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슈 모네, 옆에 앉아도 될까요?

by 나로살다

의도나 계산이 없는 것을 마주하면 마음이 편하다.


사람도 그렇고

이야기도 그렇고

음식도 그렇

그림도 그렇다.



비가 내리는 것을 볼 때

마음이 한없이 따라 흐르

쉴 수 있는 것은

비에 아무런 계산이 없기 때문이다.



모네의 그림을 볼 때

그저 미소가 떠오르는 것은

그저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캔버스에 찍혀진 그 아름다운 색깔들이

보는 순간,

아무 설명 필요없이 우리의 마음을

몽글몽글하고

사랑스럽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루벤스, 피카소, 달리, 마네

왕족과 귀족의 지원을 받고 그들의 권위를 웅장하게 표현하기 위해 그렸다거나

정형화된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거나 하는 예술가들의 그림은

많은 장치가 숨겨져 있어 공부하듯이 봐야 하고

끊임없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은 그림은

피곤할 땐 곁에 두고 싶지는 않은 것 같다.

(너라도 부르지 말아줘 라는 느낌이랄까)


쉬고 싶을 때

모네를 본다.


아니

모네를 보면

찰나라도 쉬게 된다.



한 번 쯤은 꼭 가보고 싶던 지베르니행 버스를 탔다.


그의 대표작, 수련이 그려진 아틀리에가 있는 곳이다.



살아 생전에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강력한 스폰서쉽을 받아서 그런지

모네의 집과 정원, 그리고 연못은

오로지 그의 작품활동을 위해 기획된 장소였다.



그가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이국적인 새로운 꽃과 나무들을 구해다

빽빽하게 심어두었기 때문에

난해하고 조화롭지는 않은 느낌이었다.


빠르게 걸음을 옮겨서 연못으로 갔다.



연못은 그림 그대로였다.


누가 저 자리에 연꽃을 띄워놓고 다리를 만들었는지,

다리위에 보라색 등나무 꽃 하며

또 혼자 삐죽 솟은 미루나무와

치렁치렁하게 늘어뜨린 수양 버들



연못은 아름다웠다.

아름답게 그린 것이 아니라

원래 아름다웠던 것이다.


아름다운 것을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이

실력있는 화가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았을까?


야외용 의자를 들고 나가 이쪽으로 앉았다가, 저쪽으로 앉았다가 하며

그의 팬들을 위한 작품을 농민적 근면성으로 그려나가고 있는 모네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산책이나 감상을 위해 만든 장소가 아니라

길은 좁고 불편하고, 크기도 생각보다 아담했지만,

연못 주변을 몇 바퀴고 돌고 돌면서

나는 모네의 체취를 맡은 것도 같았다.



그는 하도 오랫동안 이곳에서 시간을 오래 보내다보니

아침 점심 저녁에 시간마다 다르게 보이는 풍경을 자연스레 발견하게 된 것일게다.


그리고 평생 쌓아온 테크닉으로

그 순간의 공기와 햇빛을 조색하고

캔버스에 옮겼겠지.



예술가에게 있어 결국 중요한 것은 시선인 것 같다.

순간의 아름다움을 채집해서

자신이 본 것을 손끝으로 그린다.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순간이기에

그의 예술성과 재능은 칭송받는다.





나는 왜 모네를 좋아하는가.


그가 본 풍경이 나도 좋다.

그의 눈으로 채집한 아름다움이 나도 좋다.


나도 그의 옆자리에 의자를 놓고 앉아

한없이 한없이 바라보고 싶은 것이다,




바람이 미루나무의 빽빽한 이파리를 사사사 소리를 내며 흐트러뜨리는 것을.

연꽃이 수면위에서 동실동실 느린 왈츠를 추는 것을.

하얗게 내린 눈 위로 조용히 내려앉는 겨울 아침의 햇살을.




아무런 의지와 노력 따위는 없이

그저 오래도록 그의 옆에 앉아있고 싶다.


모네의 그림을 보면

그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살짝은 쿰쿰하고 담배냄새가 섞였을 것 같은 그의 체취가 어디선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지베르니에서

그리고 오르세에서

생각했었는데.

그의 작품을 따라 그려보고 싶다고.


몇 달이나 걸리겠지만,

몇 달 동안 그의 옆에 앉아있을 수 있을테니.




연못가에 자리를 잡을지

눈 덮인 울타리 앞에 자리를 잡을지

고민해봐야겠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