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개의 람블라 길 중 가장 위쪽에 있는 것이 람블라 데 까날레따스 길이다. 1892년에 만들어진 Cnaletes 공동수도(Fuente de Canaletes)가 길이 시작되는 곳에 있어서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 지하철 1호선과 3호선, 까딸루냐 근교 열차 로달리에(Rodalie) 역이 있고 구도시와 신도시의 경계에 있어 만남의 장소로 많이 이용되는 곳이다.
까날레따스 수도는 로마의 뜨레비 분수 (Fontana de Trevi) 분수나 브뤼셀의 오줌싸개 동상 (Manneken Pis)과 비슷한 전설을 갖고 있다. 이곳의 물을 마시면 다시 바르셀로나로 돌아온단다. 그래서 이곳을 지나다 보면 고개를 아래로 숙인 채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시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까날레따스 수도에서 물을 마시는 사람
지금은 집마다 수도가 연결되어 그 효용성이 떨어졌지만, 예전에는 거리의 공동수도가 시민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주요 수단이었다. 바르셀로나시는 까날레따스 공동수도와 같은 디자인의 공동수도 17개를 지금까지도 예전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벤치의 방향은 누가 정할까
까날레따스 수도 근처에는 여러 개의 벤치가 설치되어 있다. 사람들은 벤치에 앉아 신문이나 책을 읽거나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람블라스 길을 오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는 쏠쏠한 재미를 주는 곳도 이곳이다.
거리의 벤치는 사람들에게 쉬는 곳 이상의 의미를 준다. 내가 처음 바르셀로나에 왔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가우디의 화려한 건축물도, 그림같은 지중해 항구도, 피카소나 미로 같은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화가들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내 눈길을 끈 것은 바르셀로나 거리 곳곳에 놓여있는 벤치들, 그중에서도 까날레따스 공동수도 부근에 있던 벤치들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벤치 각각이 놓인 방향이었다. 벤치의 방향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벤치에 앉는 사람들이 자기가 쳐다보고 싶은 방향으로 돌려놓은 줄 알았다. 자기가 쳐다보고 싶은 방향으로 말이다. 그런데 가서 확인해보니 각각의 벤치는 지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때 들었던 궁금증은 “저 벤치의 방향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였다. 그 이후 새로운 도시를 방문할 때면 거리에 있는 벤치들을 유심히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나에게 있어 거리의 벤치들은 그 도시의 내공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다.
람블라스 거리의 벤치들
새로운 도시로 여행을 가서 사람 구경하는 것만큼 재미있는 것이 또 있을까. 유명 유적지나 미술관의 그림들은 어찌 보면 “죽어있는 것”이다. 먼 과거의 이야기다. 그 과거로 돌아가지 않으면 이해하기가 힘들다. 과거를 보기 위해서는 그것들과 관련된 수많은 자료를 찾아보아야 하는데 일반여행객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반면 그 도시의 사람들은 “살아있는 이야기”다. 그들이 입고 다니는 옷, 그들의 걸음걸이, 그들의 말투에서 사람들의 살아있는 모습을 본다.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람블라스 거리처럼 사람을 관찰하기 좋은 곳이 어디 있을까. 람블라스 거리의 벤치는 바르셀로나의 살아있는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장소다.
벤치 사용료 2 뻬쎄따
인구가 늘어나 도시가 폭발 직전의 상태에 이르자 1854년 바르셀로나시는 도시를 둘러싸고 있던 성벽을 허물고 성벽 바깥의 편평한 지역에 신도시를 건설한다.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던 구도시의 끝단에 있었던 까날레따스 공동수도 부근은 신도시와 만나는 지점이라는 장점으로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잦은 곳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사회나 “봉이 김선달” 같은 사람들이 있었나 보다. 이곳에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지자 길 한복판에 의자를 갖다 놓고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는 서비스가 생겨났다. 그것도 시청의 권장 하에 말이다.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의자를 사용하는 사람이 늘어나자 1860년에 죠셉 가이(Josep Gay i Gurri)라는 사업가가 시로부터 사업권을 양도받아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짚으로 만들어진 허술한 의자를 치우고 멋진 디자인의 철 의자를 설치했다. 의자 사용료를 징수하는 사람을 “의자 서비스맨(Servicio de sillas)”이라고 불렀고 그 신분이 공무원이었다. 지금 기준으로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 형태가 시대에 따라 변하긴 했지만, 최근인 2000년 8월 20일까지 의자 임대 서비스가 계속되었다는 것도 놀랍다. 의자 사용료 역시 시대에 따라 변해왔는데 1970년대에는 8시간 사용하는데 2뻬쎄따 (Peceta)였다고 한다.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금액이긴 했지만, 거리의 벤치에 앉는데 돈을 받았다는 것이 신기하다.
유료의자에 앉아있는 사람들 (사진 출처 ramblejant)
지금은 없어졌지만 내가 바르셀로나에 왔던 2007년 무렵만 해도 까날레따스 수도 근처엔 멋진 나무 의자 몇 개를 펼쳐놓은 채 손님을 기다리는 구두닦이도 있었다. 이 역시 시의 허가를 받고서 한 일이다.
까날레따스 수도근처 구두닦이(사진출처 barcelonamemory)
많은 것이 없어지거나 변했다. 하지만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것들도 있다. 예를 들어 공동수도 뒤편의, 1926년에 문을 연 까페떼리아 겸 식당 누리아(Nuria) 같은 것들 말이다. 위태롭긴 하지만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돌을 가져다 놓고 팔아도 팔린다는 람블라스 거리는 바르셀로나의 황금 상권이다. 그 이유로 다국적 패스트푸드 음식점이나 의류 판매장들이 호시탐탐 진출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누리아 같은 오래된 식당이나 가게들이 그 대상이다.
힘들게나마 예전 모습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누리아와 같이 변치 않는 것들이 바르셀로나 사람들에게 예전의 추억을 되살려 준다. 오래된 수도, 오래된 카페떼리아, 오래된 벤치들, 오래된 이야기들 같은 것들 말이다. 그래서일까. 까날레따스 수도 근처에 가면 그 옛날, 막 인쇄된 신문의 잉크 냄새와 구두약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간밤의 축구 경기에 관한 토론으로 왁자지껄한 소음 사이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