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날레따스 공동수도에서 람블라스 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오른쪽으로 난 첫 번째 골목이 따옐스 (Tallers) 길이다. 따예르는 공방 또는 도살장이라는 뜻이다. 예전에 이 길에 공방과 도살장이 많이 있어서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 이곳에 그런 업종들이 들어선 이유는 성벽 옆에 있어 수요처와 가까웠고, 물이 흐르는 도랑을 끼고 있어 용수 공급의 편의성과 도살한 가축의 부산물을 처리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또한 이 길에는 창녀들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1326년 Pedro 왕이 이 길의 창녀들을 다 몰아낼 것을 명령했을 정도였다. 아직도 일부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이 길 입구를 “창녀들의 마당”이라고 부르고 있다.
따옐스 길 초입
세월은 모든 것을 변하게 했지만, 따엘스 길 특유의 어둡고 축축함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LP판을 파는 가게와 빈티지한 옷을 파는 가게들, 그리고 이국적인 향신료 냄새로 가득 찬 제삼세계 음식점들은 그늘지고 좁은 이 길에 잘 어울린다.
따옐스 길에 있는 가게들
도시는 끊임없이 변한다. 때로는 시민의 편의를 위해, 때로는 자본의 편의를 위해.
그러나 어떤 장소들은 그 변화를 용케 견뎌낸다. 앞에서 말한 누리아가 좋은 예다. 그렇게 견뎌낸 장소는 사람들에게 빛났던 한때를 추억하게 한다. 변하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어디 있을까.
따예르 길 초입에 1933년에 문을 연 칵테일 바 보아다(Boada) 역시 시간을 견뎌낸 곳 중 하나다. 칵테일 마니아들 사이에서 보아다는 칵테일의 성지로 불리는 쿠바 아바나(Habana)의 라 보 데기 따 델 메디오(La Bodeguita del Medio)와 비교되곤 한다. 라 보 데기 따 델 메디오처럼 보아다 역시 헤밍웨이가 단골이었고, 피카소, 달리, 미로와 같은 스페인 예술가들 역시 단골이었다. 보아다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버릴 정도의 평범한 외관을 갖고 있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어떻게들 알고 찾아왔는지 세계 각국의 칵테일 마니아들로 가득하다. 서로의 어깨가 닿을 정도의 좁은 공간에서 말이다. 예전 모습 그대로의 장식 탓에 마치 1930년대로 시간 여행을 온 것 같다.
보아다의 외관
보아다의 산 역사였던 마리아 돌로레스 보아다(Maria Dolores Boada)는 2017년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후손들이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습으로 운영하고 있다.
오래된 샌드위치 가게 비엔나(Viena)
조금 더 아래로 내려오면 길 오른쪽 로열호텔 옆에 비엔나(Viena)가 있다. 뉴욕타임스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이베리꼬 하몬 샌드위치 집”으로 소개된 곳이다. 1969년에 바르셀로나 인근 사바델(Sabadell)에서 처음 문을 연 비엔나는 1987년에 바르셀로나의 가장 중심인 이곳 람블라스 거리에 매장을 열었다. 고풍스러운 매장 분위기 탓에 많은 사람들이 람블라스 매장을 원조인 줄 알고 있다. 람블라스 거리에 있는 탓에 항상 사람으로 가득했던 람블라 매장도 코로나의 충격을 피해 가지 못한 듯하다. 최근에 권리금 42만 5천 유로에 월 임대료 7,700유로의 조건으로 양도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요지라고 할 수 있는 람블라 길에 있는 식당인데도 불구하고 권리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것은 이 가게가 일종의 문화유산으로 바르셀로나시에 등록되어 있어 개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좁은 면적에 비해 월 임대료가 7,700유로나 되는 것은 황금상권으로서의 람블라스의 위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가 아니라면 이 정도의 위치에 있는 가게는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고 “그들끼리” 사고팔았을 것이다.
이제는 문이 닫혀있는 비엔나
근처를 지날 때마다 들러 이베리꼬 하몬 샌드위치와 감자튀김에 생맥주 한 잔씩 했던 즐거움도 추억 속에서만 남아있을 것 같아 아쉽다. 페란 길에 있었던 카페 쉴링(Schiling)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