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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May 25. 2022

동물병원을 선택하는 기준

깐깐한 보호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


이사를 하면서 4년 동안 다녔던 동물병원과도 이별했다. 현재 집에서 그 동물병원까지 차로 40분이 소요되므로 아쉬워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병원을 갈 일이 아예 발생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고양이들도 자질구레한 잔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가령 계절이 바뀌면 연례 행사처럼 겪는 감기나 피부염이 그 일부다. 부산에 온 뒤로 줄곧 한 동네를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병원도 한 군데를 지정해 다녔다. 그곳은 집과도 가까울뿐더러 원장 선생님과 테크니션 선생님들도 친절하고 거기서 지어주는 약 한두 번 먹이면 아이들의 상태도 금세 나아졌다. 더불어 티가 나는 과잉진료도 없었다. 또한 새로운 고양이들을 구조해 데리고 갔을 때에도 할인까지 해주는 고운 마음씨까지 갖추고 있어 병원은 크지 않았음에도 늘 사람과 동물들로 북적거렸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동네에 왔으니 그에 버금가는 병원을 찾아야 할진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내가 이토록 병원을 꼼꼼하고 신중히 알아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약 5년 전, 솔을 처음 데려왔을 때 자취방 바로 앞에 동물병원이 하나 있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의사 선생님과 중년의 테크니션 선생님이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작은 병원. 고양이를 데리고 이동하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라 단지 가깝다는 이유로 그 병원을 가곤 했는데, 참 어리석었다. 길 생활을 하던 솔은 피부병이나 설사 등 자잘한 증상들을 겪고 있었다. 그때마다 진료를 보고 약을 받아 와 아무리 먹여도 금세 재발하곤 했다. 왜 병원을 옮길 생각을 안 했을까. 지난날에 대한 후회가 막대하다. 중성화 수술도 그곳에서 했다. 선생님의 연세가 많은 만큼 노하우도 출중하지 않을까 하여 대수롭지 않게 맡겼던 게 실수였다. 수술 방식이 과거에 머물러 있던 게 단점이었던 것이다. 암컷의 경우 배를 절개해 자궁을 적출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병원들은 절개를 최소화하여 흉이 남지 않게끔 해준다. 셋째 풀을 예로 들어 보자면 하루 이틀 약을 먹고 금방 회복한 데다 배 위에 흉터도 남지 않았다. 반면 솔은 아직도 아랫배 쪽에 희미하고 하얀 흉터가 있다. 흉터라고 하긴 뭐하고, 흔적 정도라고 할 수 있는. 분홍빛이 감도는 배를 가로지르는 내 약지 손가락 길이 정도의 흔적. 나의 무지가 빚은 결과물이 그 애의 배에 남아 있다. 볼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쪼그라든다. 퇴근 후 마취에서 깨어난 아이를 집에 데려왔을 때는 어찌나 화를 내던지.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얼마나 아프고 짜증이 났을까 싶다. 낯선 곳에서 자고 일어나 보니 몸에는 뭐(붕대)가 감겨있고 벗고 싶은데 벗을 수도 없고 그루밍도 하지 못하고 따끔거리기까지 하니 분노가 치밀지 않고 배길까. 그때는 고양이에게 공감하는 법도 잘 모르고 객관적인 정보도 없이 주변의 조언을 받아 구색만 겨우 갖춘 채 솔을 길렀다. 덩달아 솔도 고생을 많이 했다. 처음에는 사냥 놀이의 중요성도 인식하지 못해 털꼬치 몇 개 사서 흔들어 준 게 전부였다. 내가 조금 더 준비된 상태에서 아이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네 마리의 고양이 중에서도 내 마음 속 일등은 단연 솔이다. 편애하지 않고 모두에게 똑같은 애정을 나눠 줘야 한다는 걸 알지만, 그 애에 대한 나의 마음은 오로지 애틋한 사랑만 있는 게 아니다. 나의 처음이라는 귀중함, 내가 미처 몰랐던 것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 처음엔 인간 중심으로 고양이를 바라봤던 인간이었다는 것에 대한 수치심…. 고로,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 애가 행복할 수 있도록 헌신도 개의치 않아야 한다.       


며칠 전에는 집에서 모기를 발견했다. 다음 날 헐레벌떡 심장사상충 예방약을 사기 위해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새로운 동물병원에 갔다. 그 병원은 인터넷 서치를 통해 알아낸 곳으로 고양이 전문이라 하더라. '선생님이 친절하고 설명을 자세히 해 주십니다.', '진료를 잘 봅니다.' 등등의 후기로 이루어져 있어 앞으로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가도 될 병원인지 살필 겸 하여 출근 전에 들렀다. 병원 카운터에는 리셉션 선생님 대신 상주견으로 보이는 하얀 개가 마치 사람처럼 우뚝 앉아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어쩐지 주토피아에 온 것 같아 웃음이 피실 새어 나왔다. 접수를 위해 아이들 이름과 성별, 나이를 적다 보니 솔이가 어느덧 다섯 살이라는 걸 깨달았다. 우리 솔이 벌써 다섯 살이라니. 고양이 5살은 사람 나이로 삼십 대 중반이라던데. 솔에게 벌써 내 나이를 따라 잡혔다는 사실이 속상하다. 손 안 탄 택을 제외하고 세 마리에게 바를 약 세 개. 가격은 5만원. 매번 느끼는 바지만 동물 약 값은 정말 비싸다. 다음에는 해외 직구를 통해 1년치를 구입해 볼까 싶다. 약은 아이들이 핥지 못하도록 뒷목에 짜주면 된다. 솔 먼저 붙들고 발라줬더니 내가 또 잡으러 올까 봐 온 집안을 헤집고 뛰어 다녀서 잘 발렸는지 살펴 보지도 못 했다. 꾸르릉! 하며 도망 다닌 걸 보면 잡기 놀이를 제안한 거였나 싶기도 하고. 고양이 네 마리 중 가장 연장자인 솔. 슬슬 건강검진에 대해 알아봐야 할 듯 싶다. 고양이도 노화에 대해 인식할까. 그 애가 늙는 게 싫다. 나의 작고 어린 고양이. 시간을 멈추고 영영 내 곁에만 두고 싶다.      


*해당 병원 원장 선생님을 만나 보지는 못하였지만 믿을 수 있는 여러 후기를 바탕으로 리셉션에 계셨던 선생님의 친절하고도 밝은 말투와 표정, 세심한 설명 그리고 바로 뒤에 주차장이 있다는 게 마음에 들어 다음에 일이 생긴다면 다시 한 번 그 병원을 찾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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