을 것이다.


엄청난 기교와 실력을 갖춘 화가들을 제치고

그가 관객에게 보여준 것은


전혀 다른 것.


그것과 또 다른 것.


그런데 또 다른 것.




끊임없이 사람들의 도파민을 이끌어내고

흥미진진하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요즘 넷플릭스며, 디즈니 플러스며, 아마존 프라임이며, 온갖 연애 프로그램들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벨 에포크 시대의 사람들은 우리가 매일 넷플릭스 신작을 기대하듯이

파블로 피카소의 다음 작품을 기대했을 것이다.


이번에 그가 보여줄 것은 무엇일까?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그의 신작 발표를 기다렸겠지.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또 그 자신의 호기심과 열정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

그는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 것 같다.




라이브러리에서 가장 강력한 집중력을 발휘하여

피카소 머그컵과 연필, 엽서들을 사고

그의 공간을 겨우 나섰다.



나가는 길,

피카소가 마지막 말을 건넨다.




- 시뇨라, 당신이 그저 즐거우셨기를!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