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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미 Oct 19. 2021

둔치가 비었다

프롤로그



둔치는 물가 근처 숲에서 시작했다.


물가에서 놀듯이 즐겁고 가볍게 그림 그리고 작업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우리는 둔치가 되었다. 미술로 유학을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목표지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공간이지만, 그러니 더더욱 과정을 즐겁게 챙기자는 차원에서 붙인 이름이다.


이름부터가 잘못됐다.


우리가 무언가를 즐기는 방식, 혹은 작업이나 일을 즐기고자 하는 그 자체가 불필요하거나 과하다고들 한다. 운영진 둘은 즐거움 없이는 무너지고 보람 없이는 헛헛해 아무 일도 못해먹겠다는 사람들이라는 걸 각종 사례를 통해 새삼 확인한다.


결국 가치 구현과 현실, 개인 작업과 교육, 나눔과 독박, 보살핌과 환멸 사이에서 빚어내는 갈등 자체가 둔치가 되었다. 그것들에 대한 기록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다 보면 이상에 보다 가까워지고 독박이 기꺼워지지 않을까 하는 다소 회의에 찬 희망을 가져보기도 한다.





둔치가 비었다.


이틀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배에 구멍이 뚫려서, 오랫동안 방치해두었던 마음을 챙겨야 해서, 형편이 어려워서 등, 저마다의 그럴듯한 사정으로 공간을 싹싹 비워냈다. 그들 생애 가장 뜨거울 겨울을 목전에 둔 살벌하고도 평범한 가을날이었다.


이것이 우리의 실패담인 것은 그저 그렇게 누군가가 납득할만한 이야기 하나 대충 남겨두면 언제든 함께 하던 시간을 툭 끊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한 것에 우리의 책임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라도 떠나려는 그들에게 (마지막) 열을 내는 게 나조차도 갑작스러웠으니.


올해 장사는 공쳤다. 홀가분하다. 성과는 어설프게라도 반기나 과정에서 설레기를 어려워하는 이들의 방문은 절망적이었고, 별의별 궤변으로 폭력을 합리화하는 하루하루에 지쳐있던 찰나였다. 비어진 공간을 보고 황망해하기는 커녕 마음도 함께 씻어내는 나의 이 꼬라지가 더 절망적이라고 누군가는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장사나 잘할 일이지 사람에 휘둘리다 이게 무슨 꼴이냐며.


  작업실을 바라보며, 도대체 뭐가 잘못되었길래 피차 서로를 떠나야만 겨우 화를 가라앉힐  있는 건지 기록해봐야겠다. 함께여서, 떠난 후여서   없는 것들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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