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 Jul 09. 2022

우리는 대화를 한다

수다쟁이는 괜히 되는 게 아니다


주말 오후 3시, 혹은 4시. 집이 떠나가라 운다. 고양이 풀이가. 낮잠을 잘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 애는 꼭 아기와 같아서 낮잠을 잘 시간에 칭얼거리기 일쑤다. 스스로 들어가 자는 법을 알면서도 사람이 있을 때는 어린애처럼 보챈다. 애착 담요 위에 폴짝 올라갔다가 내려왔다가, 눈이 마주치면 뺘-아, 냐-아 울어댄다. 졸리다는 건가? 싶어 인간이 침대 위에 올라가 이불을 들춰도 잠시 올라왔다가 훌쩍 내려가 다시 운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소파 위에 대강 구겨져 있는 애착 담요 근처를 손바닥으로 두드린다.


 "이리 올라와."


그제야 자그마한 발이 재빠르게 자리를 잡는다. 앞발은 폭신한 담요를 꾹, 꾹 힘을 줘 누르며 까끌까끌한 혓바닥으로 담요의 섬유를 핥고 제가 원하는 부분을 입에 문다. 그때부터 쫍쫍쫍, 경쾌한 소리가 연속된다.



이리 올라와. 자러 가자. 내려와. 안 돼. 그건 하는 거 아니야.


단순하지만 뜻이 명확한 문장들. 고양이들은 말과 뜻을 연관 지어 행동으로 옮긴다. 신기하다. 각자의 언어가 달라도 우리의 의사소통 능력은 날로 상승하고 있다. 더 오랜 세월을 함께 하다 보면 눈빛만 보아도 서로의 뜻을 알아채는 순간이 올까. 고양이들은 우리가 미래를 기다리게 만드는 존재들이다.



우리 네 마리의 고양이들 모두가 알아듣는 말도 있다.


 "냐미?"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간식을 주기 전 '냐미 먹을까?' 하고 물었던 탓에, 식탐이 있는 아이들은 '냐미'라는 단어만 말해도 득달같이 달려와 빛나는 눈으로 우리를 주시한다. 이럴 때면 아이들과 우리가 공통의 언어로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게 된다. 그들에게 우리의 말이 어떻게 들릴지 가늠할 수 없다. 목소리의 높낮이와 표정을 파악하는 건지 우리가 사용하는 긍정적인, 혹은 부정적인 단어들을 구분하는 건지. 둘 다일 수도 있다. 고양이들은 우리 인간들의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고 위대하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고양이들 앞에서 말을 조심해야 한다. 아이들은 다 듣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나쁜 말을 하는지 다 알고 있을 수도 있다. 만약에, 고양이들이 우리가 하는 말을 익혀 따라하게 되는 날이라도 오게 되면.... 끔찍하다.


아, 발톱이란 단어도 알아듣는다.

발톱 깎을까? 이는 집안의 고양이들을 사라지게 만드는 놀라운 마법의 문장이다.


혼을 낼 때도 고양이들은 기가 막힌 언어 해석 능력과 상황 회피 능력을 보여준다. 예컨대 망구는 자신만의 애정표현으로 깨무는 습관을 아직까지도 고치지 못했다. 무는 강도는 약해졌지만, 가끔 피부가 연한 곳을 물리면 눈물이 찔끔 새어 나올 지경이다. 삼월이 누워 있는 동안, 옆에서 뒹굴거리던 망구가 삼월의 볼을 깨물었는데 너무 아파서 벌떡 일어났더란다.


 "볼을 깨물면 돼, 안 돼! 여기는 아픈 곳이야. 망구가 물어서 엄마 아파."


볼을 문지르는 삼월이 꾸지람 반, 투정 반 칭얼거리자 망구는 시선을 회피하며 눈을 끔뻑였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도 알고,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충분히 이해하는 종족들이다. 하지만 그 말을 알아듣는다고 해서 진심으로 반성을 한다거나 우리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야 고양이지.


