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 Aug 21. 2022

여름은 목욕의 계절

고양이도 목욕을 합니다

 고양이가 목욕을 자주 하지 않아도 되는 동물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일 년에 한 번, 혹은 더욱 긴 텀을 두고 목욕을 시키는 집도 있지만 우리 집은 매년 여름 중 하루를 목욕하는 날로 정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이 년에 한 번은 너무 긴 듯하고, 6개월에 한 번은 힘에 부친다. 일 년에 단 하루, 건조가 용이한 여름. 그 또한 장마철을 피해 해가 쨍쨍한 날을 골라야 하므로 여름에는 매일 아침 일기예보를 확인하며 신중히 날짜를 택해야 한다. 그리하여 약 이 주 전, 꿉꿉한 장마철이 간신히 지나고 해가 내리쬐는 어느 주말. 우리는 첫째 솔을 가장 먼저 화장실로 납치했다.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늘어난 건 꾀와 연기력이다. 우리 말을 알아듣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눈치가 빠른 고양이들은 어떤 이벤트의 낌새를 금세 느끼고 각자 흩어져 도망을 간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소와 똑같은 얼굴로 뒤에서 남몰래 계략을 꾸며야 하는 것이다. 이마저도 어색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감독님들은 4년 차 배우의 미세한 감정 변화까지 기민하게 캐치하기 때문에. 내가 되도 않는 연기를 하며 솔에게 다가가는 사이 삼월은 물 온도를 맞추고 있었다. 인간에게나 고양이에게나 씻을 때 몸에 닿는 수온은 중요하다. 특별한 연례행사가 트라우마로 남으면 곤란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들 인생에 있어 이런 이벤트는 별거 아니라는 양 스무스하게 지나쳐야 하는 막중한 부담감이 있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솔을 품에 안고 둥가둥가를 시전 하다 대뜸 화장실로 들어와 버렸고 솔은 넋 나간 얼굴로 공간을 두리번거리더니 애달픈 목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꼬리와 엉덩이를 시작으로 등과 가슴까지 미약한 물줄기에 축축하게 젖어버린 뒤였다. 보송보송한 털이 가라앉은 고양이는 얼마나 볼품이 없는지. 거죽에 축 들러붙은 털로 하여금 작은 몸집이 여과 없이 드러나 한 편으로는 우습고 귀엽기도 했다. 솔은 그나마 얌전한 편이다. 그저 '야옹- 야옹-' 울기만 해서 바닥에 발이 떨어지지 않도록 신경만 써주고 드문드문 다정하게 달래주면 아이가 참으려고 애를 쓰는 티가 났다. 그럴 때마다 옷이 젖든 말든 품에 안고 덩달아 물을 맞으며 씻겼다. 작은 아오리 사과 같은 얼굴을 엄지로 슬 문질러 닦아주고 분홍색 배와 자그마한 발등도 거품을 묻혀 헹궈주면 수월하게 끝이 났다. 역시 고양이 목욕의 핵심은 스피드다. 서로가 아무리 노력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지 솔이 한계에 다다른 듯 금방이라도 '와앙'하고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우는 통에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주고는 거실로 내보냈다. 그러자 아이는 푸다닥 뛰어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침대 아래나 베란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물기가 채 빠지지 않은 꼬리나 발등, 다리와 팔까지 골고루 핥았다. 어차피 햇볕이 아이의 등을 말려줄 테니 건조에 대해 조급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두 번째 순서는 록. 망구였다. 아이들은 가장 무서운 솔이 물소리가 떨어지는 방 안에 들어갔다 온 후로 몸이 흠뻑 젖어 나온 것을 보고 사태를 파악하거나, 혹은 이미 무언가를 눈치채고 도망을 친 이후였는데 우리 막내는 그런 것에 무감한 편이라 그런지 멀뚱히 서 있는 것을 삼월이 잡아왔다. 우리 집에서 가장 덩치가 크고 무게가 많이 나가는 큰 아기인 것을 고려해 목욕 시간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걸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털 숱은 어찌나 많은지 물이 속까지 젖지 않아 한참을 적셔야 했다. 망구도 처음에는 참으려는 듯하더니 문 앞에 가서 내보내 달라고 '애옹-애옹-' 울기까지 몇 분이 소요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해야지 어떡해. 우리의 아이들아. 어찌 좋은 것만 하고 살 수 있겠니. 세상은 녹록지 않단다. 공존이란 그런 것이야. 알아듣지도 못하는 애에게 철학이랍시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가며 거품을 내 문지르고 매일같이 흐르는 눈물에 절여져 갈색빛이 빠질 날 없는 콧잔등도 꼼꼼히 닦아내었다. 망구가 우리 집에 처음 온 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목욕을 시킨 적이 있다. 합사를 앞두고 혹시 있을지 모를 피부병을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작은 몸이 물에 젖기 싫다고 빽빽 울며 내 어깨는 물론 등을 타고 올라와 체념하다시피 녀석과 같이 물을 맞았는데.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간다. 그 사이 아이도 많이 자랐다. 고양이에게 어른스러움을 기대하긴 무리가 있으나 그때보다 망구가 꽤 뻔뻔하고 의젓해진 것 같아 마음 한켠이 뭉클해지기도 하였다. 목욕을 시키면서 그간 모르고 살았던 이 새 집의 하자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가 원하는 물의 온도는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미온수였건만 우리 집 샤워기는 중간을 모르는 놈이었다. 갑자기 뜨거워졌다가 차가워졌다가를 반복하는 바람에 샤워 시간이 지체되었다. 인간이 샤워를 할 때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라 당황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한여름에도 거의 몸이 데쳐질 듯 뜨거운 물과 강한 수압을 선호하는 취향이었고 우리와 달리 고양이에게는 최소한의 수압을 사용하며 뜨뜻미지근한 물의 온도를 맞추어야 했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서 샤워기가 말썽을 일으킬지 예상하지 못했다. 사소한 씨름으로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인간이나 고양이에게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어쩌겠나. 그들도 우리도 물러설 곳이 없었다. 한 번 시작을 했으니 끝을 봐야 했다. 요리조리 피하기는 하지만 큰 반항도 없을뿐더러 앞발을 들면 드는 대로, 허벅지를 문지르면 문지르는 대로 곧이곧대로 있어주는 우리 망구가 퍽 안쓰럽고도 대견했다. 역시나 커다란 몸은 드라이기 한 번 가져다 댈 틈도 없이 문이 열리자마자 번개처럼 빠져나갔고, 우리는 허탈함을 느낄 새도 없이 다음 타자를 물색했다. 사실 정해져 있었다. 남은 둘 중 하나는 어디에 숨었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우리 손에 잡히지도 않는 환영 같은 존재였으니 말이다. 



