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찌기 빠리는 사진빨

by 나로살다

반전과 자극과 흥분으로 가득찬 미디어에 푹 잠겨 살다보니, 별 재미없어 보이는 슴슴하고 담백한 이야기에 마음이 간다.


오늘도 풍향고2를 보고 크크 웃고, 공감하며 기분좋은 휴일 오후를 보냈다. 오스트리아 빈과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아무런 예약도 구글 맵도 없이 여행한다는 이야기. 그것도 겨울에!


걷고 또 걷고,

겨우 찾은 호텔은 만실이고,

기차는 연착되고,

아사직전에 들어간 식당은 입맛에 안맞는데

이 모든 것이 너무 비싸다.

세금과, 인건비가 차원이 다른 탓이다.


무릎과 발목 관절은 이미 욱신댄지 오래이고

한국의 매서운 추위와는 스타일이 다른,

으스스 하면서 뼛 속까지 파고드는 유럽의 한기가

스크린을 통해 나에게 전달되는 듯 했다.


그래,

유럽 여행은 정말 고생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서 갔기 때문에

악바리 근성으로 지친 몸을 일으켜

봐야 하고, 가야 하는 곳을 향해 전진 또 전진.


인증샷을 남기고,

또 먹어야 하는 식당을 향해 긴장 또 긴장.


숙소에서는 쉬고 싶지만

강력한 시차의 힘으로 새벽에 기어이 눈을 뜨고 만다.


첫날 밤은 새벽 2시

둘째 밤은 새벽 3시

셋째 밤은 새벽 4시

넷째 밤은 새벽 3시 (왜인지 다시 빽도를...)

다섯째 밤은 새벽 5시 반


그러고 나면 귀국하는 날이다.



그렇게 컨디션이 안 좋을수 밖에 없는 유럽이라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과 대가의 예술 작품을 보아도

기대만큼 큰 감흥은 없는 것 같다.

일단, 내가 너무 졸리고, 힘들고, 배가 고픈 것이다.

모나리자도 식후경이라고,

그냥 푸욱 좀 자고 일어났으면 좋겠는데

여기는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고

친환경이 법이라 뭐든지 다 비싸고...투덜거리다가도


사진을 찍어 놓으면

기가 막히다.


나무 한 그루

구름 한 조각

길 바닥의 잎파리 하나까지

너무 이쁘다.


건물과 까페들

밤의 조명이 강물에 비치는 모습까지.


눈으로 볼 때도 참 아름답지만

숙소에 벌렁 드러누워 휴족시간을 붙힌 채

조금 편안한 상태로

그 날 찍은 사진을 다시 스크롤 하다보면


- 햐~~~ 예술이다...

근데 아까는 솔찌기 너무 힘들었어.

- 맞아..아아가 너무 간절하드라.

- 이쁜 거 눈에 안들어와...

- 어우 나 다리 너무 아퍼.



그래서 사진을 더욱 강박적으로 찍게 되는 것 같다.

내 비록 지금은 지치고 힘들지만

내가 찍은 사진은 이 비싸게 산 고생의 가치를

증명해 줄 것이다.



오늘 풍향고2를 보고

그 멤버들과 제작진들이 얼마나 입에서 단 내 나는

멍멍이 고생을 했을지.

내가 같이 그 기차를 타고 있는 것처럼

푹 빠져서 보았더랬다.


그래도 정말 빠리는 사진은 정말 잘 나온다.

아름다운 곳인 건 확실하다.

내가 한국의 컨디션을 그대로 가져갈 수 있다면

현장에서 200% 더 느낄 수 있을텐데!!!!


아침 햇살 속
폭풍속의 빠리(도 이쁨주의)


건물 벽이 인상파 작품 같은 빠리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