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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스코이 Dec 16. 2021

똑바로 살아라 (1989)

Dierected by 'Spike Lee'

인종적 문제를 직설적으로 다루기에 가장 자기주장이 강한 감독이기도 하다

할리우드 영화산업에서 가장 특정 문화를 가장 잘 담아내는 감독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 '스파이크 리'감독을 꼽을 것이다. 심지어 리 감독의 작품들은 굉장히 도발적이고 직설적인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그중 '똑바로 살아라(Do the Right Thing)'은 1989년 당시 상당한 인기와 함께 대단한 논쟁거리를 함께 가져왔다. 당시는 미국 정부가 소위 마약과의 전쟁을 하던 중이었고 그로 인해 강도 높은 마약단속과 처벌이 동시에 이루어졌던 시기이다. 당연하게도 조던 싫던 마약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흑인들은 언제 체포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살고 있었다. 영화는 이 심리를 정확하게 포착하여 그려내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이러했다. 버기라는 한 흑인 청년이 그 동네에서 오랜 기간 피자가게를 운영해온 이탈리아계 이민자 '살'의 가게 벽면에 걸려있는 이탈리아인들의 사진에 불만을 가진 것이다. 버기는 흑인들의 사진도 좀 올려달라고 이야기했고 살은 단칼에 거절했다. 버기도 이에 대해 진심으로 악감정을 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무슨 이유에서였건 보이콧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친구가 바로 버기이다.

버기가 온 마을 사람들에게 보이콧을 함께하자고 했을 때 동조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살의 피부색과 관계없이 그는 마을의 일부였고 모든 이들은 살의 피자를 먹으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유일하게 버기의 말에 동조했던 '라디오 라힘'이었다. 그는 언제나 큰 스피커를 들고 다니면서 '퍼블릭 에너미'라는 랩 그룹의 'Fight the Power'노래를 크게 틀고 다니는 청년이었다. 


이 친구가 바로 라디오 라힘이다

라디오 라힘은 살의 피자가게에서 똑같이 크게 노래를 틀으며 들어갔지만 살이 그의 노래를 꺼달라고 했던 것에 속이 상한 상태였다. 그랬기에 버기가 보이콧을 함께하자 그랬을 때 유일하게 동참했다. 


이 둘은 살의 가게가 닫을 시간에 쳐들어와서 크게 노래를 틀고 고래고래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흑인 사진 좀 걸어달라고 말이다. 그렇게 서로 간의 고함과 긴장감이 고조되던 중 살은 그가 하지 말아야 했던 말을 한다. 바로 N-Word였다. 그러다가 살이 못 참고 라힘의 스피커를 부숴버렸다. 그렇게 고함만 지르던 싸움은 패싸움으로 번졌고 온 마을 사람들이 와서 저마다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이에 경찰 이 제지하는 과정 속에서 과잉진압으로 라힘의 목을 졸라 죽였고 버기 또한 체포된다. 한순간에 군중의 시전은 모두 살에게 향했다. 모두 원망의 눈초리를 하면서 그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밀치고 욕하면서 그와 그의 아들들을 위협하기 시작했고 그때 피자가게의 아르바이트생 무키가 쓰레기통을 던져 살의 가게 창문을 부숴버렸다. 


모두 다 너나 할 거 없이 가게를 부수고 돈을 가져가고 불태웠고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 누구도 이를 원하지 않았다