나는 4년 전만 해도 솔과 말다툼을 자주 벌였다. 내가 이 말을 하면 아무도 믿지 않는다. 실상,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실소를 유발하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말다툼은 우리 둘만 있을 때 벌어졌다. 솔은 지금도 그러지만 예전에는 더 변덕이 심했다. 엉덩이를 두드려 달라고 먼저 다가와 꼬리와 엉덩이를 바짝 들면 나는 훈련을 받은 것처럼 손을 올려 아이의 엉덩이를 (등에서 꼬리로 이어지는 부분) 두드리곤 했다. 티브이를 보거나, 다른 일을 할 때도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기계적으로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툭 툭 툭 두드렸다. 그러다 무엇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솔이 '냥!' 하며 내 손을 약하게 깨물고 나는 깜짝 놀라 손을 떼었다.


 "네가 먼저 두드려 달라고 왔으면서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서 짜증을 내?"


대충 고양이가 듣기에도, 사람이 듣기에도 길고 수다스러운 역정(까진 아니었지만)이었다. 그러면 솔도 '왕냥!' 소리를 내며 휙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 그 밖에도 내가 먼저 지나가는 솔이 배를 건들거나 머리를 마구잡이로 쓰다듬어서 짜증을 유발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나는 솔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내게 잔소리를 하는 것이 퍽 기뻤다. 본묘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여담이긴 하지만 우리 둘은 인간과 고양이가 아니라 친구 개념으로 함께 살았다. 서로 놀리다가도 악몽을 꾸는 밤에는 기꺼이 온기를 빌려주는. 고양이가 사람을 어떻게 놀리냐고? 검은 고양이는 불을 끄면 자신이 보이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잠을 자다 일어난 내가 컴컴한 어둠 속 손을 더듬거리며 화장실을 가고 있노라면 소리도 없이 따라와 작은 발로 내 발목을 툭툭 치고 멀리 도망가기도 했다. 그럼 나는 오밤중에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질렀다. 솔 입장에서는 그게 유일한 즐거움이었나 보다.


어릴 때부터 삐약삐약 병아리, 음머음머 송아지 같은 노래를 부르며 야옹야옹은 고양이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고양이를 키워보니 야옹야옹 우는 고양이는 한 마리도 없다. 냐냐. 먕먕. 미웅. 우엉. 등 도무지 텍스트로 적기 힘들 만큼 해괴하고 괴상한 소리를 낸다. 그나마 모든 고양이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울음소리는 정보 숙지를 하고 있어서 특별한 경우에는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예를 들어 화가 나면 '하-악' 하며 매섭게 눈을 뜨고 경계를 할 때는 '우오오오오' 하며 사이렌 소리를 내고, 겁에 질렸을 때는 '와오오' 하며 울부짖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특수한 상황보다 생활에서 그들이 하는 말이 궁금하다. 우린 대충 눈치로 기분 좋음, 기분 나쁨, 싫음, 무서움 등등의 기분을 가늠하는 것뿐이지 그들의 심리를 완벽히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게 안타깝다. 우리는 매일 얼굴을 보고 함께 잠을 자고 같이 창밖을 내다볼 만큼 가까운데 능숙한 대화가 불가하다니. 낙관적으로 생각한다면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바디 랭귀지와 눈치게임으로 이만큼이나 서로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경지에 이르렀으니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나는 이따금 그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하는 상상을 한다.


넌 언제 가장 기분이 좋니? 제일 맛있는 간식은 뭐야? 발톱 깎을 때 왜 그렇게 화를 내? 왜 요즘은 장난감에 관심을 안 가져? 재미가 없어? 우리가 주는 밥은 맛있어? 우리가 집에 없을 때 너희들은 뭐하며 하루를 보내? 정말 잠만 자? 그리고, 어디 아픈 곳은 없니?


꿈에서든, 현실에서든 이런 상황이 닥친다면 고양이들은 거의 기자회견 급으로 우리들의 질문에 대한 답만 하다 시간을 보낼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물병원을 선택하는 기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