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이 Mar 26. 2022

이상한 옆방 할머니

우리의 다락방이 위치해 있는 7층에는 우리 방 이외에도 모두 여섯 칸의 비슷한 다락방들이 있었다. 그들 모두에 사람들이 살고 있는 듯했지만 그들과 마주치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다만 7층 복도에 있는 공용 화장실을 쓰기 위해 드나들거나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유독 자주 마주치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우리 옆 방에 혼자 살고 계시는 60대가량의 할머니였다.

매번 만날 때마다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몸을 움츠리며 고개를 옆으로 떨구었다. 그리고는 옆으로 비켜서서 내가 재빨리 자기 옆을 지나가길 기다리거나, 아니면 마치 못 볼 거라도 본 듯 또는 자신의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 한사코 고개를 떨구며 재빨리 내 앞을 지나갔다.

처음 한두 번은 무심코 프랑스에서 흔히 하는 ‘봉주르’라는 겉 인사를 했으나, 그녀의 행동이 예사롭지 않은 것 같아서 그다음부터는 그녀의 바람대로 재빨리 그녀를 지나쳐 주었다. 아마도 그녀는 대인 기피증이 있는 것 같다고 후배와 의견을 나누었다.

우리가 공부한다고 하루 종일 방 안에 갇혀 있듯이 그녀 역시 무얼 하는지 하루 종일 방안에만 있는 것 같았다.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고 만나는 이도 없어 보였다. 그녀의 방에서 전화벨 울리는 소리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걸 보면 아마도 전화 설치도 안 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사람과의 만남이나 대화를 피하는 그녀에게 전화가 무슨 소용이랴. 나는 한 번도 그녀가 사람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방에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있는 것 같았다. 밤늦게 공부하고 아침 늦게까지 자야만 했던 나는 가끔씩 아침에 그녀가 크게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 때문에 잠이 깨어 신경이 거슬리곤 했던 것이다. 텔레비전 소리는 우리 방까지 새어 들지는 않았으나, 화장실 가는 길에 가끔씩 그녀가 빠끔히 열어 놓은 방문 틈으로 힐끔 훔쳐다 보면 텔레비전이 켜져 있는 상태를 볼 수가 있었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그토록 병적으로 사람을 기피하는 그녀가 만날 때마다 늘 곱게 화장한 얼굴과 단정한 옷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언젠가 밤이 꽤 으슥하게 깊어 복도에서 그녀를 마주친 적이 있었다. 우아하게 꾸민 머리와 화장한 얼굴, 그리고 화려하고 멋진 가운을 걸친 그녀의 모습은 내가 감탄할 정도였다. 그녀에게선 늘 진한 향수 냄새가 났다.

한낮에 시장 보러 가는 그녀를 길거리에서 가끔 마주치기도 했다. 그녀는 가끔씩 꽤 멋진 모자도 쓰고 다녔고, 바깥에 나올 때면 언제나 두툼하면서도 매력적인 선글라스를 쓰고 다녔다. 이 선글라스의 착용은 햇빛이 있으나 없으나 늘 변함이 없었다. 어쨌든 머리에서 발 끝까지 그렇게 맵시 있게 꾸민 그녀의 겉 모양새는 누가 봐도 그녀를 매력적이고 멋있는 한 노부인으로 생각게 할게 틀림이 없었다. 누가 과연 그녀를 사람 기피증이 있으며 엘리베이터도 없고 샤워장도 없는 7층 다락방에 사는 노인으로 상상할 것인가.

언제부턴가 내 의식 속엔 그녀에 대한 의문점들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녀는 왜 사람을 피하는 걸까? 싫어서 아니면 무서워서 일까? 물론 이 두 요인이 어느 정도 서로 연관성을 갖는 것이긴 하지만,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그녀의 행동 속에는 무서움보다는 오히려 사람에 대한 혐오감이 훨씬 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과 옷깃만 스치는 것도 너무 싫어해서 그녀를 소스라치게 놀라게 할 정도였으니까. 그녀의 곱게 화장한 얼굴에는 자신이 아닌 모든 사람들은 불결하고 혐오스럽다는 저주와 증오의 빛이 언뜻언뜻 비치곤 했다. 무엇 때문일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그녀의 과거와 깊이 밀착된 문제 이리라.