주로 영화는 소위 주인공이라고 불리는 중심인물이 있다. 그 중심인물은 다른 인물들로부터 구별되어 좋은 쪽으로 던 나쁜 쪽으로 던 다른 선택을 하는 인물로 그려지곤 한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인공 마스(Mars)는 그저 평범한 캐릭터이고 일반적인 선택을 한다. 영화가 그를 중심인물로 설정한 이유는 그가 일한 피자가게에서 사건이 전개된다는 점 말고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마스는 그저 감독이 영화를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시점에 불과했을 뿐 옳은 답을 던지고 사건을 진행시키고 해결하는 역할이 아니었다. 그가 아닌 라힘이나 버기나 기타 다른 인물들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어도 크게 차이점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마지막 20분과 그 전으로 나뉠 수 있다. 후반기 20분 전은 당시의 문화를 그대로 포착한 어쩌면 영상 기록자료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뉴욕 브루클린의 작은 동네에서 가장 더웠던 날에 있었던 일이다. 기온이 최고치를 경신하며 불쾌지수가 솟구칠 때 공교롭게도 인종적 긴장감 또한 상승했다.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흑백 인종문제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남북전쟁 이후 수정헌법 13조가 재정되자 법률상으로 모든 미국인은 자유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범죄자를 제외한다는 조약으로 인해 수많은 인종차별주의자들은 흑인들을 범죄자로 '만들었다'. 인종간 분리를 통해 흑백은 더욱 극명하게 나뉘기 시작했고 1970년을 기점으로 더욱 폭발하게 되었다.



본디 미국에는 현재와 같이 마약이 '성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멕시고 등지에서 활동하던 마약 카르텔들이 미국을 새로운 시장으로 삼아 본격적으로 마약을 유입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미국 정부는 소위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고 마약을 소지하기만 해도 큰 처벌을 받았다. 마약은 주로 카르텔과 연결점이 있었던 라틴 아메리카인들을 통해 움직였으며 라틴 아메리카인들은 흑인들의 주거 집단에서 굉장히 가까이 생활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흑인들은 마약에 보다 가까이 생활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흑인이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구속되거나 처벌받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흑인들은 당연히 어떻게 '백인'경찰에게 트집이 잡혀서 가석방 없는 형을 살다나 올지 몰랐으니 불안에 떨었다. 공통적인 사상을 가진 이들을 규합하는 것은 타깃이 되는 것을 자처할 뿐이었다. 그러한 모든 불안과 분노를 그 짧은 영화라는 시간 속에 스파이크 리 감독은 모두 담아냈다. 



X인가 King인가?

영화에서는 두 가지 선택지를 부여한다. 바로 말콤X와 킹 목사이다. 강경하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나갈 것이냐 아니면 사랑으로 포용할 것이냐 이다. 리 감독은 이 둘을 지속적으로 영화에 등장시키고 참여시킨다. 그리고 마지막 사랑과 포용을 실천하려는 인물과 인과응보로 가게를 부수는 인물을 비교하며 대비시킨다. 


이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의 반응은 폭동을 지지하고 약탈을 옹호하며 흑인들의 행동을 정당화한다고 비판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외적으로 등장했던 한국인 가정이 우스꽝스럽게 묘사되었다고 한국인 혐오논란이 불거졌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인물들, 사건들의 상징성을 찾아 그것에 집중하여 영화를 본다면 더 흥미롭고 의미 있는 감상을 할 수 있다. 감독은 폭동을 지지하지도 약탈을 옹호하지도 않았다. 굉장히 야만적으로 그려냈고 통제 불가능한 불법적 행위로 묘사하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해두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빛나는 이민생활의 뒤편에는 우리 부모님 혹은 조부모님들의 피나는 고통과 차별이 존재한다.

한국인 가정 또한 작은 구멍가게를 하면서 다른 나이 든 흑인 노인으로부터 근면 성실하다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사람들이 살의 가게를 모두 불태운 후 한국인 가정의 집으로 눈길을 돌리며 슬금슬금 다가갈 때 한국인 가장은 이렇게 말한다. "Im no white! Im black! You and me, same!"라고 말이다. 이에 사람들은 동의하며 물러난다. 피부색은 다를지언정 같은 소수자로 무시받고 차별당하며 살아온 것은 같다는 그의 호소는 곧 감독이 말하는 소수자들 간의 톨레랑스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영화와 달리 지루할 수도 있으나 상징과 메시지를 읽어보면서 감상한다면 쉽기도 하면서 무겁고 날카롭게 직설적인 영화였다. 시니컬한 이야기와 흑인들의 정제되지 않은 문화를 그대로 체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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