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작고 어린 아기에요
거래할 중고 물품도 없는데 알림이 주기적으로 뜨는 통에 오랜만에 당근마켓에 접속했다가 소식지를 통해 동네에 새로 개원한 동물병원에서 무료 건강검진 이벤트를 진행한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다. ‘의료 민영화의 현실을 알려거든 동물병원을 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동물병원의 의료비는 만만치 않다. 그래서 더욱이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고 곧장 전화를 해 예약을 잡았다. 네 마리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솔이 그 대상이었다. 솔의 나이 여섯 살. 사람 나이로 환산하면 40살 정도란다. 나는 고양이에게 나이를 역전당했다. 앞으로는 모시고 산다는 말이 적절할 지도 모르겠다.
검진을 받으러 가기 위해 이불속에 납작하게 엎드려 잠을 자고 있는 솔을 안아 이동장에 넣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가는 도중에도 왕왕 울어대는 녀석을 달래 가며 차에 탔고 삼월이 운전을 했다. 나는 뒷좌석에 앉아 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손길에 안정이 된 듯 얌전해지는 솔을 보니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병원은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4월 초에 개원해 깨끗한 시설이 눈에 띄었다. 새로운 동네에 이사를 온 지 일 년이 다 되어 가고 그 사이 갈만한 동물병원을 알아둔 상태였지만 아무래도 원래 가던 병원만큼 선뜻 발길이 이어지질 않아 고민하던 찰나였기에 이번에 갔던 병원을 유심히 살폈던 것도 사실이다. 병원에는 고양이 대기실이 따로 있었다. 접수를 하고 들어 가니 내부는 아늑했고 고양이의 스트레스 완화 목적의 훈증기 제품이 설치되어 있어 마음에 들었다. 이윽고 솔의 이름이 불리고 대면한 원장 선생님에게 평소 솔의 습관이나 과거 아이가 토를 하다 쓰러졌던 일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4년 전이었던가, 솔이 캣그라스를 열심히 뜯어먹다가 토를 한 적이 있다. 원래 토를 자주 하는 동물이지만 그날의 솔은 토를 하다 옆으로 풀썩 쓰러졌고 네 다리가 곧게 펴졌더란다. 발발 떨던 아이 스스로도 놀라 일어나려다가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당혹스러운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말간 침을 흘렸다. 다행히 아이는 금방 회복을 했으나 지금까지도 그 기억이 나는지 토를 하다가도 두려운 듯 눈을 크게 뜨고 구석으로 숨어 들어간다. 그날의 일을 세세히 설명하고 있자니 선생님이 당시 아이의 상태를 자세히 물어보셨다. 그러면서 동물이 발작이나 경련을 할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영상을 통해 설명해 주셨고, 솔은 발작이나 경련이 아닌 실신에 가까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의 상황이 워낙 긴박했던지라 심장이 쿵쾅거려 정신이 없었는데, 다음부터는 어떤 상황에서도 동영상으로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말로 설명을 하는 것보다는 직접 보여 주는 것이 나으니까.
건강검진은 혈액, 소변, 엑스레이 검사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했다. 검진실에 아이를 보내 놓고 나와 삼월은 로비에 앉아 기다렸다. 혹시나 그 안에서 아이가 울지는 않을까 복도를 서성이며 내부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우리 집에서 친화적인 성격을 지닌 고양이로는 솔과 망구가 유일하다. 망구야 말할 것도 없고 솔은 몇 시간 두고 보면 스스로 다가가 인사를 건네는 고양이다. 하지만 낯선 장소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의 손에 맡겨진 아이는 조금 다를 것이다. 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15년 정도라고 한다. 솔이 일곱 살이 되는 내년부터는 건강 관리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할 테니 이런 상황에도 아이는 익숙해져야 한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솔이 검진 결과가 나왔다고 하여 진료실로 들어갔다. 다행스럽게도 아이에게는 큰 문제가 없었다. 살을 조금 빼야 하고 신장 수치가 조금 높기 때문에 평소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고 했다. 고양이의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라는 신부전증은 평소 음수량을 늘리는 방법으로 관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선생님께서는 집안 곳곳 각기 다른 모양의 물그릇을 배치하는 방법을 추천해 주셨다.
솔의 하루 루틴 중 인간과 함께 하는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샤워를 하는 동안 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물을 마시는 것. 왜 이 행동을 좋아하는지 정확한 까닭을 알 수 없지만 인간이 직접 손으로 떠 주는 물을 마시는 것이 아이 나름대로 애정을 시험하는 방법은 아닐까 생각한다. 샤워를 끝내고 문을 열면 기다리고 있던 솔이 제 자리를 빙그르르 돌며 야옹야옹 울어댄다. 그렇다면 인간은 양손을 가지런히 모아 접시를 만들고 적절한 온도의 물을 담아 쪼그려 앉아야 한다. 솔의 키를 맞추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 옷도 다 입지 못한 채로 말이다. 솔은 작은 물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해치우고 만족스럽게 몸을 털고 자리를 떠난다. 우리는 그제야 몸의 물기를 닦고 자신만의 샤워 루틴을 이어갈 수 있다. 인간 입장에서는 번거롭기 짝이 없지만, 물을 많이 마시게 하려면 이러한 아이의 행동에도 손발을 맞춰줘야 한다. 고양이와 나의 하루 루틴 중 하나를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하다.
나는 사실 고양이가 늙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아직까지 특별한 노화의 증거를 발견할 수 없어서 그런지, 우리의 작고 어린 고양이는 언제까지고 어릴 것만 같다. 그러나 내 나이가 들수록, 소화 능력이 떨어지는 걸 실감할수록, 하루의 피로가 다음날까지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느낄수록 늙은 고양이에 대해 떠올려 본다. 함께 늙어간다는 것. 다만 그들의 늙음이 우리보다 더 빠른 속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실감해도 놀라는 일이 없도록 마음을 단단히 가다듬어야겠다.
여담)
그 다음날 망구도 건강검진을 받았다. 망구는 우리가 주말 동안 외박을 하고 온 뒤로 하루 종일 잠을 자고 음식에도 통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장난감을 흔들어도 쳐다보지 않고 매일매일 잠만 잤다. 그 상태가 지속된 지 사흘째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컨디션 난조겠거니 했는데 솔이 건강검진을 받고 돌아온 날 저녁 반쯤 뜨인 눈을 깜빡이는 망구의 볼을 붙들고 ‘니 머선 고민 있나~’ 하며 장난을 치는 와중에 옆에서 ‘나는 망구 없으면 살 수 없을 거야…’라고 오히려 제가 더 죽는소리를 해대는 삼월 덕분에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병원에 전화를 했다. 크고 어린 우리 고양이는 우리가 선생님과 면담을 하는 와중에도 얌전히 품에 안겨 있다 검진실로 들어갔고 그 결과 엑스레이 상 복부에 2.5cm가량의 작은 알맹이가 발견되었다. 직접적으로 만져지는 것이 없어 주기적으로 집에서 마사지를 하며 경과를 보기로 했다. 그리고 몸무게가 9.2kg인 우리 막내 애기 역시 다이어트와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는 소견을 받았다.
건강하렴. 우리의 어린 고양이들아.