사람을 기피하는 그녀가 왜, 무엇 때문에 늘 그렇게 곱게 단장을 할까? 샤워장도 없는데 그녀는 어떻게 몸을 씻을까? 그렇다고 우리처럼 매번 수영장에 가는 것도 아닐 테고…… 아니면, 자신의 방에서 큰 용기에다 물을 붓고 가끔씩 목욕을 하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것을 자주는 못하기에 늘 향수를 진하게 뿌리는지도 몰랐다.

바람이 쌩쌩 부는 추운 겨울 어느 날 도서관에 갔다가 오후 다섯 시쯤 집으로 돌아왔다. 6층까지 숨을 헐떡거리며 뛰어올라와 7층으로 가는 첫 계단을 막 밟는 순간 옆 방 할머니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평상시처럼 아무런 인사도 없이 할머니를 재빨리 지나쳐 주려고 했는데, 갑자기 “아가씨”하며 할머니가 나를 불러 세웠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라 내 귀를 의심하며 뒤돌아 보니 분명 그녀가 나를 불러 세웠던 것이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기 위해서 일까? 궁금증이 순간적으로 내 의식을 사로잡았다. “머리카락이나 기타 잡종의 먼지 뭉치들이 내 방문 앞을 뒹굴고 있는데, 그게 아가씨들의 짓이지?”하며, 그녀 특유의 경멸과 혐오의 눈으로 나를 노려 보았다. 아침에 나갔다가 방금 들어오는 길인 나로서는 도무지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어리둥절해하며, “뭐라고요?”라고 되물었다.

할머니 말에 따르자면, 자기 방 앞에 쌓인 먼지 뭉치 속에 검은 머리카락들이 섞여 있고, 그 색깔로 봐서 동양인 즉 우리들의 머리카락임에 틀림이 없으며, 그런 즉선, 우리가 방을 쓸고는 그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복도로 밀어내어 자기 방 앞까지 갔다 놓았다는 것이었다.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해석이었기에 나는 멍해하며 별달리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바보처럼 “아니오, 그것은 우리가 아니에요”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서 있었다. 그녀 역시 말 많은 사람은 아니었기에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고, 다만 불결하고 혐오스럽다는 눈초리로 나를 한번 더 노려보고는 획하니 돌아서서 장바구니를 들고 계단을 내려 가버렸다.

나는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한참 더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나에 대한 그녀의 경멸과 혐오의 눈초리가 떠 오르자 갑자기 불쾌해지기 시작했고, 좀 전에 왜 우리가 범인이 아니라는 걸 좀 더 확실하고 명확하게 그녀를 이해시키고 설득시키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감이 밀물처럼 밀려와 내 가슴을  아프게 핥고 지나갔다.

불쾌한 감정을 안고 나의 방문 앞에 다다랐을 때 나는 할머니 방 앞을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 방 앞은 별달리 먼지 뭉치가 없는 듯했으나 할머니 방 앞과 복도 여기저기에 작은 먼지 뭉치들이 나뒹굴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밖에서 한창 쌩쌩 불고 있는 바람이 복도의 창문 틈 사이로 들어와 여기저기 흩어진 먼지들을 한데 뭉치게 했고 그 뭉치들이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누가 봐도 이렇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를 할머니가 어처구니없게 우리와 연관 지어 과대 상상한 것은 그녀의 타인에 대한 과대 피해망상증의 한 발로로 밖에 생각할 길이 없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온 나는 자꾸만 할머니의 그 눈초리가 생각나서 불쾌해지는 마음과 억울한 마음을 자제할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정면으로 바라본 그녀의 눈이었다. 그녀의 눈은 서양사람의 눈 치고는 매우 작은 편이었다. 그 작은 눈에 온 세상을 향한 혐오와 증오가 가득 담긴 듯 해 섬뜩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왠지 모르게 나로 하여금 서글픔을 느끼게도 했다.