가장 큰 난관은 풀이었다. 어찌어찌 잡아오긴 했는데, 화장실 문을 닫기가 무섭게 울어재끼는 게 꼭 갓난아기 같았다. 도망을 가기 위해 허우적거리지 않았지만 자신이 얼마나 두려움을 느끼는지 알아달라는 듯 온 힘을 다해 울었다. 아마 이웃집에서는 우리가 동물을 학대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그 소리는 누가 들어도 '살려줘!'에 가까웠다. 셋 중 가장 체구가 작은 몸이었는데도 씻길 때는 제일 힘들었다. 아무래도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보다 눈높이를 맞춰 씻기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몸을 한껏 둥글게 말고 다정하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풀을 어루만졌는데, 녀석은 내 귀에 대고 거세게 비명을 질렀다. 우렁찬 소리를 듣고 있자니 평소 밥을 잘 먹는구나 안심이 되기도 했지만, 끝이 살짝 꺾인 꼬리부터 앙증맞은 발과 꽤 탄탄히 근육 잡힌 허벅지, 길고 마른 등과 살집이 도톰한 목덜미까지 빠짐없이 적시고 거품을 내 닦았다. 또한 볼 때마다 항상 눈곱이 껴있는 눈앞머리도 빼놓지 않았다. 그렇다고 풀이 작은 병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아이의 눈곱 이야기는 약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풀이 눈에 하도 눈곱이 껴있길래 걱정스러운 마음에 나와 삼월이 부랴부랴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간 적이 있다. 


선생님, 혹시 눈병인 걸까요? 

선생님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아니오. 세수를 게을리하는 겁니다. 

그렇군요.


세수는 이렇게 하는 거란다. 혹시라도 풀이 깨닫지는 않을까 하여 녀석의 눈앞머리에 붙어있는 까만 눈곱들을 엄지로 문질러 닦아내주었다. 녀석은 언제나 한결같다. 그래도 삼월이 수시로 눈곱을 떼어주는 게 습관이 들었는지 고 작은 얼굴을 손으로 감싸 눈앞머리를 살살 긁어줄 때면 까다롭게 굴던 녀석도 얌전히 얼굴을 내어주곤 한다. 이날도 눈곱을 뗄 때는 얌전히 눈을 감고 '뀨웅...' 울기만 하길래 그게 귀여워 이마에 짧게 뽀뽀를 해주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우리 티셔츠를 잡고 늘어지는 바람에 꼼짝없이 같이 샤워를 하는 꼴이 되었다. 꼼짝없이 젖은 생쥐 꼴. 그럼에도 이 녀석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수건으로 몸을 닦아내느라 털이 반대로 삐죽삐죽 일어선 고양이들을 보고 있자니 가관이었다. 누가 시키기라도 한 듯이 한쪽 발을 천장을 향해 치켜들고 까끌거리는 혓바닥으로 젖은 배를 핥는 아이들. 그리고 땀인지 물인지 모를 것에 젖어 멍하니 그들의 뒤통수만 바라보고 있는 우리. 그날 하루의 장면이 시트콤 같았다. 소란 끝 찾아온 평화. 우리도 잠시 고요해진 집안 풍경을 둘러보다 끈적한 몸을 씻어냈다. 이렇게 좋은 걸 왜 그렇게 무서워하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역시 우린 다른 종족인가 봐. 우릴 고단하게 만들어도 우리는 너희를 변함없이 사랑해. (때론 지칠 때도 있지만)


그 뒤로 망구에게는 작은 습관이 생겼다. 화장실을 물이 쏟아지는 위험한 곳으로 인식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샤워를 할 때마다 문 앞에서 울어댄다. 어느 날은 눅눅한 습기가 숨이 막혀 문을 열고 샤워를 했는데, 내가 샤워를 마칠 때까지 문 앞에 서서 한참을 지키고 서 있었다. 기특한 녀석.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려는 마음은 갸륵하다만, 사실 우리는 너희가 홀로 쓰러진 인간을 위해 119를 불러줄 수 있는 능력을 지녔으면 좋겠다고 가끔 생각한단다. 내년 여름의 목욕도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그땐 조금 더 능숙하고 재빠르게 상황을 종료시킬 수 있기를. 이렇게 우리의 여름이 무탈하고도 시끄럽게 지나가고 있다. 




홀딱 젖은 망구. 눈망울이 촉촉하다.
물에 젖었어도 바깥 구경은 참을 수 없지.
불만이 가득한 눈.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대화를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