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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Jan 06. 2023

고양이는 이불을 좋아해

그리고 이불을 좋아하는 인간의 새해 다짐


바람이 제법 매서운 계절. 보일러 온도를 높여도 허공을 떠도는 집안의 냉기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겨울의 초입, 어느 고양이가 뜯어 놓아 물이 줄줄 새던 온수매트를 고친 뒤 우리 집은 밤낮으로 온수매트를 가동 중이다. 덕분에 잠을 자기 위해 불을 끄면 침대 위가 금세 북적북적해진다. 망구는 내 베개에, 풀은 나와 삼월 사이에, 솔과 택은 어슬렁거리다 네 개의 발 언저리에 자리를 잡는다. 고양이들이 가로로 자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덕분에 인간은 비좁은 공간 안에서 어떻게든 이불속을 사수하기 위해 불편한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도 등은 예열된 매트로, 옆구리는 고양이가 뿜어내는 체온으로 따뜻하게 잠을 잘 수 있다. 그들은 어찌나 달게 잠을 자는지 평소였다면 우리가 퇴근을 해 도어록 누르는 소리에 맞춰 현관 앞까지 마중을 나왔을 녀석들이 밤이 되어도 조용하다. 이름을 부르면 그제야 이불 위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고 덜 뜨인 눈을 끔뻑인다. 잠이 많은 풀은 이불 속에 들어가 자정이 다 되어갈 시간에도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가끔 간식을 먹자는 소리에 터덜터덜 달려 나와 부은 얼굴로 빽빽 울어대는 걸 보면 기가 차면서도 귀엽다. 


작년, 연말 회식이 있었다. 새벽 2시가 넘어서야 귀가를 할 수 있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침대에 누우니 4시였다. 자신들만의 루틴과 규칙이 엄격한 고양이들은 불규칙한 인간들이 늦은 시간 침대에 눕지 않아도 저들끼리 잠을 자러 간다. 망구는 예외다. 아이는 언제고 우리 옆에 있으려 하고 우리가 누워야만 침대로 올라와 잠을 잔다. 이날은 술을 마셔 몸에 기력이 없는 상태였는데 꾸역꾸역 내 베개를 베고 자겠다며 내 베개 반을 차지하는 바람에 나는 옆으로 돌아누워 자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나는 몇 시간 안 되는 수면 시간과 불편한 잠자리로 인해 미처 깨지 못한 숙취로 고생을 했지만, 눈을 떴을 때 볼이 눌려 찌부러진 못난이 얼굴을 보고 행복했다. 그거면 됐다. 사람의 온기를 좋아하는 망구는 나와 삼월 사이에서 자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틈을 비집고 들어와 튼튼한 몸을 기댄다. 자세가 불편하면 이리저리 뒤채기도 하고 이 베개, 저 베개에 머리를 옮겨 다니기도 한다. 그러다 머리를 쓰다듬으면 자동반사적으로 고롱고롱 소리를 낸다. 고양이의 몸 어디선가 진동하는 기쁨의 울림은 자장가처럼 감미롭다. 


올 겨울에는 부산에도 눈이 왔다. 흩날리는 결정체가 도시의 아스팔트 위를 부유하는 사이, 초등학생들은 교실을 박차고 나와 눈을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도 좋을까. 출근길 버스 안에서 헛웃음을 지었더란다. 내가 지내던 천안은 겨울이면 눈이 발목까지 쌓이곤 했는데, 눈을 보며 펄쩍펄쩍 뛰던 그들과 비슷한 나이에 나도 눈을 반가워했다. 아빠가 어디서 구해온 포대를 갖고 작은 언덕 위를 올라가 썰매를 타기도 했다. 솔은 천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흩날리는 눈발을 본 적이 있다. 굵은 눈송이가 창가에 내려앉을 때면 나는 솔을 안아 들고 창가에 앉혔다. 방충망 너머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눈을 잡으려는 듯 작은 발이 움직일 때를 기억한다. 솔의 기억 속에도 그 장면이 필름처럼 남아 있을까. 고양이의 기억력이 인간보다 짧다. 하지만 그때 내가 안고 있던 아이의 부드러운 털의 감촉과 신기한 듯 반짝이던 눈동자를 내가 기억하는 만큼 아이의 머릿속에도 그날의 찬 공기와 함께 눈이 흩날리던 장면이 조금이라도 재생되는 때가 있길 바란다면 너무 큰 욕심이려나.


새해가 밝았다. 못 지킬 것을 뻔히 알기에 계획 같은 것은 염두에 두지도 않았지만, 큼직큼직하게나마 세운 것들이 있긴 있다. 규칙적인 생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생활 습관이 하루의 시간을 허송하기에 최선의 방법이라는 걸 절실히 느끼는 중이다. 올해에는 술을 줄이고 티브이보다 책을 더 볼 것이며 많은 그림을 그릴 것이다. 열심히는 아니더라도 틈틈이 자격증 공부도 해볼까 한다. 삼월은 영어공부를 하겠다며 알아보고 있다. 요즘 ‘갓생러’라고 부르는 아침 일찍 일어나 매일 같이 운동과 공부, 건강한 식단까지 챙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는 태생이 충동적이고 게으른지라 갓생은 꿈도 못 꾼다. 다만 나를 놓지 않으려 한다. 커다란 빌딩을 짓기보다 작은 화단에 꽃과 열매를 가꾸는 것처럼 아주 조금씩, 천천히. ‘잘 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이는 먹는데 나 자신은 아직도 스스로에 대한 정의를 찾지 못해 불명확한 사람인 것만 같다. 나이가 들수록 ‘잘 사는’ 것에 대해 골몰한다. 최종 목표가 있다면 나잇값 정도는 하고 사는 것. 무탈하게, 걸음의 기쁨을 알아채며 살고 싶다. 



보너스 컷. 완벽한 고양이의 숙면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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