그녀의 지나친 피해망상증 때문이라 생각되면서도 억울한 마음에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몇 번이고 나가서 할머니 방문을 두드렸다. 적어도 억울한 누명은 벗고 싶었다. 내가 네 번째로 방문을 두드렸을 때였다. 그제야 시장에서 돌아왔는지 그녀는 문을 빠끔히 열고 귀찮다는 듯이 “무슨 일이냐”며 용건만 빨리 말하라는 식이었다. 나는 그녀의 방문 앞에 나뒹구는 먼지 뭉치들을 가리키며 그녀를 방 밖으로 불러 냈다.

—이 먼지 뭉치들은 창문 틈새로 들어온 바람에 의해 형성되었고 또한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는 것이지, 결코 우리가 고의적으로 우리 방을 쓸어 당신 방 앞까지 밀어 놓은 게 아니에요. 그건 얼토당토않은 과대망상증에 불과할 뿐이에요. 그리고 꼭 우리만 검은색의 머리카락을 가졌다고 어떻게 장담하세요? 이 7층에 사는 사람들의 머리카락 색을 당신이 일일이 다 검토해 보셨나요?”

—다……당신들이 아니라면 됐어요. 그렇다면, 누군가 다른 사람이……

—부인,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것은 바람 때문일뿐이에요, 바람.

내가 꽤 강경한 어투로 말을 해서 그런지, 조금 전에 나를 노려보던 그 눈초리는 어디론지 사라져 버린 듯했고, 그녀는 금세 주눅이 들어 몸을 움츠리며 겨우 더듬거리는 몇 마디 말을 뱉어냈을 뿐이었다. 한마디로 그녀는 막다른 곤궁에라도 처한 듯 어찌할 줄을 몰라 쩔쩔매는 식이었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이 타인을 그토록 혐오하고 증오하는 만큼 타인도 그녀를 그렇게 하리라는 망상의 늪에 깊숙이 빠져 있었으리라.

그런 일이 있은 후, 그녀와 우리의 관계는 더 이상의 진전도 후퇴도 없이 예전처럼 늘 여전했다. 같은 층의 옆 방에 살면서도 인사 한마디 나누지 않고 모른 척하며 그녀를 지나칠 때마다, « 사람 사는 게 이런 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 안타깝기도 하고 서글퍼지기도 했지만, 나로서는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그럭저럭 시간을 흘러 보내고 크리스마스가 가까워 온 어느 날, 후배와 나는 그녀에게서 대단한 발견을 했다. 우리는 마침 시장도 볼 겸 우체국에도 들를 겸 해서 함께 B시의 중심가로 나갔다. 먼저 우체국부터 들렀는데, 바로 거기서 우리는 너무도 놀라 우리의 눈을 의심하며 다시 한번 확인했다. 분명 그녀였다. 우체국 창구 앞에서 꽤 큼직한 소포 꾸러미를 부치고 있는 사람은 확실히 그녀가 맞았다.

“도대체 누구한테 부치는 소포일까?” 후배와 나는 동시에 똑같은 말을 뱉었다. 그것은 평상시 그녀를 알고 있는 우리에겐 대단한 발견이자 동시에 크나큰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사람이라면 그토록 진저리를 치는 그녀에게 그래도 크리스마스라는 특별한 날을 위해 소포를 부칠 사람이 있다니…… 그 소포를 받는 사람은 도대체 누굴까? 친구일까 아니면 가족일까? 그 사람은 왜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는 걸까? 

그날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녀에 대한 끝없는 상상의 날개를 펼쳤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그녀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했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우선 그녀가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선물을 보낼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게 너무도 다행스러웠다. 이제야 겨우 내가 지금껏 보아오지 못한 그녀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한 셈이었다. 그녀에겐 단지 타인을 혐오하는 마음만이 아니라 타인을 위하는 따뜻한 마음도 있었던 것이다. 이 따뜻한 마음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그녀의 어떤 슬픈 과거에 깊이 파묻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으리라. 그로부터 나는 조금 더 그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녀에게 깊은 동정이 느껴졌다.

그 방을 떠나온 이후로도 옆방 할머니에 대한 생각은 한동안 특별하게 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B도시를 지나면서 7층 다락방들을 바라보노라면 그 할머니에 대한 아슴푸레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